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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평점 :
살면서 생각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대상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내겐 아이들이 그런 존재일 것이고 책과 커피가 함께한다면 언제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실 별거 아닌 소소한 나만의 것들로 채워지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이 내겐 가장 크지만, 소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한채 바쁘고 삭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똑같이 보내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버릴 것이다. 그럴 땐 과거를 잠시 돌아보며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내가 무얼 했을 때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며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잊고 지내던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를테니 말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이상하긴 해도 거짓 없는 진실이다. 원래 서툰 사람이 야무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끊어내고 아무 말이나 대충 입에 담으려 먼저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어중간하고 조잡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저자인 이시이 모모코는 사실 낯설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한 동화 작가라니 일본에선 굉장히 유명한 분이지 않을까라는 짐작을 해본다. 총 39편의 에세이는 과거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어린시절부터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시골에서 밭을 일구며 살았던 일, 도쿄에서 우연히 식구로 맞이하게 된 개와 고양이들과의 삶까지 소소한 그녀만의 일상들이 녹아있다. 동화작가로 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는 항상 자연과 시골을 좋아했다. 굳이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며 고생을 하지만 그로인해 많은 추억들을 남기기도 했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서 기른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식구가 된 반려동물들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만들며 고생시켜도 그 속에서도 그녀는 재미와 행복을 찾아낸다.
동화작가이고 아동문학계에서 평생을 일한 덕분일까, 그녀의 글에선 항상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아기자기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그려진다. 어찌보면 아이와 같은 순수함도 느껴진다. 사실 가난과 전쟁이라는 엄청난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 시절의 비관적인 일들보단 그 속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는 그녀의 감수성은 읽는 내내 참으로 밝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작은 일 하나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우리라면 엄청난 걱정과 근심을 불러 일으킬 일들에도 차분하기만 한 그녀는 어떤면에선 현실에서 동 떨어진 태평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를 통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느슨하고 편하게 바꿀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곡괭이와 톱을 들고 산길을 올라갔다. 나무 스무 그루를 베고 땅을 세 평쯤 골랐다. 온 힘을 다해 톱질을 하는데 하늘이 새파랬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하나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시대까지 다르다 보니 100% 모든 내용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느낀 감정들이 일어나는 그 지점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게다가 저자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기에 어린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 지낼 수 있었으니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가족이 있었다면 아마 그녀의 관점이 조금은 바뀔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쨋든 그녀는 어찌보면 느긋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맘 편한 싱글라이프를 즐긴 것 같지만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어딘가에 쫓기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01살이란 나이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누구나 그녀의 삶처럼 살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따스한 마음과 아이같은 순수함이 담긴 글을 읽다보면 내 삶에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을 천천히 걸으면 분명 한두 명쯤 이렇게 완벽하게 이해하는 친구나 작가와 만나리라 믿는다. 정신없이 바쁜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최근 들어 발걸음도 위태로워진 스스로에게도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타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