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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지음 / 자화상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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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고 글을 적다 보면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어느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과 글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항상 뒤죽박죽 엉킨 머릿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지만, 작정하고 시작했을 땐 도저히 그 출발부터가 답답하지만 그저 무의식적으로 끄적이다보면 엉킨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후련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정말 목이 마를 땐 그 어떤 음료수보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물이 우리의 갈증을 가장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것처럼.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그 가벼운 상태가 사실 가장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상태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수많은 정보들로 넘쳐 난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일은, 내 삶에 좋은 영감을 주는 정보들에게 길을 터주는 작업이리라. 중요함의 우선순위를 선별해두는 것, 쓸데없는 가십에 흔들리지 않고 알차게 성장하기 위한 이 시대 필수 덕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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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해 지금은 말하기 강의나 행사 진행자로 활동하며 프리하게 살고 있는 저자는 글을 통해 나조차 몰랐던 내 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그런 순간마다 찾아오는 평온한 공기를 사랑하기에 그 진심을 고백할 수 있는 설렘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46개의 단어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별 의미 없이 생각되던 단어들이지만, 그 안에서 저자만의 시선으로 특별하고 따뜻한 의미들을 끄집어내어 새롭게 인식될 수 있게 해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위대한 발견에는 수많은 ‘만약에’가 깃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인연 역시, 수시로 ‘만약에’를 곱씹어보던 그 배려의 시간들에 의해 완성됐던 것 같다.
사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면면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단어들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내 삶에 대입해 나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참 힘들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아마 그렇기에 우리가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진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잊은채 익숙함에 떠밀려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마는 것 아닐까.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정해두고 가야할지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들 때,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단어 하나가 큰 힘이 되고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경험을 했기에, 자신을 지탱해 준 단어들이 우리에게도 같지만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완벽하지 않은 나라도 나의 취향을 인정하고 나의 가능성을 믿게 해주는 단어,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고 배려할 줄 알게 하는 단어, 우리 관계의 농도가 한층 짙어지고 소중하게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단어. 그 모든 단어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고 그냥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에 새로운 시선과 감성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사실 ‘그냥’은 세상에서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다. 어떤 생각도 감히 끼어 들어오지 못하는, 미세한 틈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도 높은 담백함아 무례함으로 오해받게 될까 봐 화려한 장식들을 주렁주렁 달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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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안일하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흘러보내는 시간들이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한탄할 뿐, 바꾸고자 하는 노력 역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노력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에 좀 더 건설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겠지. 가끔은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되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어느 순간 또다른 의미와 가능성으로 다가올 때, 소소하고 작은 모든 것들에서도 큰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내 인생이 더 나다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사실 우리 삶이 매일 별반 다를바 없기에 그 속에서 찾게 되는 새로움은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을 발판삼아 의미 없을 것 같은 나의 1분 1초가, 그래도 모이고 모여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는 책이다.
‘스스로가 인지하는 자신의 모습’에다 ‘타인의 시선 속 내 모습’을 더할 때, 진짜 ‘나’라는 사람의 완전체를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난 오늘도 네가 기억해준 나의 모습들이 몹시 궁금하다. 나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기억은, 늘 받고 싶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