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그곳들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떠난 길
마르그리트 뒤라스.미셸 포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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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들에 머물러 사는 건 여자들뿐이에요. 남자들은 그러지 못하죠. (중략) 내가 다른 여자들의 얘기를 할 때 그 다른 여자들에 나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마치 그 여자들과 내가 다공성을 타고난 것처럼 말이지요. 여자들이 잠겨있는 시간은 말이 있기 이전, 인간 이전의 시간이에요. (중략) 남자는 말하고 싶어 병이 납니다.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여기서 보는 여자들은 모두 우선 입을 다물지요. - P12

요컨대, 우리는 자기 경멸을 품고, 죄의식을 품고 떠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싸준 작은 싸구려 가방들을 들고 글을 쓰기 위해 떠나지요. 우리는 자유롭게 떠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믿어야만 해요. 우리는 타인들을 신뢰하지요... 사랑도 믿고… 욕망도 믿는데… 그런데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불신이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요? 공정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을 믿듯이 나 자신을 신뢰합니다. 나를 오롯이 신뢰해요.
- P38

시골의 여자들은 완전히 홀로 숲속에서, 오두막에서 몇 달이고 고립된 채 남아,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독이 뼈에 사무쳐 나무들에게, 식물들에게, 야생동물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지요. 다시 말해, 뭐랄까요.자연과 소통하는 재능을 찾아낸 거죠. 아니 되찾아낸 겁니다. (중략) 사람들은 그런 여자들을 마녀라고 불렀고,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 수가 백 만이나 되었다고 하지요. - P14

어쩌면 읽을 수는 없어도, 글로 쓰인 순간들이었어요. 그런가하면 글쓰기에서는 마치 오직 언어를 초월해야만 혹은 엄밀한 의미의 글쓰기를 초월해야만 온전히 쓸 수 있다는 듯이, 그 글의 일부만 통과되는 겁니다.
내게 바다는 온전히 글로 쓰였어요. 그것은 페이지들,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들, 가득 채워져서 텅 빈, 쓰여서 읽을 수 없는, 글로 가득한 페이지 같지요.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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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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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반짝이는 문장이 가득하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주인공은 움직이고 시간은 지나고 이야기는 끝난다. 글을 쓰는  화자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사랑은 다른 어디에도 아닌 사소한 것들에 깃들어 있거든. … 학문의 숲을 떠나 삶의 터전으로 들어가게 돼. 그곳에서 춤추기도 하고, 울기도 할 거란다. 모든 걸 잃고, 모든 걸 얻기도 하겠지. 가끔은 그런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해."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 가벼움이 오거나 안 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 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무엇에서든 글 쓸거리를 너무도 빨리 찾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삶은 대개는 사라지고, 대개는 모호하며,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피로, 느림, 잠은 언제나 나의 친구들이었다. 삶에서 아주 작은 행동도 내게는 언제나 막대하고 엄청난 힘을 필요로 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 세상을 들어 올려야 하고, 매번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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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난민 되다 - 미스핏츠, 동아시아 청년 주거 탐사 르포르타주
미스핏츠 지음 / 코난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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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주거문제를 공부할 때 한참 많이 읽고 참고한 책이다. 타이완, 홍콩, 일본, 한국 대도시의 청년주거는 닮아있다.


소득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싼 월세, 곰팡이가 피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열악한 주거환경, 대도시에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며 감당하는 주거비를 조사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청년 주거 문제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순한 현황 보고서가 아니다. 주거 지옥에서 뭐라도 목소리 내고 싸우는 청년주거운동들. 새로운 주거 모델을 공유하는 공동체들이 곳곳에 있다.


책 속의 주거 운동이 2023년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모두 ‘안정적으로 주거를 하려면 집을 사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집을 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서 오래도록 마음 편하게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해지는 날은 올까. 일단은 지금 머무는 공간, 내가 점유한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생길 때까지 1,2년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또 찍고 또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 P49

그렇지만 서울을 떠날 생각은 없다. ‘기회의 땅‘에서 뭔가를 뽑지 못하고 돌아가는 게 아깝기 때문이다. 번듯한 직장을 잡고 거기서 월급을 받을 때를 기다리며 버틴다. 버티는 이 기간은 터널을 지나는 기간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러나 터널은 언제쯤 끝날까. - P264

월세 살다 전세 살다 자가로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인 때가 있었다. 이를 ‘주거 사다리‘라고 칭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점점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 그러나 이제 그 사다리는 끊겼고, 전월세 전환 가속화로 전세로 목돈을 묵혀두는 건 꿈이 됐다. 20대, 30대 임차인의 소비지출 대비 주거비는 33퍼센트에 달한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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