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이 가지는 감수성을 느껴본게 언제더라... 아이를 낳고는 강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이젠 밤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이 힘들게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자율학습을 끝내고 밤이 되어 집에와 다들 잠들어 있는 시간,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감성에 젖곤 했었는데 그러고보니 심야 라디오를 들은건 그때가 마지막이지 않나 싶다. 나즈막하고 감미로운 DJ들의 음성에 실려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낮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이야기에 푹 빠져 새벽까지 듣다 잠들곤 했었는데 이젠 낯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을 읽다보니 밤이 가진 매력, 밤에만 가질 수 있는 느낌과 감성이 문득 더 그립게 느껴진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필요한 건 조금 더 큰 확신이었다.
그것이 딱 한 사람의 동의일지라도.
만난 적 없는 라디오 속 DJ의 대답일지라도 말이다.

오늘도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하루를 보냈을 그대에게
바로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매일 밤 10시, 열두 해 동안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CBS <꿈과 음악 사이에>의 DJ이다. 특이하게도 이 방송은 게스트 없이 오직 애청자들의 사연과 음악만으로 채워지는 방송이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하는 라디오도 많지만 그녀의 프로그램이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고수하는 건 아마 애청자들의 사연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소통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12년 동안 열심히 들어주던 그녀가 이 책에선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애청자들의 사연에 덧붙혀진 자신의 사연과 일상,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이 책에 담아냈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굳건히 자리할 수 있는 건, 아날로그적인 그 감성을 다른 매체들은 따라할 수가 없고 그 무엇보다 그 라디오를 듣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주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나 싶다. 그녀의 라디오는 그 무엇보다 애청자들의 사연이 중심이 되기에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연과 그 사연에 가장 알맞은 노래가 더해져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 감성이 그대로 옮겨진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사연과 더불어 그간 들어주느라 미처 하지 않았던 DJ 자신의 이야기들이 함께 더해져 평소 그녀의 라디오를 즐겨 듣던 이들에겐 색다른 매력을, 라디오를 듣지 않던 나같은 이들에겐 라디오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빽빽이 짜인 일과 끝에 주어진
느슨한 조율의 시간. 
이성의 시간을 넘긴 뒤 찾아오는
감성의 시간. 
어린 날 컴퍼스로 그린 동그란 계획표 소
작은 틈 같은 ‘자유 시간’

그 안에서 오늘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한때 너무나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잊혀져 있는 것을 불현듯 느낄 때,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그리움에 나도 모르게 다시금 꺼내보며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 책이 한때 내 쓸쓸한 밤을 채워주었던 라디오를 불현듯 생각나게 해 주었고, 밤이 가져다 주는 깊은 감정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녀의 방송도, 그녀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따스하고 부드럽지 않을까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젠 10시가 되기전에 이미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감수성도 바닥나 버렸지만 그래도 그녀의 라디오를 꼭 들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내게 그때 그 시절의 소녀 감성을 다시금 가질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게해 주기도 하고, 또 잊고 지내던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란 생각도 드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녀의 라디오라면 아마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오랫만에 라디오의 주파수를 그녀에게로 맞춰봐야 할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비슷한 추억과 일상을 공유하는 저 너머의 누군가.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주파수를 맞추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있는 이가 있다는 생각. 
그 모든 게 여전히 우리를 라디오 앞에 다가앉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