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 - 칼로에서 멘디에타까지,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8인
유화열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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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

흔히 라틴아메리카로 불리는 중남미 아메리카의 예술은 우리나라와의 거리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양쪽 나라에 희미한 줄을 대어줬을 뿐이다. 낯선 중남미 아메리카 예술 중에서도 과거에 비주류로 차별 받았던 여성 예술가 8인을 모아 소개한 이 책은 봉인된 상자를 여는 것처럼 기대감과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렸다. ​

"여자로 태어나 재능을 갖는 것은 범죄다."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여성 누드화는 아름답지 않아서 아름답다. 뒤돌아 앉아 있는 여성의 누드는 그간 누드화로 소비되어온 여성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며, 오히려 외면보다 고통과 절망감에 휩싸인 내면의 민낯을 보여준다.

여성이 예술적 재능을 가진 것만으로도 범죄라고 말해야 했던 사회적 풍토는 얼마나 보수적이었을까.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말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 차별을 깨뜨리겠다는 대단한 각오까지 느껴진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들의 굴곡진 인생의 깊이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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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직관적으론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볼수록 불편하기까지하다. 그래서 그림보다 오히려 그녀가 겪어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의 감정이 먼저 느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프리다의 불편한 그림을 계속 보다 보면 어느덧 그림 속 인물에 애잔한 감정이 생기고 어느새 동질감이 형성되다가 도리어 내가 위로 받는 지경에 이른다.

여성으로서 느꼈던 온갖 감정은 여성만이 처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감정을 알 수 없었던 또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남성의 시각에선 그저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넓은 괴리가 슬프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예술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의 삶일 정도로, 그녀들의 힘겨웠던 시간은 영혼에 흡수되어 다시 언어와 감정으로 분출되고 붓으로 흘러들어 캔버스를 물들였다. 그 복잡한 감정이 담긴 그림을 보니 예술은 단지 미美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영원을 넘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대단한 에너지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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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풍부한 도판과 작가의 인생과 이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독자를 한순간에 공간이동시켜 중남미 아메리카의 한 미술관에 서있게 한다. 강렬한 색채와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낯설고 새로운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작품 속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성차별, 왜곡된 여성성에 대한 저항, 인생의 고통, 사랑의 상처... 그녀들의 작품은 여성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시간을 넘어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성이 여성에게 주는 가장 찬란한 위로였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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