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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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할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명문대의 견고한 성 안에서도 그의 삶은 불안함에 마구 휘청인다. 그는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얕은 토양에 약한 뿌리를 간신히 내린 잡초처럼, 미국에서 지독히 외로운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카페 알제에서 '칼라지'라는 튀니지 출신의 아랍인 택시 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칼라지는 주인공의 내면을 뒤집어 씌운 듯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다. 칼라지는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집에서까지 쫓겨나 그에게 남은 건 자신의 몸과 택시 한 대가 전부다. 게다가 영주권을 얻지 못해 미국에서도 언제든 추방 당할 수 있었다. 주인공 역시 겉으로는 명문대생으로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듯 보이지만, 한 번 남은 박사 과정 재시험에서 떨어지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잃을 상황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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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하버드생과 택시 기사는 태생처럼 각인된 이방인이란 지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삶,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라는 공통점으로 급격히 가까워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칼라지와 가까워지는 만큼 밀어내고 싶은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쓰고 있던 하버드생의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운명'과 닮아 있는 칼라지가 되어 버릴 것 같아 그에게 동질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고, 친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상황이 그보다 조금 더 낫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마음들. 인간은 본래 다면적이고, 감정은 모순적이다. 주인공과 칼라지는 미국을 증오한다고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간절하고 처절하게 '특대형 대용품'의 나라 미국에서 정착하여 '진정한 미국인'으로 살고 싶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의 이번 신작 장편 소설, 『하버드 스퀘어』는 세월이 겹겹이 쌓여 아득해진 1977년의 여름, 다른 듯 닮아 있는 두 사람의 우정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미묘함와 감정의 모순성을 그려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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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 칼라지는 자신이 깊숙이 숨기고 싶은 속마음과 본능, 정체성과 민낯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존재였다. 칼라지는 주인공조차 몰랐던 자신의 다른 면을 보게 하고, 절제된 그의 삶을 마구 휘젓어 놓는다. 그는 칼라지를 만나 변하는 자신의 성격과 삶의 방식에 혼란을 느낀다. "나는 누구든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찰흙일 뿐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렇게 고뇌했다. 
그 둘의 관계는 함께하고 싶지만, 끈적이는 불쾌감에 당장이라도 떨어지고 싶은 한여름의 계절을 닮았다. 관계란 동질감에 가까워진 두 세계의 벽이 무너지고 서로의 깊은 사적 영역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다가, 자신의 세계가 침범 당했다는 거부감에, 또는 너와 나는 결국 다르다는 이질감에, 다시 멀어지며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관계들로 인해 끊임없이 내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를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안드레 애치먼은 이번 작품에서도 '관계의 아득함을 그리는 여름의 작가'의 타이틀을 굳건히 쥐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관계는 소설 속에 갇혀있지 않는다.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관계의 이야기는 내 삶 속으로 파고들어 나 또한 아득하게 멀어졌던 관계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주인공처럼.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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