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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
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요하네스 잘츠베델 엮음, 이승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라고 한다.
책을 보통 사람에 비해
괘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아직까지 성경을 완독하지는 못했다.
전도를 목적으로 예전에
지인에게 받은 성경책이 있긴 하지만 불교에 가까운 무교신자인 내게 성경을 만만치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경이야말로 가장 먼저 접한 종교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후에 불경, 이슬람 경전 코란에 각 나라별 신화까지 읽은 내게도 성경은 언제나 높은
벽이었다.
언제나 꼭 한 번은 다
읽고 싶었지만 언제나 창세기 전 부분에서 도돌이표를 반복했고, 시편이나 요한계시록 등을 부분부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기독교에 대한 절실한
믿음이 없는 내게 시작부터 허무맹랑한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던 성서를 이제는 과학이 아닌 조금은 넓은 시선으로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여전히 성서는 과학적
증명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성서를 역사가 아닌 인류의 위안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이 들었다.
고교시절 내게 전도를
하려던 이들에게 과학적 증명을 요구했던 나에게 이 책은 맞춤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함으로써 호메로스의 이야기 아닌 역사로 트로이의 존재를 밝힌 고고학은 성서의 역사에서도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스어 신약성서에
십자가가 그냥 '나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중세를 관통하는 동안
학생들은 시편을 교과서로 삼아서 쓰고 읽기를 공부했다고 한다.
성서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늘어놓은 일목요연한 목차를 보면서 내 지난 성경읽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여호수아기의 내용이
이방 민족과의 싸움이 아닌 귀환한 엘리트와 이스라엘 농민 사이의 유대교 내부의 갈등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 성서가 단지
100년 만에 생겨난 책이라는 점은 괘나 충격적인 거 같다
"역사는
언제나 가정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알고 있는 모세의 이집트 탈출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노아의 방주의 배경이 되는 대홍수 신화는 유대교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니 알에서 태어난 건국신화가 다 비슷하듯이 아마도 같은
맥락인듯하다.
악역과 선한 신이
나눠어진 아트라하시스와 길가메시의 신들과는 달리 창세기의 신은 유일한 신이 이 두 가지 역할을 다하는 차이를 보인다.
역사적으로 증명도 되지
않은 성서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영토의 영유권 주장을 정치적으로 더욱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너무 어이가 없고 자신들이 오랜 시간 살던
땅에서 쫓겨나 핍박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억울함이 느껴지는 거 같다.
역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히브리 성서의 이야기는 사실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다.
유다왕국의 승리라는
완벽한 역사 왜곡 부분은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이 생각났다.
모세의 십계명은
모세라는 인물 자체도 역사적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지만 예배적 신앙 안에 사회윤리를 통합했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은밀하고 중요하며 강력한 암시는 인간의 열 개의 손가락에서 기초한다고 하니 신비롭다.
또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서의 어디에도 모세의 얼굴이나 형태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존재 사실에 더욱 의구심이 드는 거
같다.
특히 5세기에 인정받은
창세기는 모세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니 모세는 정말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하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 그리고 선악과로 알려진 사과, 하지만 사과는 선악과의 열매가 될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성서의 허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순회 설교자였던 예수가
새로운 추종자를 얻기 위해서 복잡한 규정이 없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니 그의 행동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솔로몬과 다윗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러 책에서 이미 읽었지만 이 책에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성경의 일부로 알고
있는 '복음' 이 원래 그리스어 '기쁜 소식' 을 의미하며 예수의 삶에 대한 여러 전승들이 나중에 복음서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가복음서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집필했다고 한다.
성경에서 유명한
에피소드인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유일하게 누가 복음서에만 나온다고 하니 의외였다.
언어적 묘사력이 뛰어난
이야기들에서 다양한 관용구가 나왔으며 지금도 자주 사용되는 어구들을 보면서 성서를 집필한 이들이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조상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바울에 대해서도 예전에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바울에 대해 더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에서 항상 등장하는 마리아가 사실은 신약성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신화
속의 인물로 남겨두는 것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마리아 공경과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에 대한 모순은 생각할수록 마리아를 인간을 뛰어넘은 신적 존재로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 필사본 95%가
사라졌고 오늘날 80편의 빈자들의 성서만이 존재하며 이 빈자들의 성서가 중세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해석의 주권을 중앙의
교황 권력에게 안전하게 보장해주려고 다분히 의도적인 수단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권력을
가진 그들에겐 역사적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중요했을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루터는 이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반박문을 쓴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가 처음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며 '용병들, 잔소리꾼, 임시방편, 수다떨다, 따라하다, 양의 가죽을
쓴 늑대" 등의 새로운 명사들과 상징과 비유도 만들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성서 중에 킹 제임스
성서라는 것이 있으며 이 성서가 다양한 종족이 있는 아메리카에서 결속력을 처음으로 제공한 언어라고 하니 성서의 힘은 대단한 거
같다.
또한 이 성서는 지금도
미국의 대통령들이 대통령 선서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성서의
고고학적 증명을 말하지만 대부분은 증명할 수 없다거나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대부분이다.
예전의 과학적 증거를
중요시하던 학창시절의 나 같으면 "그것 봐라~ 다 거짓말이잖아~" 했을 것이다.
물른 사실도 있을
것이고 허구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그리고 그 존재가 관계된 역사라는 것도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다 증명하려는 것은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신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성서가 중요한 인류의 문화유산임에는 분명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 책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신을 사유하기 때문에 신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