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회도 살인사건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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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이라고 쉽게 봤다가 놀란 적이 여러번 있다. 사실 그 누구보다 어려운 독자층이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우선 재미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고, 어렵지 않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들을 모두 갖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시시하고 유치할 것이란 나의 고정관념을 깨준 몇몇 작품들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느끼기도 했지만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땐 청소년을 위한 책일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계회도가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그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표지의 검붉은 배경이 암시해주는 의문의 죽음에 대한 흥미진진한 음모들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소재이니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알고 싶지 않은 진실들이 점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수의 아버지는 3년 전, 계회도를 그린 뒤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검계들에게 살인을 당한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고, 진수는 그 뒤로 장 화원이 운영하는 화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죽은 뒤,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준 서화 거간꾼 인국이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으로 잡혀가게 된다. 아버지처럼 따랐던 인국이 그럴리 없다며 진수는 인국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갇힌 인국을 통해 진수는 장화원이 아버지를 죽였고, 계회도를 어딘가에 숨겼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인국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고 알아갈수록 진수는 많은 것을 알게된다. 단순히 검계에게 살인된 것이 아닌, 아버지의 계회도를 둘러싼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점점 진수는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알게되고 진짜 범인의 정체에 다가가게 된다. 



아버지의 무덤에 흙을 덮는 그 순간부터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달아날 수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 달아났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열네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없었던 일처럼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것 말고는.


 

 

의문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과 음모는 낯설지 않은 주제이지만 계회도라는 것은 사실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된 것이다. 지금처럼 모임의 순간을 사진으로 쉽게 남길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고,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여러장을 똑같이 그려 나눠가졌다고 한다. 진수의 아버지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죽기전까지 큰 돈이 되지 않는 계회도 그리는 것에만 열중했고, 진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애정이나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본인도 아버지처럼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그림 그리기를 거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가 아닌 인국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가족을 힘들게 하고 능력 없는 아버지가 아닌 진정한 화사로서의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며 진수는 모든 진실에 대해 알게 된다. 부와 명예를 위해 부자와 양반들을 위한 그림이 아닌 가난하지만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 훌륭한 화사였던 아버지를 진수는 그렇게 이해하고 존경하게 된다. 


아마 어린시절엔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이 진심으로 와닿는 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어른이되고 많은 일을 겪다보면 새삼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진수는 비록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것을 알게 된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진수 역시 생전의 아버지처럼 진정한 화사의 길로 가게 되는 모습을 보며 나역시 부모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역사소설은 그 배경이나 생경한 단어들로 인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들을 알게 해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잡하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읽기에도 큰 부담은 없을 것 같다. 아이들 스스로 진짜 범인을 맞춰보며 읽다보면 한권을 금새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 나가는 진수를 보며 아이들 역시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고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어른인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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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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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진 않다. 나역시 많은 것을 강요 받고 억압 받으며 자라왔다. 더욱 무서운건 어느새 그것이 당연시 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30대 초반인 나에게도 요즘의 급진적인 변화는 참으로 낯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잘못을, 편견과 선입견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바꾸려 노력해주는 사람들 틈에 슬쩍 한발을 담그며 편승해 가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을 뿐. 여성으로서의 틀에 갇히지 않고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아름답다. 비록 시행착오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두려워 주어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괴로운 많은 여성들의 자유가 그래서 소중하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많은 여성들에겐 나와 같은 누군가의 고군분투가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기에, 무라타 사야카의 책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인사를 하고 매장에 들어가 휴게실 안쪽에 있는 작은 일인용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입고 스타킹을 신는다. 그 행위와 함께 여자라는 성을 자신의 육체에 새겨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럼 옷 입기 전의 나는 뭐지?’ 문 뒤쪽에 걸려 있는 지문으로 지저분해진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섹스가 너무나 괴로운 리호는 그래서 자신이 사실은 남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몸은 여성이지만 마음은 남성인, 뭔가 뒤죽박죽인 자신의 성에 대해 정확히 결정내리고 정의내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제2의 2차 성징을 찾아 성공시키려 남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도 아닌, 남성도 아닌 상태로 어딘가를 돌아다닐 엄두는 나지 않아 집과 조금 떨어진 독서실을 실험의 장소로 삼게 된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리호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손님인 츠바키는 한밤중에도 목까지 선크림을 바를만큼 외모에 신경쓰는 그 누구보다 여성이라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친구이자 함께 독서실에 다니는 치카코는 자신을 별에 대한 감각이 강한, 인간을 물체로서 느끼는 독특한 우주적 세계관을 가졌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시간의 흐름속에 있고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속에 있기 위해 독서실을 다니는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을 환상처럼 느낀다.


리호는 남자와의 섹스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자신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남자가 될 수도, 그렇다고 여성이 될 수도 없었고 단순히 무성욕자이지도 않은 명확하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상태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성별을 벗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여성스러운 츠바키는 리호가 여자로서 느끼는 불편함은 당연한 거라고, 그 고통은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여자라는 사실이 괴로워 남자로 도망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호는 그 모호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호는 성별이 없는 사람처럼 있고 싶었다. 그렇게 있다 보면 자기 안에 있는 남성성이 표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가식이요 과장일 뿐이었다.



치카코는 자신의 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세계는 다르고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별이고 우주에 속해있고 아이들의 소꿉놀이처럼 사람들 속에선 각자 정해진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지만 끝남과 동시에 그 환상은 사라지고 결국은 우주에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이세자키라는 남성이 다가오고 치카코 역시 그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사귀자는 이세자키에게 우리 사이에 섹스가 성립하는지 먼저 알아보고 결정하자는 답변을 한다. 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섹스가 가능하다면 자신 역시 별이 아닌 인간의 육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마법이 풀리고 아침과 밤이 한낱 태양빛과 우주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고 시간은 영원히 우주 속으로 편입된다. 그곳은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지만 늘 환상의 여운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떻게 보면 섹슈얼리티는 굉장히 예민하고 불편한 이야기이기에 읽다보면 거부감이나 너무나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 한번에 모든 인물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하지만 무라타 사야카의 가장 큰 강점이 예민하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또 흥미롭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전에 읽었던 <편의점 인간> 역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채 평범함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였고, <멀리 가는 배>의 리호와 치카코 역시 평범한 여성, 평범한 인간으로 속하고 싶은 의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비슷한 듯 하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 여성이라는 정해진 틀에 맞춰 많은 불편과 고통을 참고 살았던 옛날과 달리, 이젠 그 고통을 참지 않고 드러내고 자신에게 편하고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지금의 여성들이라면 훨씬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여성이라면 꼭 가야할 길이라고 여겨졌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젠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성별에 억지로 맞춰가며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리호도, 츠바키도, 치카코도 모두 자신이 정해둔 이분법적인 잣대에 스스로를 맞추려 했기에 힘들고 괴로웠던 것 아닐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혼란을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기에,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좀 더 다양한 성 정체성과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성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함께 방에 있는데도 치카코는 츠바키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어느 쪽이 맞다가 아니라 양쪽 모두 올바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것이 조금 힘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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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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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제약 없이 숨을 쉬고, 걷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한 우리에게 어느 순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 환자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우선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불행하고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당연시 여기던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값지게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은 아무에게나 생길 수 없다. 나라도 아마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분명 나의 가족들은 끝까지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겠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180도 바뀐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래서 그런 고통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을 차마 할 수도 없다.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을테니 말이다. 수많은 로맨스 소설처럼 사랑의 힘으로 과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사랑의 힘을 믿지만 그럼에도 난 확실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루이자 클라크는 6년간 일한 카페에서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가족의 생계를 거의 책임지고 있다시피 한 루이자에게 실업이란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당장 일할 곳을 찾아 보았지만 탐탁지 않았다. 그러던 중 6개월이란 한시적인 자리지만 보수가 괜찮은 간병인 일을 소개 받았고, 루이자는 그렇게 윌 트레이너의 간병인으로 일하게 된다. 윌은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다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결국 존엄사가 가능한 스위스의 병원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에게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루이자는 그런 윌의 자살시도를 감시하고 마음을 되돌리게 할 마지막 보루로서 채용된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윌이지만 루이자만의 특유의 발랄함과 특별함에 그 역시 서서히 루이자에게 마음을 열고, 루이자 역시 윌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루이자는 윌의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계획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연 윌의 마음은 바뀔 수 있을까? 둘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해 내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특한 패션 감각과 통통 튀는 말투, 가식 없는 모습의 루이자는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이다. 어떻게 보면 기울어진 가세를 위해 희생하고 고생하는 힘든 상황임에도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녀지만, 그래도 루이자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간병인 일에 고용주인 윌은 까칠하기만 하고 자신이 사실은 윌의 자살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 고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혼란스러워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점점 윌을 사랑하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던 윌도 루이자가 가진 특별함과 매력에 훨씬 밝아진 모습을 보여준다. 루이자가 윌에게 많은 긍정적인 기운을 준 건 사실이지만, 읽다보면 그 무엇보다 윌이 루이자의 삶을 더 넓혀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가진 잠재력과 능력, 그리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윌은 조금씩 조금씩 심어준다. 어떻게 보면 윌은 자신은 휠체어에 속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루이자는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루이자 역시 현실에 안주하고 머물기만 하던 삶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윌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자신의 속박된 삶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윌이기에, 자신이 마지막으로 사랑하게 된 루이자만큼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나역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찌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읽는내내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수차례 했던 것 같다. 존엄사는 지금도 논란이 많고 어느 한쪽의 의견을 수용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해 선뜻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환자일 때, 그리고 내가 보호자일 때 두 입장 모두를 생각해봐도 사실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루이자와 윌의 가족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당사자인 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엔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도 크지만, 당사자가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럽다면 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도, 가족들도 모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다면 아마 절대 느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기에 함부로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윌처럼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보다 더 비참한 상황과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녹록치 않은 페이지수지만 그럼에도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었던건 루이자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흔한 듯하면서도 뭔가 다른 스토리,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았던 윌, 그리고 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게 된 루이자. 루이자는 윌의 삶과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지만 사실 윌이 루이자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아마 윌의 멈춘 시간이 루이자의 새로운 시간이 되어 둘의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순간을 살면서 윌 역시 나처럼 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했다. 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행복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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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존 벨레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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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해리포터를 처음 읽으며 느꼈던 흥분과 짜릿함을 아직 기억한다. 하루에 2~3권을 읽어내며 처음 마법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느꼈고 정말 어딘가에 마법사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나도 마법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점점 그 순수함은 힘을 잃었고 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마법이란 참 매력적인 소재다. 마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기대감, 흥분은 그래서 항상 새로운 마법의 이야기들에 푹 빠질 수 있게 해준다. 눈에 보이는 영상보단 책으로 읽으며 마음껏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환영이다. 으스스한 대저택,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사고뭉치지만 용감한 주인공까지! 그래서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는 그런 흥미로운 요소들을 두루 갖춘 판타지의 정석과도 같은 이야기다. 



루이스가 요즘 들어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질문뿐인 듯싶었다. 난 어디로 가지? 누굴 만나게 될까? 내가 그들을 좋아할까? 나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소년 루이스는 삼촌인 조너선이 있는 뉴 제비디로 가게 된다. 하지만 삼촌의 집은 뭔가 이상하다. 수많은 시계, 그림이 자꾸만 바뀌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상한 코트걸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상한 이웃사촌인 짐머만 부인까지. 루이스는 평범하지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내 삼촌과 짐머만 부인이 마법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집 어딘가에 예전 집 주인인 마법사가 숨겨둔 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직 친구가 없었던 루이스는 타비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삼촌이 쓰는 마법에 대해, 그리고 자신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허세를 부리게 되고 결국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마법을 할 수 있다며 공동묘지에 모인 둘은 관이 열리며 세계를 종말 시키려는 계획을 가졌지만 죽었던 마법사 셀레나를 부활시킨다. 그로인해 시계를 둘러싼 지구의 종말은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데, 과연 루이스와 두 마법사는 그 시계를 찾아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고아가 된 소년, 그리고 알게 되는 새로운 힘,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 판타지의 요소를 고루 다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이지만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그 이유가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가 고딕이라는 요소를 바탕으로 쓰여진 고딕동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환상적이기만 한 마법뿐만이 아닌 어딘가 기괴하고 공포스럽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이들이 읽는다면 조금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부모를 잃고 의기소침하고 외톨이인 주인공 루이스에게 마법이란 신기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결국 묘지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 엄청난 위험을 초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의외로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루이스의 이야기는 어른인 내가 보기엔 허세 넘치고 친구에게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하는,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모습이지만 아마 이 책을 읽는 많은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이 시기에 친구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이해하고 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사람은 세상 모든 비밀이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루이스는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인 내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너무 유치하거나 그렇다고 너무 난해하지도 않은 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정도에 쉽게 술술 읽히는지라 아이들이 읽기에도 부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겁이 많은 너무 어린 연령이라면 읽고나서 밤에 조금 무서워 할지도 모르겠다. 마법의 세계를 떠올렸을때 상상하는 것처럼 항상 밝고 명랑한 마법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해리포터나 나니아연대기처럼 방대한 양의 책이 부담스러운 아이들이라면 길지 않은 분량에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자기 마음껏 생각하고 장면을 그려보는 재밌는 시간을 보내게 해줄 책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역시 책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으로 주인공들의 모습과 조너선의 저택을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읽었지만 이번에 이 책을 원작으로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선 어떤식으로 이 저택과 주인공들을 그려냈을지 궁금해졌다. 영화에선 아마 내 상상보다 훨씬 화려한 마법의 향연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루이스는 때때로 걸음을 멈추곤 온몸에 흐르는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아주 자신만만하고 용맹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두려움도 밀려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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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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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몇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면 먹는 순간의 즐거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예전엔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맛집을 찾아 다니거나 집에서 예쁘게 요리해서 먹는다는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확실히 내가 어떤 재료와 어떤 맛을 좋아하고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맛,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며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조금씩 느껴갔던 것 같다. 음식에는 그 음식을 먹던 순간의 느낌과 기억이 함께 담겨 있어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음식이 먼저 떠오르게 될 정도로 이젠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미된 음식을 통해 단지 먹기 위해서만이 아닌 다시 한번 그때로 되돌아 가고픈 희망을 나타내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음식은 언제든 다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요리하는 것도 하루하루의 즐거움 가운데 중대한 요소다. 다른 집안일은 그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라고 말하는 일본 최고의 미식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모리 마리. 그녀는 소위 온실속의 화초처럼 정말 귀하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하녀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부잣집 공주님이었던 그녀는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인 모리 오가이는 그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마리는 최고, 마리는 최고, 눈도 최고, 눈썹도 최고, 코도 최고...”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니 엄청난 고슴도치 부모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과는 달리 두 번의 결혼 생활은 모두 파국으로 끝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재능은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은 생활을 안정적이고 풍족하게 해주지 못했다. 싱크대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고 다른 집안일엔 전혀 소질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요리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그녀는 미식가이자 대식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돈 드는 짓만 하는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귀족이었던 그녀의 식생활은 과연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그녀는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서양 요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글마다 듬뿍 묻어난다. 어린 시절 먹었던 서양식 양배추말이나 가루로 탄 코코아가 아닌 진짜 초콜릿을 녹여 만든 초콜릿, 프랑스에서 먹던 싱싱한 굴, 로스트 비프. 그녀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맛있는 레스토랑의 요리들과 처음 시댁식구들에게 요리해 호평을 받은 연어와 화이트 소스, 친구인 요코에게 만들어 준 된장 초무침, 달콤한 브레드 버터푸딩과 크로켓 토마토주스조림까지 단순한 방법으로 본격적인 요리의 느낌을 내는 방식으로 너무도 간단하지만 간단하면서도 솜씨가 필요한 요리를 만드는 그녀의 음식은 많은 사람들과 그녀 스스로를 만족시켜 주며 과연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하고 깐깐한 성격은 음식에 관해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햄버그가 맘에 들지 않아 “이게 아냐. 이건 싫어!”라고 씩씩거리며 우걱우걱 햄버그를 입에 밀어 넣고 화난 채 식사를 하고, 오믈렛에 토마토케첩이 뿌려져 나오면 깊은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그 모든것의 밑바탕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된다. 그녀의 글 대부분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을 담고 있고,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맛보게 해준 많은 요리들이 그녀의 미식가적인 면모를 더욱 키워주었다. 전쟁으로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모두 잃어버린 것에 대해 끊임없이 안타까워 하고, 아버지가 무릎에 앉혀주고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계속 되뇌이는 걸 보면 그녀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음식으로 연결된 그녀의 행복했던 유년시절과 암울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화려하고 풍족하진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하고 그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그녀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 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사실 결혼을 하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되었고, 대부분 레시피에 의존해 만들어야 했기에 만들기에 급급했고 예쁘게 담아내는 것까진 엄두도 못냈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며 레시피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늘어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나가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땐 요리가 참 재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플레이팅에도 많은 중점을 두기도 하며 점점 발전하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기억은 평생을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리 마리 역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아버지를 음식을 통해 추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그녀가 음식을 통해 찾아가는 자신만의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보며 읽는내내 그녀처럼 확고한 취향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이 처한 암울한 처지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추구하며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음식, 그것도 예전 시대의 음식들이라 사실 낯선 것도 많았고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묘사하는 수많은 음식들은 읽다보면 절로 침이 고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음식을 사랑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좋아했던 따끈한 홍차 한잔과 달콤한 디저트를 함께 곁들인다면 더욱 풍미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훌륭한 식도락가다. 넘치게 훌륭해서 훌륭함이 거스름돈을 내줄 정도다. 젊은 사람이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누가 노인이라 부를 때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먹는 걸 좋아하기로는 여전히 아이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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