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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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도 조각으로 삼는 글쓰기

모데라토 칸다빌레/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문학과지성사


2023.10.4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안 보이던 장면이 두 번째 읽었을 때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다. 왜 두 사람의 떨림과 열기를 놓쳤을까? 처음엔 안과 쇼뱅의 대화를 경청하는 데에 실패했고, 두 번째 읽으며 퍼즐을 맞추면 읽었다. (마치 친하게 지낸 동기 둘이 사귄지 몇 달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눈치없이 끼어서 셋이 밥을 먹은 날들이 떠올라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돌아보니 두 사람의 뜬금없는 웃음이나 눈짓이 오가던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 말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안과 쇼뱅의 대화는 점차 겹겹이 쌓인다. 카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안은 다음날 카페를 찾아가 떨리는 손으로 와인을 마시며 한 남자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독자는 안이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것으로 추측하지만,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안의 “거짓말”이 무엇이고, “속임수”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고 대화는 이어진다. 두 사람의 대화만 쫓다보면 이 소설은 이상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죽은 ‘그 여자’와 죽인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둥둥 떠있다. 안의 “죄지은 사람처럼 기어들어가는 변명조”(52쪽)처럼 편집증적인 두려움과 불안은 단순히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라기엔 너무 과장되어 보인다. 결말부에 이르러 어느새 결판이 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안은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두 사람은 카페 손님은 물론, 독자조차 속인다. 아마도 내가 그 카페에 앉아있었다면, 둘의 미묘한 긴장감을 모르는 눈치없는 손님이었을 것이다. 빙빙도는 대화가 답답해서 “사모님, 제가 사건을 목격했는데요”라고 사건 목격 브리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안과 쇼뱅이 카페에서 일주일 간 대화를 나누는동안, 카페 여주인은 가장 이 사건의 전말을 잘 아는 사람임에도 끼어들지 않는다. 대화가 이어지도록 잔만 채워줄 뿐이다. 사건에 집중하던 독자도 그와 함께 그 정도의 위치에서 두 남녀의 대화를 엿들어야 한다. 이 소설이 살인사건의 전말을 뒤쫓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안이 묻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눈치가 빠른 독자가 서사를 읽는다. 대화는 언어일 뿐이고, 진실은 언어가 아니라 침묵이 만드는 맥락에 있다. 


뒤라스식 글쓰기는 ‘침묵의 글쓰기’라고 불린다. “무엇이 될지 결정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쌓아 올려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작업인 것처럼 보인다”, “균열과 빈틈과 침묵에서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그 침묵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그 여자’와 ‘그 남자’로 표상되는 암시로 뒤덮여있다. 숭숭 뚫린 구멍을 앞뒤 없이 늘어놓고, 그 조각을 몇 개는 버리고 몇 개는 골라서 맞추면, 이야기를 A로 만들 수도, B로 만들 수도 있다. (남는 퍼즐이 있고, 정확한 완성이 없다는 점에서 직소 퍼즐보다는 칠교놀이에 가깝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집’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에는 세 공간이 나온다. 피아노 교사의 집, 부두 앞 카페, 안이 사는 저택이다. 이 중 저택은 배경으로 가장 짧게 등장하지만 안과 쇼뱅의 대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뒤라스에게 ‘집’은 중요한 장소다. 뒤라스의 소설과 극본 속 여성들은 그 집에 산다. 집을 “불가사의한 장소”라고 할 정도인데,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집을 은신하는 장소로, 안도감을 찾아 오는 장소로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나는 이곳 역시 다른 곳을 향해 닫힌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 안도, 가족, 가정의 포근함 등, 우리가 아는 이 모든 것과는 다른 일도 일어나지요. 집에는 가족에 대한 혐오도, 도피 욕구, 자살의 안갖 심기도 새겨져 있어요. 그 모든 것이 집입니다.”


뒤라스에게 집은 닫힌 장소이며, 여자가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되는 공간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도 집은 여자(안)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은 카페에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시에 저택의 복도와 방에 대해 설명한다. 2층 큰 창문으로 매일 밖을 내다보았다는 것,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공장 노동자를 보고, 때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늦은 시간 함께 걷는 연인들을 보았다. 창에서 밖을 보는 위치는 별다른 접촉이 없는 상태이고, 저택에서 안은 고립되어있다. 어느날 외출할 방법으로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생각해냈고, 한달 간 매주 금요일마다 예인선 둑에서 피아노를 배운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안의 감정을 뒤흔든다. 집 밖에 나온 안은 그게 용기, 욕망 또는 죄책감이든 간에 더 역동적인 사람이 된다.


안을 보며 은희경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한 북토크에서 은희경은 “문학은 실패한 사람들의 서사이고, 왜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초기에 불륜소설만 쓴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본인이 살아온 1970-80년대가 획일적이고 불합리한 허위의식이 가득했고, 가족제도에 대해 쓰다보니 가족제도에서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가 불륜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주인공을 내세워서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을 뿐이라고, 인간이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현 시스템 밖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 사람은 권위가 만든 도덕을 따르면 자유롭게 살 수 없으니까. 은희경의 말과 뒤라스 소설 속 인물들과 겹쳐 보였다. 


다만, ‘문학은 실패한 사람들의 서사’라는 말과 달리 이 작품 결말에 이르러 안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금지된 것을 욕망했으나, 안이 행복을 얻거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석양으로 걸어나갈 뒷문을 열어둔다. 그런데도 독자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결말을 보며, 안이 자유로울 것이라 상상하긴 어렵다. 독자들은 반드시 둘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어코 집 밖으로 나온 안은 실패했으리라 상상한다. 소설 밖의 독자는 자신의 언어를 조각 삼아 침묵을 채워넣어야 한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여자는 소설 밖의 세계와 조응한다. 금지된 것은 소설 밖의 세계의 권위에 의한 것이니. 독자가 가진 세계에 따라 이야기는 정해져있는 것도 같다. 뒤라스가 흘러가는 대로 썼듯이, 침묵의 조각은 읽는 사람이 흘러가는 대로, 그런데 이미 정해진 대로 완성할 몫이다.




참고


<뒤라스의 그곳들>, 마르그리트 뒤라스/미셸 포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뮤진트리, 2023




*서평모임 @ 한겨레교육센터

202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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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의미 -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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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의 정수를 모은 에센셜 시리즈 네 권 중 첫 번째 저작이다. ‘지구의 절반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유명한 〈지구의 절반〉을 제외하면, 인간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질문하는 이 책이 가장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꺼내오는 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혹하고 탐욕스러운지 주장하는 쪽이다.(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떠올려보자) 문명사회라는 틀을 벗겨내면, 극한 상황에 몰리면 누구든 야생동물들처럼 욕망과 본능만 쫓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또한 자연선택을 통한 유전적 성질임을 주장한다. 이분법적으로 이기심과 이타심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개체적 본능(이기심)과 집단적 본능(이타심)이 영원히 내면에 존재하고, 충돌하기 때문에 인간이 근원적인 모순을 갖는다고 본다. 

인간의 근원적 수수께끼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안타깝게도 해결된 건 없다. 여전히 우리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고, 그저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결국에는 타고난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가고, 아마도 그것을 창의성의 주된 원천으로 여기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38쪽) 윌슨이 보기에 과학이 밝혀낸 이 모순은 ‘자기이해’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자기이해에 토대를 둔 지혜만이 창조성과 다양성이 자라날 대지다.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떠오른다. 윌슨은 결국 창작 예술과 인문학에게 자리를 남겨놓는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사회생물학에서 느끼는 묘한 감정이 있다. 명쾌하지만, 명쾌해서 모호하다. 윌슨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생물종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인류의 진사회성이 다른 생물종의 사회적 행동과 닮았다고 말하면서도 8장에서 윌슨은 ‘개미로부터 도덕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또한 고도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서 개미와 동일한 초유기체로 인간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판한다. ‘자연도/개미도/유인원도 이러하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이런 성질을 갖는다’는 수준의 서술이 익숙했기 때문에, 윌슨의 이러한 단호함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론 사회생물학이 갖는 위계성, “가장 복잡한 수준의 진화”는 지구 상에서 단 한 차례, 인간종 뿐이며, 이타적 분업을 하는 계통 중 “고도의 지능”까지 갖춘 것은 호모 사피엔스 뿐이라는 입장이 주는 불편함같은 것도 있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서 위계를 느끼고 꺼림칙해 하는 것은 비과학적인가? 주류 과학이 갖는 인간중심주의는 비판해야 하는가? 윌슨은 4장에서 인간중심주의조차 개인과 집단 생존에 기여해왔다고 설명해버린다... 지독한 사회생물학자... 사회생물학에 대해(정확히는 인간중심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느끼는 이 묘한 감정 때문에 〈인간 존재의 의미〉라는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소되지 않았다. 윌슨이 출구를 열어두었듯이, 독자 또한 생물종으로서의 인간 특성만으로 모든 실존적 의미를 결론짓지 않는 수밖에 없다.


편집 상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주석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주, 미주, 자료의 출처표기도, 옮긴이주도 없다. 주석의 기능이 자료의 신뢰도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저자의 명성과 책의 컨셉에 따라 과학교양서라고 해도 반드시 까다로운 주석 표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주석 표기가 없더라도 진위여부 확인을 위한 편집자의 별도의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전문 과학서적이라기보다는 과학자가 쓴 에세이에 가깝다. 윌슨은 오랫동안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학자다. 이 책에서 독자가 주목할 것은 이론이 얼마나 진리에 가깝고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지 같은 정합성이 아니라 저자의 메시지다. 철학자가 철학의 시선으로 인간을 정의하고, 심리학자가 심리학으로 인간 정신을 분석하듯이 윌슨도 생물학자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윌슨의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폭넓게 풀어놓는 형식이다. 생물학자의 관점이 어떤 배경과 관심사 위에 구성되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독자에게도 과학을 통해 을 활용하길 제안한다. 개미의 일생이나 미생물의 특징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게 책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윌슨의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면 된다.

윌슨은 한국 독자에게 ‘통섭’이라는 키워드, 사회생물학자 조천호 박사의 스승 등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세밀한 뒷받침 없이도 그의 글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 독자가 이 책에서 바라는 것도 생물학 정보보다는 지성의 통찰 정도일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편집도 이 책이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통찰을 주는 교양도서에 가깝다는 것을 충실하게 어필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주석이 없기 때문에 시선의 머무름 없이 유려한 읽기가 가능하다. 

반면 옮긴이의 말이 가장 앞에 위치하는 것은 추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옮긴이가 과학 전문 번역가이기는 하나 내용 자체는 요약과 해설 수준이다. 편집자가 조금 더 노력해서 추천사를 받았으면 어땠을지 아쉽다.


끝으로 과학교양 분야 베스트셀러를 떠올려봤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이 이 책과 굉장히 비슷하다. ‘이타적 개체가 많은 집단이 이기적 개체가 많은 집단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 이론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고 심지어 표지 일러스트도 둘 다 엄유정 작가의 그림이다. 표지를 한가지 색으로 통일한 것도, 사이언스북스의 에드워드 윌슨 시리즈를 철저하게 모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단순하게 그 책의 성공요인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핵심독자층을 생각해보면, 독자들에게 익숙한 스테디셀러를 후광으로 가져오는 영리한 표지디자인처럼 보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2021년 출간 이후 10만부가 팔렸으며, 연간 베스트셀러에도 이름을 올렸다. 출판에는 경쟁작이 없다, 유사도서가 성공하면 내가 출판하려는 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말이 생각나는 사례다.


그 갈등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는 선과 악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물학적 형질이다. (…) 감정의 불안정성은 우리가 계속 간직하기를 바라야 하는 특성이다. 그것은 인간성의 핵심이며, 우리 창의성의 원천이다. 우리는 격변에 대비된 더 합리적인 미래를 계획하려면 진화적 및 심리학적 용어로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인간 본성을 길들일 생각은 하지 아예 하지 말자. - P202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중독되었다. 자기 자신과 동족인 인간들에게 한없이 빠져들도록 되어 있다. 인간중심주의-우리 자신에게 매료되는 습성-의 기능은 사회적 지능을 갈고닦는 것이다. 인간은 그 기능 면에서 지구의 모든 종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우리는 어느 한족 힘을 사회적 및 정치적 불안의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삼을 가능성은 적다. 개체 선택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충동에 완전히 내맡긴다면,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반대편 극단인 집단 선택에서 비롯된 충동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천사 같은 로봇이 될 것이다. 거대해진 개미와 다름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결국에는 타고난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가고, 아마도 그것을 창의성의 주된 원천으로 여기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P38

과학과 기술은 모든 문명사회, 하위문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어디에서든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스웨덴, 미국, 부탄, 짐바브웨는 똑같은 정보를 공유할 것이다. 계속 거의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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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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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가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라는 제목으로 2023년 1월 개정 출간했다.


언론과 부유층이 소비문화와 소비주의, 개인주의를 통해 가난과 불평등을 가리고, 누구나 성공할 것처럼 왜곡하는 현실에 세뇌당하지 말고, 불평등한 현실을 마주할 것을 제안한다.


벨 훅스는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인데, 세계불교여성지도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내면의 성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도덕적 힘, 청렴 등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로 주목한다.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하는 결론이 '욕심을 버려라, 탐욕을 버려라'으로 흘러간다. 인문 에세이로는 충분하나, '계급'과 '젠더'에 대한 정치적 통찰을 기대한 독자에겐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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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서적이나 입문서에서 이름과 주요 사상만 들어본 인물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는 시도를 꾸준히 해야겠다. 편집된 이야기보다 이쪽이 어렵긴 해도 깊고 풍부하고, 흥미롭다.

종교적 가르침에서 배운 연대의 이상에 해를 끼친 것은 결국 가난한 사람을 구원한다는 발상이었다. - P62

힐파이커와 달리 나는 모든 것이 부를 기준으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특권 계급만이 아니다. 언론의 세뇌 작업을 통해 노동 계끕과 빈민층 역시 이러한 생각을 내면화하고 있다. - P66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부족은 무엇보다 좌파가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책 권력자들의 비리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을 걱정하는 좌파 정책이 필요하다. 지배 계급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전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지금이야말로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정책이, 계급 전앵릏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정책이 반드시 필ㅇ하다. - P67

아인슈타인은 "복지정책을 철폐함ㄴ 우리가 서로에게 공공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마저 사라져버릴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극단적인 가난의 형태는 25년 전부터 시작된 사유화 과정의 일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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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이동의 위기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6
전현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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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전현우 / 민음사 / 202212/ 17,000

 

1. 기후위기를 건너는 교통 철학서

  새빨간 손바닥 크기의 판형과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라는 제목은 신비감을 부른다. 아포칼립스 장르 소설이 떠오르는 외형과 달리, 이 책은 이동의 위기를 탐구하는 철학서다. 현대 도시의 효율적 이동은 교통으로 이름한다. 교통은 전세계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에 실패한 부문이다. 인간의 조건과 자연조건의 불일치가 바로 이동의 위기다. 저자 전현우는 데이터와 현장연구를 통해 자동차가 걷기 공간을 납치한 자동차 지배현상을 목격한다. 자동차 지배는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대도시의 죽음의 위기를 부른다.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동행위는 자동차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넓은 녹지와 보행이 주는 쾌적한 이동을 자기 가치감(self-respect)’이라는 윤리학적 개념으로 엮어낸다. 탄소중립 선언 이후 비판 없이 수용해온 선진국의 도시 모델, 파리의 ‘15분 도시에 한국의 조건과 맥락도 흥미롭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로 바꿔낸 철학서로, 다른 어느 곳도 아닌 2022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후위기와 철학의 접합을 성공했다. 출판시장의 수많은 기후·환경도서 사이에서 분명한 위치를 갖는다.

 


2. 집필과 편집 과정 교류

일반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책인 동시에 저자에게 새로운 지식 생산 과정을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감사의 말에서 저자 전현우는 구체적으로 개인적 일화를 추가하고 용어를 줄이자는 편집부의 개입, 그리고 다른 저자의 서평 덕분에 책을 완성했다고 밝힌다

민음사 탐구 시리즈는 2022년 시작한 인문학 총서로, 원고 집필 단계에서 저자들을 모아 학술대회, 초고 독회를 열었다. 각 권의 저자는 철학, 문화비평, 정치학, 과학기술 등 다른 분과로 구분되지만, 시대적 감각은 동일하다. 폐쇄적인 학계 밖에서 교류하며 단행본만의 생기를 만든다. 새로운 탐구주제를 넘어, 새로운 탐구방법을 제시하는 인문학 총서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자의 뚜렷한 세계관과 역량이 돋보인다

기존 연구방식에 한계를 느끼는 연구자의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 때문에 저자 섭외 단계에서도 긍정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독자와 저자, 저자와 저자 사이를 적극적으로 잇는 출판 과정이 실험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3. 핵심 독자층에 따른 보완점

핵심 독자층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전현우는 거대 도시 서울 철도202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고, 교통, 철도 마니아층 사이에 알려진 필자다. 이 책이 다른 제목이나 논문이었더라도 구매했을 독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만 독자로 한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다. 이보다 더 확실한 소비자는 출판사의 충성 독자층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어려운 책도 기꺼이 사 읽는 독자층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이라는 탐구 시리즈 슬로건에 기꺼이 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 분야의 독자층은 저자가 출간 이후 가장 활발하게 홍보하며 책의 내용을 알릴 잠재적 독자층이다. 이 책은 검색이나 표지로는 기후환경도서로 묶이지 않기에 적극적인 홍보가 요구된다. 저자와 편집자, 도시정책, 녹색교통운동 전문가의 토론, 시민사회와 연결되는 시의성 있는 행사로 기후·환경 분야 도서로의 입지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신선한 주제, 실험적인 서술로 독자의 지구력을 요구한다. 핵심 독자층을 고려했을 때, 가독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분당 서현역, 화성 공업단지까지 직접 걸으며 관찰하는 탐구가 강점인데, 아쉽게도 현장감을 살리지 못한다. 구체적인 현장 사진으로 독자의 이입 요소를 보완하고 기대에 맞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사진을 보완한다면, ‘학술서와 대중서로 양분된 독서 시장에 다리를 놓는 시도라는 기획 의도에 맞는 인문학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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