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재원 아트북 17
재원 편집부 엮음 / 재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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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필자가 아는 유명한 벨기에의 인물이라면 딱 2명이다. 바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에큐르 포와르, 그리고 플랜더스의 개를 통해서 알게된 바로크 화가 루벤스다. 그의 예술세계는 당대의 화가들이 그렇듯이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하며, 여기에 귀족풍의 격정적인 그림을 많이 남겼다. 뭐라고 할까? 사진학으로 비유를 들어보자면, 배경과 피사체가 분리된 것과 같은 스타일이다. 여기에 글래머스런 여인의 관능미, 에너지가 느껴지는 마초적인 남자의 근육이 밝고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플랜더스의 개 파트라슈와, 주인공 네로가 생각난다면 루벤스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한번 감상해 보자.


개인적으로볼때 그는 특히나 군무에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캐릭터와 그의 풍만한 살집들, 그리고 배경과 어우러지면서도 화사하게 빛나는 주인공들, 이들 모두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듯 싶다. 한편, 지극히 개인적으로 볼때 그의 스타일은 발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맨발의 모양이 특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은 여자의 발가락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글래머처럼 통통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섹시해보인다는 사실이다. ㅎㅎㅎ. 이런 것을 뭐라고 하지? 여인네의 발에 매력을 느끼는 행위를 페티시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아뭏든 루벤스의 그림에서 필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니 가만있어보자. 혹시나 루벤스 그 자신은 몰랐지만 그의 내부에 그러한 면이 약간이나마 내재해있어서 이렇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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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s Notebooks (Paperback, 1st)
Da Vinci, Leonardo / Black Dog & Leventhal Pub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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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의 영화를 보면 세계적인 인물이나 천재를 지구인이 아닌,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설정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가령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필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세상에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살다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렇다. 다빈치의 습작 스케치나 비례도 등을 보게 되면, 정말로 외계인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다. 말년에 그는 아무것도 완성시켜 놓은 것이 없다라고 말을 했지만, 그가 후대에 남긴 영향력은 그의 작품 이상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여러 평론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작품 '모나리자의 미소' 을 매우 극찬하고 있는데, 필자는 안목이 좁아서 그런지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아마 이 주제를 다룬 책만해도 수백 권은 나왔을 것이다. 필자는 도대체 그 미소가 왜 그렇게 신비로운지 알수가 없다. 레오나르도 자산이 말했듯이 그것은 미완성 작품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질 수 밖에 없고 이것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펼쳐나간 것일뿐 여기에 무슨 엄청난 비밀과 코드가 숨겨진 것은 아닌것으로 본다. 나머지 여타의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그렇하고 하니까 그런줄 아는것이지 뭔가 심오한 것은 없다. 아마 이 얘기는 필자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 가서 직접 보면 그렇게 신비로운 뭔가가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란 어느 정도 과장하게 마련이고 이것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증폭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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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Art Classic 3
니콜레타 발다니.미켈레 프리스코 지음, 이윤주 옮김 / 예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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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를 이끈 세잔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외길을 꿋꿋히 걸었으며, 후대의 입체파와 추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후에야 인정 받았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세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그의 지인들이 나와서 세잔에 대해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반은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나중에 그와 결별하는 이야기로 꾸며져있다. 왜 헤어졌을까? 졸라가 그의 소설에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그렸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상했기 때문이다. 친구나 동료, 가족들이 주는 상처는 매우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


한편, 필자가 기억하는 세잔의 걸작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다. 이와 쌍을 이루는 목욕하는 여인들도 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전자다. 세잔 스타일을 보여주는 평범한 그림이다. 정면의 두 남자는 뒷모습으로 그려지고 한 남자는 완전한 나체, 다른 사람은 흰팬츠만 입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쪽 다리를 구부린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며 --이 인물은 다른 사람에 비해 푸른색조가 상당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 흰 팬츠의 우측에는 이제 막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엉덩이와 발걸음이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약간 멀리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하늘색과 흰구름, 인체의 피부색과 녹색의 나무들이 있다. 왜 이렇게 이 그림에 시선이 가는줄 모르겠다. 흠. 아마도 한쪽 무릎을 기울인 남자의 바로 아래에 물속에서 얼굴만 드러낸 한 남자가 관찰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 코믹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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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창해ABC북 1
이자벨 칸 외 지음, 염명순 옮김 / 창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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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를 이끈 세잔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외길을 꿋꿋히 걸었으며, 후대의 입체파와 추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후에야 인정 받았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세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그의 지인들이 나와서 세잔에 대해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반은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나중에 그와 결별하는 이야기로 꾸며져있다. 왜 헤어졌을까? 졸라가 그의 소설에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그렸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상했기 때문이다. 친구나 동료, 가족들이 주는 상처는 매우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


한편, 필자가 기억하는 세잔의 걸작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다. 이와 쌍을 이루는 목욕하는 여인들도 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전자다. 세잔 스타일을 보여주는 평범한 그림이다. 정면의 두 남자는 뒷모습으로 그려지고 한 남자는 완전한 나체, 다른 사람은 흰팬츠만 입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쪽 다리를 구부린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며 --이 인물은 다른 사람에 비해 푸른색조가 상당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 흰 팬츠의 우측에는 이제 막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엉덩이와 발걸음이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약간 멀리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하늘색과 흰구름, 인체의 피부색과 녹색의 나무들이 있다. 왜 이렇게 이 그림에 시선이 가는줄 모르겠다. 흠. 아마도 한쪽 무릎을 기울인 남자의 바로 아래에 물속에서 얼굴만 드러낸 한 남자가 관찰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 코믹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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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춤.데생
폴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 열화당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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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외길만 파는 사람이 있다. 드가가 그렇다. 그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렸다. 그것도 화려한 무대에서의 발레리나가 아니라, 무대 뒤편의 연습실을 주로 그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의 기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는데, 주된 이유는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아마도 발레리나만을 그리려했던 것은 그의 이런 성격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는 이제 좋은 면만을 바라보고자 한다. 드가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해 보자. 그가 발레리나를 주려 그렸던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아마도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드가는 부유한 집안을 가졌음-- 서민들의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가지 못한 길,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항상 동경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필자는 이렇게 외길을 가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면 목표가 생기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 정말로 뭔가 해보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 정신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이 있었으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발레리나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내 연상기억의 프로세스에는 미국의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떠오른다? 왜냐고? 그가 출연한 영화 빠삐용에서의 이름이 바로 드가이기 때문이다. ㅎㅎ 머리가 히끗희끗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빠삐용은 코코넛 열매로 얽기섥기 엮은 엉성한 구조물을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속에 던진다. 그리고 절벽에서 다이빙하여 거기에 올라타고 자유를 향해 헤엄쳐 간다. 아마도 주인공 빠삐용은 스티브 매퀸이었던가? 이젠 기억도 안나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나온 더스티 호프만(드가 역)은 한쪽 다리가 부서지고 한쪽 알에는 금이 간 안경을 끼고 그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난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탈출하려고 애를 쓰고 싶지 않다네. 그저 이 평화로운 감옥(섬)에서 일생을 마치길 원할 뿐이야~.
그리고 이 장면이 흐른뒤에 나레이션으로, 빠삐용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자유인으로 살았다고 나온다. 어떻게 하다보니 드가에 대한 서평이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소개가 되어버렸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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