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 생을 요리하는 작가 18인과 함께 하는 영혼의 식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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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물게 산뜻한 책을 만났습니다. 산뜻하다는 표현이 좀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 저는 그냥 이런 표현을 쓰고 싶네요. 늘상 소설속의 이야기에 푹 빠져 정신없이 읽기에만 급급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어떤 책이든 한 템포만, 딱 한템포만 늦춰서, 읽어 나가기만 하는 책 읽기 보다는 문학을 맛난 음식 마냥 음미하는 책 읽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란 무엇인가'를 고민 해 왔다고 합니다. 먹고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고 나면 인간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풀려 나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작가는 이 책에서 여러 문학작품 중에서도 특히 등장 인물들이 먹고사는 밥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뽑아 놓았습니다. 총 18명의 작가가 쓴 18개의 작품내용과 함께 작가들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많은 작품들 중에는 내가 읽은 책 보다는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읽었던 책들도 그냥 후루룩 재미로 읽었던 그때와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난 후 다시 한번 본 내용은 그 의미가 정말 크게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테면 '이건 뭐지? 하..역시 소설이구나'하는 느낌의 이야기 였던 내용들도 실제로는 작가들이 의도했던 내용이었고 그 하나하나에는 모두 작가들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죠.

 

 

18개의 작품중 읽어보지 못한 책들은 모두 읽어보고 싶을 만큼 책 하나하나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듯 했습니다. 특히나 작품마다 얼마나 애정을 갖고 한 권의 책을 만들었을지 그 작품을 쓴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니 느껴지더라구요. 그 중에서도 손현주 작가의 "불량 가족 레시피"는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해서만 뭉쳐 사는 위태로운 가족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의 책인데요, 허구가 아닌 실제 인물들이 모델이라고 하는데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로만 생각 되는 내용들인데 실제로 이런 인물이 존재한다고 해서 너무 놀라웠습니다. 실제로 소설같은 삶을 살고 있는 가족들이 우리나라만 해도 얼마나 많을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비 방송도 보지 못했고 책도 읽지 못했고 얘기로만 들었던 노경희 작가의 "풀빵엄마"는 그 내용을 조금 보는 정도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울컥해 왔습니다. 그외에도 김훈, 황석영, 박범신처럼 유명한 작가의 책에서부터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이지만 모두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숨겨진 보물들이 많구나 하는걸 다시 한번 느겼습니다. 

 

 

가난 앞에 주먹질 한번 할 수 없었던 세월의 막막함을 견뎌온 엄마는 "여자가 돈 버는거, 이것처럼 슬픈 인생이 어딨어?"라고 말했지만 삼시 세 끼 밥 굶지 않고 세딸 번듯하게 시집 보내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고봉밥 한 그릇 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욕심이 없었던 엄마의 삶은 멋진 인생이었다. 정말 슬픈 인생은 아직도 이리떼처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시장 밖 사람들이었다. (153쪽 이명랑-삼오식당 中)

 

 

최근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일본작가 오가와이토의 '따뜻함을 드세요'라는 책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낀 바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음식에 관련된 따뜻한 기억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었죠. 같은 음식을 주제로한 책이지만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은 제목처럼 지치고 허기진 우리의 인생에 따뜻한 한 공기의 밥처럼 단순한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 살이 되고 피가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좋고 인기작가도 좋지만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작품은 우리의 허기진 인생에 따뜻한 한공기의 밥이다 라고 말하고 싶네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46쪽 안도현 - 냠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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