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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평점 :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사드 문제로 중국과 시끄럽더니 올해는 일본이다. 일본과 문제가 시작된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배상 판결때문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훈풍이 불던 남북미 관계에 일본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 일본의 본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일본에서 조선인 2세로 태어나 교수를 하고 계신 서경식 교수와 역시 일본에서 교수로 계신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집을 엮었다.
[일본 우파와 리버럴파의 책임]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책임이다. 패전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전쟁과 식민지,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의 고발과 질문에 대해 응답할 책임이 있으나 그들은 그 책임에서 도피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보수 우파의 역사 수정주의 캠페인은 일본의 전후 사관을 완전히 바꿀것을 주장한다. 일본에 전쟁의 책임을 묻는 기존 역사 인식을 '자학사관'이라고 규정하면서 역사 수정주의의 대표학자인 후지오카 노부카츠 다구쇼쿠대 객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인정해버린다면 일본이라는 국가는 정말 정신적으로 해체되어 버릴 것이다. 국가라는 형태는 갖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국민이 자기 나라를 바보로 여기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에 따라 역사를 사실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적 산업화에 자긍심을 갖도록 유도하면서 침략 전쟁의 책임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을 식민지화한 사실 역시 근대화의 일환으로 평가하고 정당화한다. 아베 총리 등장 이후에는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가 강화되면서 일본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하고, 과거의 역사적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반성만을 되풀이하는 부끄러운 나라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역사에 대한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늘어나고,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을 일으킨다. 일본 자민당의 이러한 독주와는 반대로, 일본의 리버럴파인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 신문과 같은 매체들은 냉전 시대의 종식으로 사상적 기반이 무너지고 뿌리가 약해져 우익의 공세에 버티기가 어려워 진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시대적 상황에 따라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구호와 함께 스스로 붕괴의 길을 택했고,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일장기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던 교원 노조는 결국 이를 용인하고 만다. 우파의 집요한 공격에 다수의 중간파 리버럴들은 그에 가담하거나 침묵했다. 리버럴의 이런 방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는 우파의 대두를 결정적으로 도왔고 따라서 일본 우경화의 책임에 리버럴의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도금 민주주의]
민주주의로 알려진 일본은 사실 '도금 민주주의'일 뿐이고 이 같은 포장이 식민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라는 일본의 본성을 덮고 있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체제가 안착했으나, 과거의 실패를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겉표면만 벗기면 이면이 바로 드러나는 한계를 가진 것이다. 일본의 베스트 셀러 코너에는 특정국가를 혐오하는 서적이 있고, 정치인은 당당히 '나치를 배우자'는 망언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민주주의 촛볼시위로 대통령이 바뀌고 감옥에 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전쟁에 대한 천황의 책임]
올해 5월 일본 나루히토 천왕의 즉위 행사와 함께 연호도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뀌었다. 일본 매스컴들은 한결같이 이 사태를 환영하고 반기고 있다. 연호를 넘김으로써 그들은 달력을 넘기듯이 불리한 일을 과거의 것으로 넘기려 한다. 위안부 문제와 식민 지배 책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는 이미 '헤이세이' 이전의 '쇼와'시대의 일로 사람들의 의식속에 이는 '과거화'가 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의 은폐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시대착오적 존재가 되고 배제되어 간다. 또한 일본은 1941년 대미 '선전 조서'를 근거로 천황이 평화주의자였다는 주장을 하며, 일본은 동양의 평화를 염원했지만 영국, 미국이 지원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충칭에 잔존하며 저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리버럴파인 아사히 신문조차 천황제의 정당화를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며 대륙의 패권국으로 재도약하려는 일본의 야심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과 책임을 회피하며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일 관계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우리나라는 크게 반응하는 반면 일반 일본 대중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한다. 이는 정치인과 매스컴이 사실을 감추고 덮는데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중들도 똑같이 지난일을 과거로 돌리고 잊으려 하는, 어려운 문제에 응답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책임회피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두 교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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