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 할머니 -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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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위해 내려놓은 차가 적당히 식어서,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쥐면 금세 마음까지 따뜻해질 거 같은 그런 온도.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은 그런 온도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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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마 모지스granma moses'는 미국인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화가,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1961)의 애칭이다. '그랜마'란 수식어는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나이와 관계가 있다. 무언가 시작하기에 용기가 꺾이는 나이인 75세에 그녀는 붓을 들었다. 어떠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였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기보단,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46p)"​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은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걸음 떨어져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림 속 마을의 분주하지만 질서 잡힌 삶이 주는 평화로움 덕분에 나도 덩달아 바쁜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멀리서 보면 평온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즐거움이 번져 미소가 지어진다. 그림 속 모든 인물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인데, 마치 어릴 때 '월리를 찾아라'라는 책을 보는 것처럼 인물들 한 명 한 명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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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작품인 슈거링 오프(Sugaring off, 1955)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였던 단풍나무 시럽을 만드는 날을 그린 그림이다. 한겨울, 눈이 소복하게 내려 나무에는 눈꽃이 활짝 피고 온통 하얀 세상이 된 가운데,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메이플 시럽'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누군가 단풍나무 수액을 큰 통에 옮기고, 누군가는 땔감 나무를 싣고, 누군가는 큰 솥에 수액을 끓여 시럽을 만든다. 단내가 나는 눈 밭을 어린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신나서 뛰어다닌다.


그랜마 모지스는 모델을 세우거나 보이는 것을 묘사하듯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의 장면을 불러와 재구성하여 그렸다.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녀의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모든 사람이 주인공 같다. 그림을 그릴 때 어느 누구도 소홀하게 그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여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구석구석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산까지, 그다음은 언덕까지, 그다음은 집과 성, 그리고 사람들까지 그리죠.(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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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평생 농장 일을 하면서 집안일에 부업까지 했으며, 열 명의 자식 중 다섯을 먼저 앞세웠던​ 그녀의 삶이 결코 편하고 행복하기만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유독 '찬란한 보통날'을 그렸던 이유는 먼저 떠난 자식들과 동생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일상의 순간들을 그린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개정판에서는 미국 모지스 할머니 재단의 그림 저작권 사용권을 국내 최초로 획득하여 실제 작품과 동일한 이미지를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아트 메신저 이소영의 그랜마 모지스 그림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림과 닮은 그녀의 따뜻한 글이 서로 잘 녹아들어 이 책에 특별함을 더한다.



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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