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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평점 :
윤성희의 소설집을 출간 순서대로 읽어온 독자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 단편들이 날이 갈수록 몇 가지 특징들을 부각시키며 자기 색깔을 완성해간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서사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에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연이 뒤엉켜 있다.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수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인물이 과거 회상이라도 하면 복잡해진다. 과거에 만났던 인물과 그 인물과 관련되었던 또다른 무수한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사건, 사연이 감자 덩굴처럼 딸려온다. 말 그대로 이야기로 빽빽하게 들어찬 소설이다. 서사가 이렇게 큰 면적을 차지하다보니 자연히 묘사는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두 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중단편에서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심리 묘사, 배경 묘사, 행동 묘사 등을 윤성희 소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부사와 형용사 따위도 배제한다. 요컨데 감정 따위 줄줄 늘어놓고 있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왜...? 이야기하기도에도 바쁘니까.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집을 나서 친구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늘어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집을 나서 친구를 만난 후에도 앞으로 해야할 일, 그 사람을 통해 보여질 이야기들은 무수히도 많기 때문이다. 문장은 주어마저 생략하고 가장 가볍고 간략한 모습으로 짧게 호흡하며 질주한다. 몇 문장만 놓치면 이미 엄청난 시간을 놓친다. 엄청난 사건들을 놓친다. 많은 인물들을 지나쳐 많은 이야기를 건너 뛰게 되는 것이다. 정신차리며 꼼꼼히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시점과 시제의 무한 교차라는 또 하나의 특징까지 보탤 수 있겠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풀어놓는 한편, 그들의 시점, 그들의 이야기는 장소와 장소, 과거와 현재, 심지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수없이 교차, 점프, 플래시백된다. 이러한 세가지 정도가 작금의 윤성희 소설에서 보여지는 눈에 띄는 특징들이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윤성희 소설은 그 모양만으로 다른 작가의 소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보인다. 첫 문장만 읽어도, 아니 한 페이지에 걸쳐 행갈이 없이 빽빽히 찍혀 있는 활자들만 봐도 윤성희 소설임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 뚜렷한 색깔을 지닌 것은 작가로서 좋은 일이라고 본다. 몇 십년 글을 써도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확보하지 못하는 작가들도 많은데, 윤성희는 등단 10년 남짓만에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앞써 말했듯 그 스타일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웃는 동안'은 윤성희의 네번째 소설집이며, 장편까지 합쳐 다섯 번째로 내놓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에 이르러서 윤성희는 그동안의 스타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존의 방식은 그대로 고수, 혹은 강조하면서 서사와 구성에 있어서 보다 새로운 시도를 가미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환상'과 '회고'가 있다. 이것은 물론 이번 작품집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요소는 아니다. 윤성희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환상과 회고는 종종 엿보였다. 그것은 곧 '죽음' 혹은 그것에 한없이 다가가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가령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던 단편 '하다 만 말' 같은 경우가 그렇다. 모든 이야기가 끝맺음 하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죽음'에 성큼 다가선, 혹은 이미 그 안에 잠식해 있는 그, 혹은 그들(혹은 우리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 '환상'과 '회고'의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지며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이번 소설집 '웃는 동안'에서는 거의 수록작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맞닿아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단편들에 노인(어쩌면 젊은이든 늙은이든 모두가 노인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노소를 막론하고 늘 우리 가까이에 있으니)들이 등장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현실의 지면 위에 그려나가면서 그 아래로 수많은 회고의 잔가지를 뻗어 내면에 퇴적되어 온 삶의 전부를 돌아보게 만든다. 죽음에 한껏 다가서도 별로 슬프거나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두텁게 퇴적된 삶의 덩어리를, 그 수많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희노애락을 한껏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고하고, 기억해낸다. 어린 시절 이야기, 팔팔하게 뛰어다녔던 젊음의 순간들을, 가슴 덜컥 내려앉는 슬픔에 이어 뒤따르던 엉뚱한 웃음, 또 웃음들... 그리고 한순간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상처입은 타인의 아픔을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 그때 그 말은 하지 않는 건데, 반성하고 짧은 한숨 끝에 웃음 한 방울을(혹은 짧은 웃음 끝에 눈물 한 방울을) 머금고 삶의 (희노애락)전부를 담담하게 껴안는 순간 마침내 죽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렇게 삶 속에서 배어나고 삶은 그렇게 죽음 안에서 재생되고 기억된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며 문득 채플린이 했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탠다면 바로 윤성희 소설의 풍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러나 더 가까이서 보면 다시 희극이 된다' 윤성희 소설 속의 많은 인물들은 죽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 수없이 많은 비극이 일상처럼 일어난다. 인생은 우연을 가장한 비극의 총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극을 맞이한 당사자의 세밀한 일상, 세밀한 이야기들을 돋보기로 관찰하듯 들여다보면 비극이라는 감정은 단번에 묽어지고, 그 안에서 다시 수많은 우연을 가장한 희극들이 솟아남을 알 수 있다. 인생은 우연을 가장한 희극의 총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세 권의 소설집들처럼 이번 소설집도 수록작 전부가 고른 재미와 감동, 따뜻한 유머를 지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좋았던 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초승달', '부메랑',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등이었고, 가장 좋았던 한 편은 '구름판'이었다. '구름판'은 다 읽고 나면 금방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런 소설이다.
늘 그렇듯 윤성희가 그리는 소설 속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금방 웃다가 금방 죽고, 죽음을 앞에 두고 금방 또 웃을 일이 생긴다. 삶은 죽음을 껴안고 있고, 누구나 다, '죽음'과 직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인간이란 동물로 태어난 태생적 한계이자 운명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네 인생이 통틀어 모두 슬프거나 항상 긴장하고 안타까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 직면해 있기에 웃음은 더욱 커질 수 있고, 작은 일도 우스꽝스러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스스로를, 혹은 타인을 연민할 필요도, 동정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우쭐대거나 과도한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다. 그저 눈앞의 한조각 풍경을 보고, 그것에서 작은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에서 지난 날 삶의 한 조각을 기억해 내고 그 기억으로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삶을 살아갈 용기, 혹은 죽음을 맞이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도 삶도 모두 비극일 수 있고, 죽음도 삶도 모두 희극일 수 있으며, 또한 죽음이든 삶이든 잠깐 '웃는 동안' 바람처럼 훌쩍 지나가버리는 한순간의 것일 수도 있다. 짧고 허무한 태생적 비극 속에 잠재된 작은 웃음들을 열심히 찾아내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세상을, 인생을 보다 따뜻하고 벅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또한 죽음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도 있으니.
* 윤성희 소설을 흉내내보려고 행갈이나 문단 띄움 없이 최대한 다닥다닥 붙여서 리뷰를 작성해 봤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읽기가 다소 힘든데,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편했다. 그냥 죽죽 써나갈 수 있어서. 그래서 윤성희가 소설을 이렇게 쓰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