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 상징 코드로 읽는 서울 인문 기행
조동범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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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다. 마치 퇴적암이 시간을 품고 있듯이 말이다. 이 책은 근대가 움트기 시작한 경성부터 롯데월드타워가 신기루처럼 우뚝 솟은 지금의 서울까지, 100년의 시간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항상 드나들던 익숙했던 장소의 감춰져 있던 비밀의 문을 발견하듯, 서울을 이해하는 새로운 경로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이다. ​​


_익선동과 북촌의 한옥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북촌이다. 특히나 좁은 골목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한옥과 그 골목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교차는 외국인들의 시선으론 굉장히 신기하고 이국적인 풍경이라고 한다. 익선동과 북촌의 아름다운 풍경은 자칫하면 적산가옥 단지가 될 뻔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보통 남촌에 살았는데,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이 점차 많아지자 익선동을 포함하는 북촌 일대까지 일본인 거주지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정세권'이 익선동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집단 한옥 거주지를 조성한 것이 지금의 북촌과 익선동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_힙한 을지로의 씁쓸한 뒷면

레트로 열풍이 꽤 길게 이어진다. 덕분에 을지로는 하루 아침에 힙한 공간이 됐다. 오래되었음을 마케팅 무기로 삼아 곳곳에 카페와 바들이 생겨났고, 젊은 세대들은 옛날 감성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레트로가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낡고 쇠퇴한 장소와 그 안의 살고 있는 고단하고 가난한 타자의 삶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일종의 '빈곤 포르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래되었고 낡음은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으나,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게 그건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는 빈곤과 고됨과 쇠퇴의 모습일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의 손을 이끌어 힙한 을지로의 씁쓸한 뒷면을 보여준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서울을 소개하는 책도, 여행서는 더더욱 아니다. 인문학의 정의처럼 서울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몰랐기 때문에 지나쳤던 흑백의 이야기들이 책의 텍스트를 만나 컬러감을 되찾는 듯했다. 이 책에서 거론하지 않은 서울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을 것이다. 발견하는 건 우리 몫이라고, 새로운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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