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홈 브런치 - 계절을 담은 나만의 브런치 테이블
한지혜 지음 / 샘터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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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 늘어지게 늦잠을 잔 후에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나와 간단한 샌드위치에 진한 커피를 곁들여 마신다. 아침과 점심의 그 중간 어디쯤에 느긋함과 여유의 브런치가 존재한다. 브런치가 특히나 맛있는 건 이처럼 해방감의 분위기가 배경처럼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 내게 와있는 계절의 풍성함'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레시피로 채워져 있다. 봄의 달래, 여름의 토마토, 가을의 호박... 한 계절의 정점에서 만나는 제철 과일과 제철 채소는 값도 싸고 가장 맛있다. 책을 읽다 보니 올해 내가 만날 사계절의 아침들을 미리 본 듯했고, 조금 배고파졌고, 무엇보다 당장 마트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봄의 맛>
친정 부모님 댁에는 텃밭이라고 하기엔 꽤 거대한 밭이 있다. 해마다 달래가 땅에서 올라오면 봄이 왔음을 느낀다. 밭에 쭈그리고 앉아 달래를 열심히 캔다. 부모님 밭으로도 모자라면 동네를 순회하며 아무 곳에서나 내뻗은 초록의 달래를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다녔다. 그렇게 캔 달래는 잘게 다져 달래장을 만들거나, 달래 된장국을 끓이곤 했다. 갈 때마다 한 무더기씩 자라나는 달래가 쌓여서 냉동해 놓곤 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한 '달래 페스토'를 보니 '이거다!' 싶었다. 페스토는 바질로만 만들 수 있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왜 있었을까.

<여름의 맛>
새싹처럼 연한 연둣빛으로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렸던 방울토마토들은 여름의 햇볕을 받고 붉게 변한다. 토마토는 여름 내내 과실을 내어주는 자애로운 작물이다. 따서 먹다 먹다, 결국 여름 끝엔 토마토에 질릴 때도 있었다. 이번 여름에 방울토마토를 바구니 넘치게 따서 이 책의 저자처럼 '선 드라이 토마토'를 가득 만들어 놔야겠다. 수분을 날린 방울토마토는 당도도 올라가고 과육도 쫄깃해져 완전히 다른 식품이 된다. 오일 파스타, 샐러드에 선 드라이 토마토를 가득 넣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가을의 맛>
가을의 페이지로 넘어오니 수프나 구이, 튀김, 오븐에 구운 빵과 같이 온도감이 느껴지는 요리로 바뀐다. '시금치 베이컨 샐러드'는 시금치를 뿌리째 사용한 것이 새로웠는데, 시금치 뿌리는 단맛이 많이 난다고 한다. 베이컨을 먼저 구워 향이 남아 있는 팬에 뿌리째 깨끗이 씻은 시금치를 넣어 볶아준다. 접시에 베이컨과 시금치를 올리고 계란 노른자를 올리고 발사믹 식초, 파마산 치즈를 뿌려주면 완성! 이 요리는 먹어보지 않아도 무조건 맛있을 레시피이다.

<겨울의 맛>
집 근처에 있는 '텍사스 로드 하우스'라는 미국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면 항상 시키는 요리가 있다. 바로 '폴드 포크'인데, 이 책의 겨울 레시피에 소개되어 굉장히 반가웠다. 게다가 이토록 쉬운 레시피라니... 저자도 밥솥이 다 해주는 요리라고 할 정도로 쉽고, 돼지고기 뒷다리로 만들기 때문에 가성비도 최고이다. 오랜 시간 익혀 부드러워진 고기를 결에 따라 찢어 달달한 바비큐 소스를 입힌 요리라고 보면 되는데, 밥반찬으로도 좋고 빵과 곁들이거나 샌드위치 재료로도 최고이다.

책 앞 쪽 부분에는 브런치에 필요한 소스나 허브, 치즈 그리고 도구에 대한 기본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고, 책의 뒷부분에는 브런치와 곁들이면 좋을 음료 레시피도 충실히 담았다. 『사계절 홈 브런치』를 읽을 때 기분 좋은 공복감과 행복감이 내내 함께 했다. 다가올 사계절의 주말 아침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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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 안철우 교수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안철우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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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몇 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 여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건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또는 개인이 가진 관심사에 따라 같은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명화는 시간을 덧입고 수많은 사람의 해석이 더해져 끝없이 확장한다. 에드바르 뭉크에게 충동과 집착의 호르몬인 '도파민 과잉'이라는 진단명을 내린 저자 역시 명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의사인 저자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호르몬 도슨트'를 자처하며 명화 속 인물들을 호르몬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한다.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의 그림 속 여인은 얼굴에 푸른빛이 감돌고 눈두덩이는 푹 꺼져 있고 뺨은 홀쭉하다. 저자는 그녀를 멜라토닌 부족이라 말하고, 눈썹이 없이 우울한 모습의 <모나리자>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모나리자에 대한 이토록 재밌고 기발한 해석에 웃음끼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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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술은 보통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와 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미술 사조로 구분 지었다.


반면 이 책이 안내하는 호르몬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크게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의 희노애락으로 구분해 놓고, 네 가지 감정은 각각 3-4개의 방으로 세분화된다. 총 열네 개방은 같은 감정을 품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온 방에 꽉 찬 감정들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림의 형태와 모습 보다는 오히려 명화가 내포한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인물이 서있는 자세, 손 동작, 표정, 주변의 인물과 배경을 더 집요하게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놓쳤던 디테일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하고, 그림 속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동요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림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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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고 그림은 예술가의 감정의 표출, 그 자체인 점에서 그림을 호르몬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어렵게 느껴졌던 명화를 호르몬적으로 접근해보니 흥미롭고 재밌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호르몬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예술가와 그들이 그렸던 그림에 대한 내용도 충실히 담았다.



모딜리아니의 연인이었던 잔 에뷔테르는 모딜리아니에게 왜 인물에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영혼을 알아야 그릴 수 있다고 대답했다. 모딜리아니는 그녀와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잔을 그린 <소녀의 초상>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가난하게 예술을 이어가던 모딜리아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몸을 던져 그를 따라갔다. <소녀의 초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이해해서 눈동자를 그려 넣는 그의 붓터치가 생생히 떠오르며 그들의 짧은 사랑에 애석한 감정이 생겨난다.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사실적, 감정적인 깊은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새롭고 반가운 책이었다. 예술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싶어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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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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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할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명문대의 견고한 성 안에서도 그의 삶은 불안함에 마구 휘청인다. 그는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얕은 토양에 약한 뿌리를 간신히 내린 잡초처럼, 미국에서 지독히 외로운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카페 알제에서 '칼라지'라는 튀니지 출신의 아랍인 택시 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칼라지는 주인공의 내면을 뒤집어 씌운 듯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다. 칼라지는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집에서까지 쫓겨나 그에게 남은 건 자신의 몸과 택시 한 대가 전부다. 게다가 영주권을 얻지 못해 미국에서도 언제든 추방 당할 수 있었다. 주인공 역시 겉으로는 명문대생으로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듯 보이지만, 한 번 남은 박사 과정 재시험에서 떨어지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잃을 상황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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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하버드생과 택시 기사는 태생처럼 각인된 이방인이란 지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삶,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라는 공통점으로 급격히 가까워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칼라지와 가까워지는 만큼 밀어내고 싶은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쓰고 있던 하버드생의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운명'과 닮아 있는 칼라지가 되어 버릴 것 같아 그에게 동질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고, 친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상황이 그보다 조금 더 낫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마음들. 인간은 본래 다면적이고, 감정은 모순적이다. 주인공과 칼라지는 미국을 증오한다고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간절하고 처절하게 '특대형 대용품'의 나라 미국에서 정착하여 '진정한 미국인'으로 살고 싶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의 이번 신작 장편 소설, 『하버드 스퀘어』는 세월이 겹겹이 쌓여 아득해진 1977년의 여름, 다른 듯 닮아 있는 두 사람의 우정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미묘함와 감정의 모순성을 그려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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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 칼라지는 자신이 깊숙이 숨기고 싶은 속마음과 본능, 정체성과 민낯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존재였다. 칼라지는 주인공조차 몰랐던 자신의 다른 면을 보게 하고, 절제된 그의 삶을 마구 휘젓어 놓는다. 그는 칼라지를 만나 변하는 자신의 성격과 삶의 방식에 혼란을 느낀다. "나는 누구든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찰흙일 뿐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렇게 고뇌했다. 
그 둘의 관계는 함께하고 싶지만, 끈적이는 불쾌감에 당장이라도 떨어지고 싶은 한여름의 계절을 닮았다. 관계란 동질감에 가까워진 두 세계의 벽이 무너지고 서로의 깊은 사적 영역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다가, 자신의 세계가 침범 당했다는 거부감에, 또는 너와 나는 결국 다르다는 이질감에, 다시 멀어지며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관계들로 인해 끊임없이 내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를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안드레 애치먼은 이번 작품에서도 '관계의 아득함을 그리는 여름의 작가'의 타이틀을 굳건히 쥐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관계는 소설 속에 갇혀있지 않는다.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관계의 이야기는 내 삶 속으로 파고들어 나 또한 아득하게 멀어졌던 관계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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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 상징 코드로 읽는 서울 인문 기행
조동범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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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다. 마치 퇴적암이 시간을 품고 있듯이 말이다. 이 책은 근대가 움트기 시작한 경성부터 롯데월드타워가 신기루처럼 우뚝 솟은 지금의 서울까지, 100년의 시간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항상 드나들던 익숙했던 장소의 감춰져 있던 비밀의 문을 발견하듯, 서울을 이해하는 새로운 경로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이다. ​​


_익선동과 북촌의 한옥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북촌이다. 특히나 좁은 골목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한옥과 그 골목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교차는 외국인들의 시선으론 굉장히 신기하고 이국적인 풍경이라고 한다. 익선동과 북촌의 아름다운 풍경은 자칫하면 적산가옥 단지가 될 뻔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보통 남촌에 살았는데,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이 점차 많아지자 익선동을 포함하는 북촌 일대까지 일본인 거주지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정세권'이 익선동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집단 한옥 거주지를 조성한 것이 지금의 북촌과 익선동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_힙한 을지로의 씁쓸한 뒷면

레트로 열풍이 꽤 길게 이어진다. 덕분에 을지로는 하루 아침에 힙한 공간이 됐다. 오래되었음을 마케팅 무기로 삼아 곳곳에 카페와 바들이 생겨났고, 젊은 세대들은 옛날 감성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레트로가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낡고 쇠퇴한 장소와 그 안의 살고 있는 고단하고 가난한 타자의 삶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일종의 '빈곤 포르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래되었고 낡음은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으나,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게 그건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는 빈곤과 고됨과 쇠퇴의 모습일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의 손을 이끌어 힙한 을지로의 씁쓸한 뒷면을 보여준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서울을 소개하는 책도, 여행서는 더더욱 아니다. 인문학의 정의처럼 서울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몰랐기 때문에 지나쳤던 흑백의 이야기들이 책의 텍스트를 만나 컬러감을 되찾는 듯했다. 이 책에서 거론하지 않은 서울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을 것이다. 발견하는 건 우리 몫이라고, 새로운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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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 - 칼로에서 멘디에타까지,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8인
유화열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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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

흔히 라틴아메리카로 불리는 중남미 아메리카의 예술은 우리나라와의 거리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양쪽 나라에 희미한 줄을 대어줬을 뿐이다. 낯선 중남미 아메리카 예술 중에서도 과거에 비주류로 차별 받았던 여성 예술가 8인을 모아 소개한 이 책은 봉인된 상자를 여는 것처럼 기대감과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렸다. ​

"여자로 태어나 재능을 갖는 것은 범죄다."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여성 누드화는 아름답지 않아서 아름답다. 뒤돌아 앉아 있는 여성의 누드는 그간 누드화로 소비되어온 여성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며, 오히려 외면보다 고통과 절망감에 휩싸인 내면의 민낯을 보여준다.

여성이 예술적 재능을 가진 것만으로도 범죄라고 말해야 했던 사회적 풍토는 얼마나 보수적이었을까.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말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 차별을 깨뜨리겠다는 대단한 각오까지 느껴진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들의 굴곡진 인생의 깊이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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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직관적으론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볼수록 불편하기까지하다. 그래서 그림보다 오히려 그녀가 겪어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의 감정이 먼저 느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프리다의 불편한 그림을 계속 보다 보면 어느덧 그림 속 인물에 애잔한 감정이 생기고 어느새 동질감이 형성되다가 도리어 내가 위로 받는 지경에 이른다.

여성으로서 느꼈던 온갖 감정은 여성만이 처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감정을 알 수 없었던 또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남성의 시각에선 그저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넓은 괴리가 슬프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예술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의 삶일 정도로, 그녀들의 힘겨웠던 시간은 영혼에 흡수되어 다시 언어와 감정으로 분출되고 붓으로 흘러들어 캔버스를 물들였다. 그 복잡한 감정이 담긴 그림을 보니 예술은 단지 미美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영원을 넘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대단한 에너지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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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풍부한 도판과 작가의 인생과 이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독자를 한순간에 공간이동시켜 중남미 아메리카의 한 미술관에 서있게 한다. 강렬한 색채와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낯설고 새로운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작품 속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성차별, 왜곡된 여성성에 대한 저항, 인생의 고통, 사랑의 상처... 그녀들의 작품은 여성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시간을 넘어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성이 여성에게 주는 가장 찬란한 위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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