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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에이지
김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읽혔다는 게 가장 큰 미덕이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짙고 긴 여운을 남겼다. '골든에이지'는 실로 오랜만에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국내 작가의 소설집이었다. 비견될만한 작품집을 찾자면 박성원의 '우리는 달려간다', 김재영의 '코끼리',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박민규의 '카스테라', 윤성희의 '거기 당신?' 정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젊은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수록작 전부를 온전히 좋아해 보긴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잊힌 존재, 혹은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 그런 세상을 작가는 예리한 통찰력과 애틋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섬세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그려간다.
조선 최초로 축구공을 만들었던 사람, 명상 음악을 만들러 한국으로 온 세계적인 힙합 스타, 한림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정체, 버뮤다 삼각지대를 통해 한국 해상으로 입성한 외국인 난파선원, 지구 공동설을 믿고 땅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자신만의 골든에이지를 찾아 육신을 버리는 사람의 이야기...
작가는 우리 삶과 밀접하나 등지고 외면당하기 쉬운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들을 인문학적 사유와 상상력으로 멋지게 포장해 한 권 소설집에 소담스럽게 담아냈다. 독자는 그저 한 편, 한 편, 이야기의 포장을 벗기고 그 맛을 즐겁게 음미하면 된다. 처음에는 독특하고 오묘하게 느껴지던 맛이 사실은 내 안에 아련하게 녹아있는 그립고, 정답고, 익숙한 맛이었음을 알게 된다. 삶의 이면 속에 감춰졌던 진실들이라지만 그 진실은 사실 삶의 이쪽에서도 능히 짐작하고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보려고 하고,느끼려고 노력만 했었다면.
소설집의 경우 앞에 수록된 한두 편이 좋으면 오히려 불안해지곤 한다. 좋은 작품을 앞에 몰아넣은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다.앞은 좋았으나 뒤로 갈수록실망스러운경험을 그동안 꽤 많이 했었다. '골든에이지'는 책장이 넘어갈수록 그런 불안감과 실망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훌륭했다. 오히려 맨 마지막에 수록된 표제작 '골든에이지'가 이 작품집의 백미였다. 어쩌면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앞선 작품들을 연습용으로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작품집을 대표할 만한 수작이었다. '골든에이지'에 이르러서 작가는 오랜 시간말할수 없었던 이야기를 드디어 끄집어내고, 뛰어난 상상력과 가슴 시린 서사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세상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세상에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면들이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삶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무심코 스쳐 지나가 버리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다시 한번 돌아보면 선명히 드러나는, 작지만 분명한 어떤 진실, 어떤 사실, 어떤 이야기, 어떤 목소리가 있다. 그런 것들을 놓치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은 조금씩 건조하고, 황폐해져 삭막한 사막처럼 변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