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 제약 없이 숨을 쉬고, 걷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한 우리에게 어느 순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 환자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우선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불행하고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당연시 여기던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값지게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은 아무에게나 생길 수 없다. 나라도 아마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분명 나의 가족들은 끝까지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겠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180도 바뀐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래서 그런 고통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을 차마 할 수도 없다.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을테니 말이다. 수많은 로맨스 소설처럼 사랑의 힘으로 과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사랑의 힘을 믿지만 그럼에도 난 확실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루이자 클라크는 6년간 일한 카페에서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가족의 생계를 거의 책임지고 있다시피 한 루이자에게 실업이란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당장 일할 곳을 찾아 보았지만 탐탁지 않았다. 그러던 중 6개월이란 한시적인 자리지만 보수가 괜찮은 간병인 일을 소개 받았고, 루이자는 그렇게 윌 트레이너의 간병인으로 일하게 된다. 윌은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다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결국 존엄사가 가능한 스위스의 병원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에게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루이자는 그런 윌의 자살시도를 감시하고 마음을 되돌리게 할 마지막 보루로서 채용된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윌이지만 루이자만의 특유의 발랄함과 특별함에 그 역시 서서히 루이자에게 마음을 열고, 루이자 역시 윌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루이자는 윌의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계획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연 윌의 마음은 바뀔 수 있을까? 둘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해 내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특한 패션 감각과 통통 튀는 말투, 가식 없는 모습의 루이자는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이다. 어떻게 보면 기울어진 가세를 위해 희생하고 고생하는 힘든 상황임에도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녀지만, 그래도 루이자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간병인 일에 고용주인 윌은 까칠하기만 하고 자신이 사실은 윌의 자살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 고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혼란스러워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점점 윌을 사랑하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던 윌도 루이자가 가진 특별함과 매력에 훨씬 밝아진 모습을 보여준다. 루이자가 윌에게 많은 긍정적인 기운을 준 건 사실이지만, 읽다보면 그 무엇보다 윌이 루이자의 삶을 더 넓혀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가진 잠재력과 능력, 그리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윌은 조금씩 조금씩 심어준다. 어떻게 보면 윌은 자신은 휠체어에 속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루이자는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루이자 역시 현실에 안주하고 머물기만 하던 삶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윌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자신의 속박된 삶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윌이기에, 자신이 마지막으로 사랑하게 된 루이자만큼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나역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찌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읽는내내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수차례 했던 것 같다. 존엄사는 지금도 논란이 많고 어느 한쪽의 의견을 수용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해 선뜻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환자일 때, 그리고 내가 보호자일 때 두 입장 모두를 생각해봐도 사실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루이자와 윌의 가족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당사자인 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엔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도 크지만, 당사자가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럽다면 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도, 가족들도 모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다면 아마 절대 느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기에 함부로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윌처럼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보다 더 비참한 상황과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녹록치 않은 페이지수지만 그럼에도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었던건 루이자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흔한 듯하면서도 뭔가 다른 스토리,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았던 윌, 그리고 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게 된 루이자. 루이자는 윌의 삶과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지만 사실 윌이 루이자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아마 윌의 멈춘 시간이 루이자의 새로운 시간이 되어 둘의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순간을 살면서 윌 역시 나처럼 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했다. 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행복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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