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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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역시 단편소설이다! 🏖휴가지에 챙겨가 짬짬이 읽을 때도 부담 없고 여러 단편 소설이 주는 전환감이 푹푹 찌는 날씨에 지친 기분을 달래준다. ​⠀



따뜻한 유머를 지닌 일본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반가운 신간이 출간됐다. 작가의 이름을 들으니, 「공중그네」를 읽던 때의 장소와 상황이 희미하게 살아난다. 노래에 수많은 사람이 기억이 묻혀 있듯이, 책에도 시간을 저장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이번 그의 신간은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으로, 표제작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코로나와 잠수복』이다. ⠀



『코로나와 잠수복』의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와타나베 야스히코는 임신 육 개월인 아내 마리코, 다섯 살 아들 우미히코와 도쿄에서 살고 있는 35세 회사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재택근무를 지시받은 야스히코는 어린이집이 휴원 중이라 집에 있는 다섯 살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고 있다. 일하는 중에 짬짬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와 놀아주며 지내다, 몇 번의 일을 겪고 아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사람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확도는 무려 100%였다. 그러던 중, 외부 미팅을 다녀온 자신을 피하는 아들을 보고, 야스히코는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되었음을 직감하고 가족에게 전파하지 않기 위해 구할 수 없는 방호복 대신 중고 상점에서 산 구식 잠수복과 헬멧 세트를 입고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 담긴 다섯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 나름의 위기 상황에 처했다. 첫 번째 이야기 「바닷가의 집」은 아내가 외도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온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바닷가가 보이는 한적한 마을의 집을 잠시 임대하여 살기로 한다. 하지만 첫날밤부터 아무도 없는 2층에서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옆집에 사는 고상한 노부인을 만나, 예전에 이 집에 살았던 7살 아이가 안타깝게 죽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의 유령과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된 소설가. 그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불량배들과 싸움에 휘말리고 죽을 뻔한 위기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지금, 무언가 힘든 일로 모든 길이 막힌 미로에 갇혔다고 생각이 들 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우리는 '완벽히' 혼자인 것 같을 때도 '절대'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존 버거의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주인공이 가는 여행지마다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 애인이 말을 걸어온다. 여행 가방보다 더 무겁게 짊어지었던 고민과 물음은 그들과 대화하며 점차 가벼워진다. 초현실적인 힘에 의지해서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우리에겐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막다른 길에서 우리를 수호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또는 믿음이 필요하다. 작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은 위로를 건넨다. 오쿠타 히데오의 소설은 웃음 끝의 뒷맛이 따뜻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바닷가의 집⠀
아내의 외도로 상처받고 바닷가를 찾은 소설가⠀

⏾파이트 클럽 ⠀
조기 퇴직 권고 불응으로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복싱에 빠진 중년 가장들⠀

⏾점쟁이⠀
인기 프로야구 선수 남자친구의 결혼 신청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나운서⠀

⏾코로나와 잠수복⠀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걸 직감하고 잠수복으로 방호복을 대신한 아빠⠀

⏾판다를 타고서⠀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중고로 구입하고 이상한 내비게이션을 따라 여행한 남자⠀



_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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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감상 수업 - 하루 한 곡, 내 것으로 만드는 클래식 100
유니쓰.루바토 지음, 김은하 감수 / 뜨인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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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목이 정말 중요하다. 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키워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클래식 수업'이 아니라 클래식 '감상' 수업임에 주목해야 한다. 클래식은 여러 악장을 지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것이 보통인데, 『클래식 감상 수업』에 담긴 100곡의 대부분은 10분 내로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을 추리거나 긴 곡의 경우 일부 악장만 실었다. 그리고 복잡하고 긴 곡명을 일일이 검색할 필요 없이 본문의 QR코드를 인식하면 바로 음악이 재생된다. 즉 『클래식 감상 수업』은 제목과 같이, 독자들이 클래식을 '감상'하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에 각별히 신경 쓴 책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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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부터 익숙하지 않아 긴장하게 만들더니, 두 번째 곡으로 '클래식' 범주에 들어갈 거라 생각지도 못한 곡이 소개된다. 본문 속 QR코드를 인식하니 거실 중앙에 식탁이 놓여있는 무대가 등장한다. 잠시 후 4명의 연주자가 한 명씩 들어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사용해 연주하기 시작한다. <거실 음악>은 존 케이지가 음악에 우연성을 도입한 곡으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어서 나오는 이 곡의 2악장은 미국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작품 속 한 문장, 'Once upon a time the world was round and you could go on it round and round.'을 가지고 네 명의 연주자가 단어의 음고를 올리거나 내리고, 특정 단어를 반복하거나, 의성어를 넣어 리듬과 변화를 주면서 문학으로 음악을 만들어 간다. ⠀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0곡의 클래식은 시대순이 아니라 1) 리듬, 2) 선율, 3) 화음, 4) 구성, 5) 음색, 6) 테크닉의 음악적 특징으로 분류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는 조스캥이 1400년대에 작곡한 곡을 듣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1700년대 비발디의 곡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듯 한 페이지를 넘기면 몇 백 년의 시간을 건너 뛰기도 하고 한 챕터 안에서 익숙한 곡과 생경한 곡이 우연처럼 맞닥뜨려 지루할 틈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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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해 주는 '곡의 비하인드'를 읽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라는 곡은 교황이 곡의 신비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금지시킨 곡이었다고 한다. 1770년대까지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그것도 성 고난 주간에 드리는 테네브레 예배 동안에만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던 곡이 세상에 나온 것은 바로 '모차르트'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곳을 여행 중이던 모차르트가 이 곡을 듣고 단번에 필사했고,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재방문해서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 덕분에 이 곡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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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었을 때, '에릭 사티'의 음악에 대한 철학이 그 많은 문장들 사이에서 끝내 버티고 살아남아 내 손에 쥐어졌다. ⠀

"그는 음악회를 위한 작품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배경음악처럼 쓰일 수 있는 작품 쓰기를 추구했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배경 삼아 일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졌어요." __70p⠀

그래서 그의 음악은 '가구 음악'이라고 불린다. 집 안에 있는 가구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역할을 하는 음악. 내 인생 어느 순간에 배경음악이 되어주는 선율. 이 책을 읽는 이유는 클래식을 공부하기 위함도, 음악적 지식을 쌓기 위함도 아닌, 결국 나만의 '가구 음악'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떨 땐 백 마디 말보다 음악 한 곡이 대단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 책에서 그런 곡을 몇 곡만 찾았다고 해도 큰 수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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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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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 -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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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위해 내려놓은 차가 적당히 식어서,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쥐면 금세 마음까지 따뜻해질 거 같은 그런 온도.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은 그런 온도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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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마 모지스granma moses'는 미국인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화가,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1961)의 애칭이다. '그랜마'란 수식어는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나이와 관계가 있다. 무언가 시작하기에 용기가 꺾이는 나이인 75세에 그녀는 붓을 들었다. 어떠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였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기보단,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46p)"​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은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걸음 떨어져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림 속 마을의 분주하지만 질서 잡힌 삶이 주는 평화로움 덕분에 나도 덩달아 바쁜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멀리서 보면 평온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즐거움이 번져 미소가 지어진다. 그림 속 모든 인물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인데, 마치 어릴 때 '월리를 찾아라'라는 책을 보는 것처럼 인물들 한 명 한 명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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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작품인 슈거링 오프(Sugaring off, 1955)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였던 단풍나무 시럽을 만드는 날을 그린 그림이다. 한겨울, 눈이 소복하게 내려 나무에는 눈꽃이 활짝 피고 온통 하얀 세상이 된 가운데,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메이플 시럽'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누군가 단풍나무 수액을 큰 통에 옮기고, 누군가는 땔감 나무를 싣고, 누군가는 큰 솥에 수액을 끓여 시럽을 만든다. 단내가 나는 눈 밭을 어린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신나서 뛰어다닌다.


그랜마 모지스는 모델을 세우거나 보이는 것을 묘사하듯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의 장면을 불러와 재구성하여 그렸다.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녀의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모든 사람이 주인공 같다. 그림을 그릴 때 어느 누구도 소홀하게 그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여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구석구석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산까지, 그다음은 언덕까지, 그다음은 집과 성, 그리고 사람들까지 그리죠.(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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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평생 농장 일을 하면서 집안일에 부업까지 했으며, 열 명의 자식 중 다섯을 먼저 앞세웠던​ 그녀의 삶이 결코 편하고 행복하기만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유독 '찬란한 보통날'을 그렸던 이유는 먼저 떠난 자식들과 동생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일상의 순간들을 그린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개정판에서는 미국 모지스 할머니 재단의 그림 저작권 사용권을 국내 최초로 획득하여 실제 작품과 동일한 이미지를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아트 메신저 이소영의 그랜마 모지스 그림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림과 닮은 그녀의 따뜻한 글이 서로 잘 녹아들어 이 책에 특별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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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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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무 설명과 소개 없이 읽는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저자의 「​감사의 글」​에서 놀라움에 잠시 정지된 순간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칠레의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프리츠 하버, 슈바르츠실트, 그로덴티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이 세상의 진실을 마주했던 수학자와 과학자들의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허구와 작가적 상상력을 버무려 너무나 매혹적인 다섯 가지 이야기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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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묘하기에 매력적이다. '논픽션 소설'임을 감안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야기들이 끝말잇기를 하듯 서로의 꼬리를 물고,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낳는 벵하민 라바투트만의 기묘한 구성에 독자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에서 길을 잃고 무엇에 홀린 듯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했다. 벵하민 라바투트의 이야기들은 첫 문장부터 강력한 자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책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은 이렇게 시작한다.



<베를린 자택에서 차를 마시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배달된 봉투는 1915년 12월 22일 제1차세계대전 참호에서 발송된 것이었다. 봉투는 화염에 휩싸인 대륙을 가로질렀다. 구겨지고 얼룩지고 흙이 묻었으며 한쪽 가장자리가 완전히 뜯겨져나갔다. 발신인 이름은 커다란 핏자국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장갑을 끼고서 나이프로 봉투를 개봉했다.>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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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낸 이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카를 슈바르츠실트'였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대한 상대론적이론으로 아인슈타인 자신마저도 정확한 해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던 슈바르츠실트가 보낸 것은 바로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해解였다. 하지만 이 해解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다른 부분과 단절된,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 생겼던 것이다.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 불렀고, 이것은 우리가 '블랙홀'이라 알고 있는 것의 '수학적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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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첫 번째 작품 「​프러시안블루」​나 두 번째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은 사실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이야기 대부분이 사실과 사실 사이의 공백에 작가가 '문학적 허구의 다리'를 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작가의 「​감사의 글」을 읽고 잠시 정지된 순간을 경험했다. 뒤로 갈수록 허구의 비중이 높아져 문학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글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과 허구의 비중을 고무줄을 가지고 놀 듯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칠레의 젊은 작가는 논픽션 소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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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다. 뒤로 갈수록 허구의 비중이 커진다. 「프러시안블루」에는 허구의 문장이 하나밖에 없는 반면에 뒤어서는 더 자유분방하게 쓰되 각 작품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심장의 심장」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모치즈키 신이치의 경우는 독특하다. 나는 그의 연구에 나타난 특정한 측면에서 영감을 얻어 알렉산더 그로덴티크의 정신을 들여다보았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모치즈키와 그의 일생, 그의 연구는 대부분 허구다.>___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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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은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슈뢰딩거의 양자역학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단지 이야기의 소재나 영감으로써 작가가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독자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작가는 다섯 가지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한 인간이 작은 책상에 앉아 우주만큼 정신을 확장할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면 안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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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윤정 옮김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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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 평론가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게일 콜드웰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해,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암흑과 같은 인생의 길을 내딛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일 콜드웰의 이번 신작을 읽다가 최근 푹 빠져 있었던 캐럴라인 냅의 흔적을 여러 군데에서 발견했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절친 사이였다고 한다. 이 책과 캐럴라인 냅의 책을 함께 쌓아 놓으며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읽었다. 서로를 마주 봤던 두 친구가 각자의 시선으로 동시간을 적어낸 문장들이 합쳐져 선명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게일 콜드웰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원망과 분노 없이 소아마비를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말한다. "말하자면 소아마비가 나의 기준점인 셈이다. 밀고 나가야만 했던 벽이다. 모두에겐 그런 벽이 하나씩 있다.(240p)," 그녀는 자신이 못하는 건 못하는 걸로 두고 초연하게 다른 문을 열었다. "어릴 때 나는 못하는 게 많았다. 자전거 타기, 줄넘기, 달리기, 소프트볼, 농구. 더 중요한 건 내가 별로 개의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 그 문을 닫자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39p)"



소아마비 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조건으로 간단히 받아 들였던 그녀에게도 불과 몇 년 사이로 닥친 부모와 친구의 부모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절친한 사이었던 작가 캐럴라인 냅이 마흔 둘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 해엔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몇 년 후 그녀의 버팀목이었던 엄마와 20여 년간 함께 산 반려견마저 떠났다. 심지어 60세의 나이로 고관절 전치환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고 걷는 연습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 60세의 나이로 받아야 했던 큰 수술. 하루 아침에 내 삶이 뒤바뀐 것 같은 생경함, 슬픔, 당혹감은 그녀를 주저 앉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주저 앉은 그녀는 깨닫는다. 각자의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야기의 특성이 그렇듯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고 곳곳에 반전이 숨어 있고 이야기는 극적으로 전환된다. "이야기는 끔찍할 수도, 비통하고, 두렵고, 절망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 당신을 여기 있게 한 건 바로 그 이야기며, 그 이야기의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결과를 견딜 만해진다.(241p)"



소아마비를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였듯, 설명서 없이 주어지는 인생의 힘겨운 순간들을 작가다운 생각으로 '이야기의 극적 전환'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결과를 그저 견뎌내는 그녀를 보며 큰 위로를 받는다. 힘든 시기에 그녀에게 온 사모예드 튤라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또한 이 책의 감동과 재미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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