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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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가지는 감수성을 느껴본게 언제더라... 아이를 낳고는 강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이젠 밤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이 힘들게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자율학습을 끝내고 밤이 되어 집에와 다들 잠들어 있는 시간,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감성에 젖곤 했었는데 그러고보니 심야 라디오를 들은건 그때가 마지막이지 않나 싶다. 나즈막하고 감미로운 DJ들의 음성에 실려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낮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이야기에 푹 빠져 새벽까지 듣다 잠들곤 했었는데 이젠 낯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을 읽다보니 밤이 가진 매력, 밤에만 가질 수 있는 느낌과 감성이 문득 더 그립게 느껴진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필요한 건 조금 더 큰 확신이었다.
그것이 딱 한 사람의 동의일지라도.
만난 적 없는 라디오 속 DJ의 대답일지라도 말이다.

오늘도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하루를 보냈을 그대에게
바로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매일 밤 10시, 열두 해 동안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CBS <꿈과 음악 사이에>의 DJ이다. 특이하게도 이 방송은 게스트 없이 오직 애청자들의 사연과 음악만으로 채워지는 방송이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하는 라디오도 많지만 그녀의 프로그램이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고수하는 건 아마 애청자들의 사연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소통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12년 동안 열심히 들어주던 그녀가 이 책에선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애청자들의 사연에 덧붙혀진 자신의 사연과 일상,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이 책에 담아냈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굳건히 자리할 수 있는 건, 아날로그적인 그 감성을 다른 매체들은 따라할 수가 없고 그 무엇보다 그 라디오를 듣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주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나 싶다. 그녀의 라디오는 그 무엇보다 애청자들의 사연이 중심이 되기에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연과 그 사연에 가장 알맞은 노래가 더해져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 감성이 그대로 옮겨진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사연과 더불어 그간 들어주느라 미처 하지 않았던 DJ 자신의 이야기들이 함께 더해져 평소 그녀의 라디오를 즐겨 듣던 이들에겐 색다른 매력을, 라디오를 듣지 않던 나같은 이들에겐 라디오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빽빽이 짜인 일과 끝에 주어진
느슨한 조율의 시간. 
이성의 시간을 넘긴 뒤 찾아오는
감성의 시간. 
어린 날 컴퍼스로 그린 동그란 계획표 소
작은 틈 같은 ‘자유 시간’

그 안에서 오늘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한때 너무나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잊혀져 있는 것을 불현듯 느낄 때,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그리움에 나도 모르게 다시금 꺼내보며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 책이 한때 내 쓸쓸한 밤을 채워주었던 라디오를 불현듯 생각나게 해 주었고, 밤이 가져다 주는 깊은 감정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녀의 방송도, 그녀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따스하고 부드럽지 않을까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젠 10시가 되기전에 이미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감수성도 바닥나 버렸지만 그래도 그녀의 라디오를 꼭 들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내게 그때 그 시절의 소녀 감성을 다시금 가질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게해 주기도 하고, 또 잊고 지내던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란 생각도 드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녀의 라디오라면 아마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오랫만에 라디오의 주파수를 그녀에게로 맞춰봐야 할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비슷한 추억과 일상을 공유하는 저 너머의 누군가.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주파수를 맞추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있는 이가 있다는 생각. 
그 모든 게 여전히 우리를 라디오 앞에 다가앉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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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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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생각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대상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내겐 아이들이 그런 존재일 것이고 책과 커피가 함께한다면 언제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실 별거 아닌 소소한 나만의 것들로 채워지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이 내겐 가장 크지만, 소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한채 바쁘고 삭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똑같이 보내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버릴 것이다. 그럴 땐 과거를 잠시 돌아보며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내가 무얼 했을 때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며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잊고 지내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를테니 말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이상하긴 해도 거짓 없는 진실이다. 원래 서툰 사람이 야무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끊어내고 아무 말이나 대충 입에 담으려 먼저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어중간하고 조잡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저자인 이시이 모모코는 사실 낯설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한 동화 작가라니 일본에선 굉장히 유명한 분이지 않을까라는 짐작을 해본다. 총 39편의 에세이는 과거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어린시절부터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시골에서 밭을 일구며 살았던 일, 도쿄에서 우연히 식구로 맞이하게 된 개와 고양이들과의 삶까지 소소한 그녀만의 일상들이 녹아있다. 동화작가로 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는 항상 자연과 시골을 좋아했다. 굳이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며 고생을 하지만 그로인해 많은 추억들을 남기기도 했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서 기른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식구가 된 반려동물들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만들며 고생시켜도 그 속에서도 그녀는 재미와 행복을 찾아낸다. 


동화작가이고 아동문학계에서 평생을 일한 덕분일까, 그녀의 글에선 항상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아기자기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그려진다. 어찌보면 아이와 같은 순수함도 느껴진다. 사실 가난과 전쟁이라는 엄청난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 시절의 비관적인 일들보단 그 속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는 그녀의 감수성은 읽는 내내 참으로 밝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작은 일 하나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우리라면 엄청난 걱정과 근심을 불러 일으킬 일들에도 차분하기만 한 그녀는 어떤면에선 현실에서 동 떨어진 태평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를 통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느슨하고 편하게 바꿀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곡괭이와 톱을 들고 산길을 올라갔다. 나무 스무 그루를 베고 땅을 세 평쯤 골랐다. 온 힘을 다해 톱질을 하는데 하늘이 새파랬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하나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시대까지 다르다 보니 100% 모든 내용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느낀 감정들이 일어나는 그 지점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게다가 저자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기에 어린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 지낼 수 있었으니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가족이 있었다면 아마 그녀의 관점이 조금은 바뀔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쨋든 그녀는 어찌보면 느긋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맘 편한 싱글라이프를 즐긴 것 같지만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어딘가에 쫓기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01살이란 나이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누구나 그녀의 삶처럼 살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따스한 마음과 아이같은 순수함이 담긴 글을 읽다보면 내 삶에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을 천천히 걸으면 분명 한두 명쯤 이렇게 완벽하게 이해하는 친구나 작가와 만나리라 믿는다. 정신없이 바쁜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최근 들어 발걸음도 위태로워진 스스로에게도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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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2 - 지치지 않는 교사들의 아름답고도 세속적인 독서교육 배우는 사람, 교사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외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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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중요성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 어린시절부터 책 읽는 습관을 아이들에게 들이려 노력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은 그토록 친해지길 강요받던 책으로부터 다시 멀어진다. 그렇게 멀어진 아이들을 다시 책과 가깝게 만드는 일이 쉬울리가 없다. 이미 주입식의 수동적인 강의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쓰게 만드는 독서 수업은 낯설고 또 하기 싫은 수업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의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선생님들이 있다. 아무리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위상이나 그 믿음이 많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곤 해도 아이들이 가정에서 또는 개인적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채워줘야 하는 곳이 학교이고 또 선새님들의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해 분명 쉬운 길이 있음에도, 돌도 돌아 멀리 가야하는 길을 택하는 선생님들의 용기와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현실적인 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꿈을 꾸고 그것을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더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는 책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교사들의 모임이다. 독서교육을 꾸준히 실천해 온 선생님들이 모여 연수를 시작했고 연수에서 교사들은 직접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실습을 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독서·토론 수업을 구상해 보게 되었다. 그 뒤 각 학교에서 실천한 경험들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더 좋은 책을 찾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선생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독서와 토론을 아이들의 수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였다. 선생님 혼자 모든 것을 꾸려나가기엔 벅찰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회는 함께 모여 방법을 모색하고 서로의 아이디어와 사례를 아낌없이 나누며 책을 통해 교실 수업을 변화시켜 보고 싶다는 선생님들의 바람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는 연구회로 자리잡았다. 


책에는 총 6명의 선생님들이 각자가 진행했던 독서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 계열 학생들과 함께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물기있는 공학자가 되길 바라며 진행하는 문학 수업,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살아 있는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수업, 인문학도로의 발전을 위해 교과융합 독서를 통한 견학 프로그램이 함께하는 수업, 시를 읽으며 토론하고 느끼고 자신만의 시집을 만들어 보는 수업, 커뮤니티 매핑으로 지역사회와 연계된 우리동네 책 만들기로 작가가 되어 보는 수업,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며 협동으로 빚어낸 문학콘서트로 이어진 수업까지 다양한 형태의 독서 토론 수업들이 다채롭게 펼쳐졌던 교실의 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중간중간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후기는 서서히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수업을 이끌어 가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과 아이들의 변화가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내며 우리의 교과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음표를 향해 가는 아이들을 옆에서 응원하는 조력자가 되기로 했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 속에서 학생들이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스스로의 꿈과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를 느린 호흡으로 기다려 주는 지킴이가 되기로 했다.


 

 

 

획일화된 주입식 강의 수업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협력이 필요한 모둠 활동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는 독서 토론 수업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편한 수업 방식을 버리고 힘든 길을 가고자 했을 때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노력이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고 직접 책을 만들고 또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해 내며 점점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보며 학교의 수업이, 교실의 모습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시험에 얽매여 자신의 꿈을 꾸지도, 더 넓은 세상을 만나지도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로인해 자신을 치유하고 각자의 삶이 친구들과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진짜 학교에서 배우고 느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작품이 문제를 풀기 위해 분석하고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예술로 아이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하기에, 앞으로도 더 다양하고 새로운 독서 수업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런 변화의 시작을 이끌어 나가는 선생님들의 노력 속에서 진짜 아이들에 대한 진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부모로서는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꿈꾼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문제를 위해 조각나고 편집되지 않은, 하나의 온전한 예술로서 소설과 시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작품이 한 사람의 영혼에 닿고 한 사람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닿는 그 순간을. 그래서 독서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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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능동태다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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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그 나라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할 것이란 생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좀 예민한 편인데(그렇다고 잘 안다는 건 아님) 카톡이나 문자를 써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되도록 지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줄임말도 거의 모르고 일명 급식체를 쓰고 싶지도 않거니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투철한 한글 사랑까진 못해도 되도록이면 올바르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잘못된 표현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 잘못 썼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널리 쓰이는 표현들은 마음 먹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깨달을 수도 없다. 평생을 써 온 모국어이지만 틀리게 쓰고 있는 수많은 표현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생활을 되돌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미한 반성의 마음을 다잡고 펼치게 된 책이 바로 <우리말은 능동태다!>이다. 



말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말의 가치와 우리 문화의 깊이를 기록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다짐하고 많은 책을 써온 저자는 최근 언론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한글이 부숴지고 파괴되는 것을 마주하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말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틀리면 부끄럽고 우리말 틀리면 부끄럽지 않지요?” 라는 말에 우선 나부터가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 외국어도 먼저 우리말을 제대로 익힌 다음에 시작하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데 요즘 우리는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우리말이 처한 위기를 의식하고 이 책에 그 분노를 담아 통곡의 말들을 쏟아내게 된 것이다. 


책에서는 수동태를 남발하고 주어를 쓰는 영어의 특징들을 우리 말에서도 고스란히 적용해 쓰는 문제를 지적한다. 수동태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말에는 없는 문법이고 우리말엔 피동사가 있어 굳이 쓸 필요가 없음에도 영어의 사용이 많아지며 더불어 하나둘 등장하더니 이제는 우리말의 소멸을 앞장서 부추기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우리말 속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면 한자사대주의로 매도당하며 더이상 우리 아이들은 한자를 배우지 않게 된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에서 비롯한 언어 체계를 사용하기에 한자를 아는 것이 우리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데도 말이다. 한글만 사용할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강조 하다보니 새롭게 들어오는 외래어들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만 하는 단어들이 많아져 조어력은 급속히 약회되고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어들을 방어할 언어적 대비책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큰 문제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때까지 내가 써오던 말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평생 모른채 살았을 것이다. 무의식중에 많이 들리고 널리 사용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나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어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우리 말을 올바르게 쓰는 것은 중요하다. 왜 식민지 국가에게 자국 언어를 못 쓰게 막았겠는가, 언어가 가진 힘을 알기에 그 정신과 의미를 말살시키기 위해 그런 것이다. 우리 역시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말의 소중함을 깨닫고 계속 교육 받고 있음에도 우리말이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부터도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예문들을 읽으면서 ‘뭐가 잘못된 거지?’라고 생각하게 되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건 미국에선 영어의 뿌리인 라틴어를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시키지만 우리는 우리말의 뿌리격인 한자를 더이상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자를 무분별하게 쓰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를 잘 알지 못하면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저자의 말이 부모로서도 크게 와닿았다. 어른이 되면 이제 국어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며 손 놓고 열심히 영어나 외국어만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말에 대해서도 공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씩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잘못된 표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다보면 다소 과격하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과민하게 느껴져 불편함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저자가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크고 그로인한 안타까움 역시 크기에 그럴 수 밖에 없으리란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얇고 작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한번쯤 나의 언어 사용에 대해 환기시키는 시간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우리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비율이 커갈수록 우리말의 소멸 시기는 당겨질 것이다. 우리말이 갖는 의미를 알아야 지키건 없애건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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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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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때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전혀 쓸모가 없어져 우리의 기억속에서 지워진채 자료로서만 남아있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환경이 바뀌어도 본능은 살아남아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에게 본능이란 태어날 때부터 몸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본능에 충실하자는 말이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가 가진 본능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것들이 소멸되어 가도 내게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무엇이 있다는 것에 왠지모를 안도감이 느껴지도 하고..



‘옛날’이라는 게 언제인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그 붉은 방이 냉동 보존된 과거로 둘러싸인 밀실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결혼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보단 자신과 가장 조건이 맞게 매칭된 상대와 하고 임신은 인공수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성이 초경을 시작하면 의무적으로 산부인과에 가 피임시술을 받아야 하는, 지금 우리 세계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세계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같은 허구의 인물과의 연애는 정상이지만 진짜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그 속에서 주인공인 아마네는 어린시절부터 엄마와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너는 섹스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태생부터 남들과 달랐던 아마네는 그래서 당연시 되고 규정되어 있는 것들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사람과 연애하고 섹스를 하며 정상인 세계에 섞이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정상 속에서 비정상으로 살아가는 고독함은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네는 대다수의 정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인 비정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비정상이라 규정하는 엄마를 부정하면서도 정상인 사람들처럼 살아가진 못하는 어딘가에 정체되어 부유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언제나 정상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한 무언가가 항상 필요했다. 그래서 비록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을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가족이 붕괴되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철저히 만들어지고 계획된 비정상의 도시에서 소름끼치도록 정상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세상에서도 정상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세상, 그 바깥에 존재하는 세상, 이 실험도시, 어느 세상에서도 나는 소름 끼치도록 정상이었다. 사실은 비정상이 아닐까 싶을 만큼.


 

 

 

<편의점 인간>,<멀리 갈 수 있는 배>를 읽으며 저자는 항상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다수의 정상들과는 다르고 그곳에 속하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고통을 겪는 존재들이었다. <소멸세계>의 아마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항상 조금 외면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은 다른 존재들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세계와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런 편견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그녀의 소설은 어찌보면 기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배려와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시 되는 것들이 사라져 버린 <소멸세계>에선 우리 역시 비정상이라 규정될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어왔던 것들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우리 역시 언제나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본능이라 믿어 왔던 결혼과 출산, 가족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어느쪽의 기준에 맞추든 모두에게 부합하는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기에, 언제나 그 중간지점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항상 그 지점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글 속에 위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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