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 -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명작 그리기
엘리북 편집부 지음 / 엘리북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 있어서 혜원 신윤복 만큼이나 색시한 작품을 남긴 화가는 없을 것이다. 유려한 선과 강렬한 채색, 그리고 묘한 상황이 주는 그의 스타일은 정말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어떤 한 연구자는 그의 작품이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의 우키요에라는 풍속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의 스타일이나 화풍에서 그런 분위를 많이 느낄 수는 있으나,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뭏든 김홍도와 더불어서 신윤복은 조선이 낳은 걸작이다. 당시의 에로티시즘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감상한 그림은 '쌍검대무' 라는 작품이다. 이 걸작은 국보 135호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그 가치를 알만하다 할 것이다.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 쌍검을 들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 두 명이 검무를 추고 있고, 그 주변으로 악사와 구경꾼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장면이다. 검을 든 기생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붉은색과 샛파란색으로 화려하게 채색을 했으며, 그 움직임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율동이 느껴지는 지라 한 폭의 양반춤을 보는것 같다.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색감을 옅게 만들었다.


특히나 정중앙 보다는 그림 오른쪽에 있는 기생의 동작이 매우 다이나믹한데 필자는 자꾸만 그 여인네에게로 시선이 가고 만다. 오른손에는 노리개를 매단 장검을 머리쪽으로 들고 있고, 왼손은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넣어 또 하나의 검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모둠발을 띈 흰 버선 한 짝이 바람에 날리는 치맛살 아래로 살짝 드러나 있으며, 머리에도 화려한 관을 썼다. 이 모양이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뭔가 필자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이 있는것이 분명하다. 설명이 장황했는데 누구나 한 번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아하~ 과연 혜원 신윤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루벤스 ㅣ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23
임영방 지음 / 서문당 / 199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자가 아는 유명한 벨기에의 인물이라면 딱 2명이다. 바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에큐르 포와르, 그리고 플랜더스의 개를 통해서 알게된 바로크 화가 루벤스다. 그의 예술세계는 당대의 화가들이 그렇듯이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하며, 여기에 귀족풍의 격정적인 그림을 많이 남겼다. 뭐라고 할까? 사진학으로 비유를 들어보자면, 배경과 피사체가 분리된 것과 같은 스타일이다. 여기에 글래머스런 여인의 관능미, 에너지가 느껴지는 마초적인 남자의 근육이 밝고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플랜더스의 개 파트라슈와, 주인공 네로가 생각난다면 루벤스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한번 감상해 보자.


개인적으로볼때 그는 특히나 군무에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캐릭터와 그의 풍만한 살집들, 그리고 배경과 어우러지면서도 화사하게 빛나는 주인공들, 이들 모두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듯 싶다. 한편, 지극히 개인적으로 볼때 그의 스타일은 발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맨발의 모양이 특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은 여자의 발가락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글래머처럼 통통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섹시해보인다는 사실이다. ㅎㅎㅎ. 이런 것을 뭐라고 하지? 여인네의 발에 매력을 느끼는 행위를 페티시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아뭏든 루벤스의 그림에서 필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니 가만있어보자. 혹시나 루벤스 그 자신은 몰랐지만 그의 내부에 그러한 면이 약간이나마 내재해있어서 이렇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야만인의 절규 -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1 폴 고갱
폴 고갱 지음, 강주헌 옮김 / 창해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선이 굵은 인상파 화가 중 한명인 폴 고갱, 그가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작품은 뭐라고 할까? 소박하면서도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의 작품세계는 프랑스와 타히티 시절로 구분이 되는데, 전자가 인상파의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다면 후자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특징지운 시기다. 특히나 사랑하는 딸 알린의 죽음은 그가 자살을 시도할 만큼, 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 사건 이후에 그의 작품세계에는 --심미안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갱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한번 들춰보는것도 좋겠다.

그의 풀 네임은 외젠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인데, 편의상 줄여서 뒤의 3글자만 쓴다. 한편, 그는 특이하게도 한동안 본업을 유지하면서 예술을 한 사람이었다. 원래 그의 직업은 주식중개인이었으며,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을 고흐의 동생인 테오가 화랑을 운영하면서 판매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으로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친한 친구사이였었다. 그런데, 어느날 고갱이 고흐에게 하나의 그림을 선사하는데, 거기에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가 볼품없이 표현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고 고흐는 고갱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 일로 그 두사람의 인연이 끝나버리고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매우 유명한 예술작품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폴 고갱의 작품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VAN GOGH - 빈센트 반 고흐 ㅣ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4
파스칼 보나푸 지음, 정희숙 옮김 / 열화당 / 199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한쪽 귀를 짤라서 사모하는 여인에게 보냈다는 일화는 아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명하다. 비운의 삶을 살다간 예술가, 살아서는 그의 예술이 인정받지 못했으며 후대에 와서야 빛을 본 인물. 이런 경우가 어디 한 두명이겠냐마는 고흐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한 것 같다. 생전에 그는 고갱과 친구였는데, 한번은 바람과 비가 심하게 부는날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갔다고 한다.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며, 이 에피소드로 인해서 한동안 고갱이 고호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ㅎㅎ 나중에는 서로 결별을 하고 말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몇년전 고호의 해바라기가 350억 원에 경매낙찰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가격이 한국돈으로 무려 95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고도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매무 거품이 많이 끼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지금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그저 그럴 것이다. 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짧은 생을 살다간 고호는 약 10여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많은 회화작품을 창작해놓고, 결국에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그의 작품이 널리 인정을 받게 된다. 살아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죽어서도 이름이 길이 빛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사 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에서 그런 예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파블로 피카소 - 20세기 미술의 발견
마순자 옮김 / 예경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입체파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피카소의 인기는 --가령 배용준의 인기만큼이나--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것 같다. [아비뇽의 처녀들] 이라는 작품이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필자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긴것은 [게르니카]라는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 눈에 보기에도 뭔가 지옥스럽고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이 확 다가온다.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한 마 을이름이다. 그런데 스페인 내란중에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만든 대작이 바로 게르니카다. 하여간 피카소에 대해 오롯이 알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시라.


대개의 평범을 벗어난 사람이 그렇듯이 피카소도 남다른 무엇이 있었는데, 바로 여성편력이었다. 그는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서 공식적으로만 7명의 여자와 같이 살았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그의 예술 작품을 위한 도구, 혹은 성적인 대상으로만 머물렀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한 여성과 10년을 넘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고하며, 이에 따라 자녀들과의 관계도 무척이나 소원해졌다고 한다. 그의 집념이랄까? 광기가 어느정도였냐하면? 46세에 이른 피카소는 17세의 마리 테레즈라(미성년임)는 아이를 6개월간이나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결국 애인으로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남매를 각각 둔 이후, 그녀마저도 무자비하게 내쳤다고 하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후에 피카소가 죽고 난후 자살로 그 뒤를 따랐다고 하니, 사랑이랄까? 애증이랄까? 인간의 감정은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