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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그야말로 에쿠니가오리의 책이구나 싶었다. 단지, 사랑이야기가 아닌 가족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그녀의 책들과는 조금 차별화 되었지만 말이다. 에쿠니가오리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볼때 그녀의, 그녀다운 필력이 이거구나! 라는 생각이 딱 들만큼 다른 작가들과의 변별이 쉬웠다고나 할까? 너무 잔잔하고, 너무 변화가 없고, 너무 무덤덤해서 지루하고 읽어내기가 힘들것 같았지만, 의외로 술술 읽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갖다 붙어본다. 얼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반짝반짝 빛나는"을 내가 읽은 베스트중 한권으로 올려놓고 그녀에 대해 급 호감이 생겼었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가 아니기에 그녀의 미묘하고 세밀한 감정의 부분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을수 있었던 역자에게 또한번의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책의 역자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난주님이셨다. 어쩜, 에쿠니가오리의 책을 김난주님이 썼다고 생각할 만큼 그녀의 번역은 '에쿠니가오리식'이라고 할 만했다. 아님, 우리 독자들이 '김난주식' 에쿠니가오리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읽은 에쿠니가오리 책들의 역자가 모두 김난주님이었으므로...
우리는 잠시 말없이 각자 차를 마셨다. 차는 따끈하고, 마른풀 같은 냄새가 났다. 도중에 시마코 언니가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리쓰는 책꽂이에서 멋대로 책을 꺼내 읽고 있다. 나는 마들렌을 두 개 먹었다. "목욕이나 할까." 시마코 언니가 그렇게 말하고서 빈잔을 쟁반에 내려놓을 때까지, 우리 셋은 그렇게 망연히 차를 마셨다. (188쪽) 정말 평온한 풍경. 어쩜 이런 큰 사건없는, 그저 일상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는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내가 미야자카 가족의 일원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아웅다웅 하는 우리네 가족과 비교를 해보면 재미는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과 질서로 잘 짜여져서 살아가는 미야자카 가족이 부러워 지기도 했다. 보수적인듯 하지만 말없이 자식들을 응원해주는 든든한 아버지, 감성적이고 소녀같은 엄마, 똑부러지고 정말 맏딸스러운 소요, 활달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시마코, 무지 착할것 같은 화자인 고토코, 중학생 스럽지 않은 막내 리쓰까지 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 조차도 크게 튀는 구석이 없는 정말 평범한 가족이야기였다.
화목한 자리였다. 소요 언니에게는 아무도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언니가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은 모두가 기뻐했다.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며 행복한 온기 같은 것. (254쪽) 사건이라고 해봐야 큰딸인 소요가 이혼을 하는것과 둘째딸 시마코가 싱글맘이 되려한다는것 정도? 이들 가족은 항상 서로의 존재를 그리워 하는듯 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소요의 이혼으로 온가족이 다시 같이 살게 됐을때 그들은 더 커 보이고 더 행복해 보였다. 이혼이라는, 어찌보면 참 가슴아픈 사건을 겪으면서도 행복하다 느낄수 있는건 가족의 힘이 아닐까? 이 책의 원제가 '싱크대 아래 뼈' 였다고 해서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까지 왜 원제가 저러할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거의 뒷부분 단 몇문장에 소개된 에피소드가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제목투표를 할때 난 원제만 보고 뭔가 반전이 있을것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생각에 '미야자카 이야기'라는 곳에다 한표를 던졌었건만, 역시나 '소란한 보통날', 그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보내본다.
타인의 집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납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룰, 그 사람들만의 진실.
소설의 소재로 '가족'이란 복잡기괴한 숲만큼이나 매력적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렇게 색다른 가족 이야기를 썼습니다. -작가의 후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