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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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소재의 단편 아홉편이 실려있는 소설이다.

일단 표지부터가 무척이나 이채롭다. 누가봐도 우주인인 듯한 생명체가 라면그릇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은 우리가 영원히 포기하지 못하는 라면이 드디어 우주로 진출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표지 선정에 고심했다는 출판사에서는 김희선작가가 직접 그려준 그림을 참고로 표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글쓰는 재능외에도 그림솜씨가 상당하다.

 

 

그냥 이걸로 표지를 해도 좋았을뻔했다는~~~

 

 

어떠세요. 김희선작가의 그림이 더 나아 보이지 않나요? 암튼 이제 외계인마저도 라면을 먹는 시대가 된 걸까요?

라면이 우주로 진출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라면의 황제'에서의 라면의 몰락은 끔직하다.

20세기 후반부터 라면유해론이 스멀스멀 등장하더니 결국 2천년의 어느 날 라면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분식집 주인이었던 김기수씨는 27년동안 매 세끼 라면만 끓여먹었다는 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리려 했지만 경쟁자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고 결국 어느 날 죽음을 맞으면서 경쟁자인 박모노인에게 영광이 돌아간다.

글쎄 라면을 오랜세월 많이 먹어왔다는게 기네스북에 올려질 정도의 영광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나라가 배고팠던 어느 시대를 라면이 구원해왔음을 사실이다. 그 후 배가 고프지 않은 시절이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라면이 악의 음식이라 규정지어지고 없어지다니...상상하기 싫다.

라면이 소멸된 이유도 너무 허접하다. 라면=가난이라는 공식이 거추장 스러웠나?

이 소설을 라면애호가들이나 라면회사가 본다면 기암을 한 일이다.

아마도 이 소설은 대중에게 깊숙이 들어와 사랑받았던 존재도 누군가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악의축으로 몰아 소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인의 정성이 한땀 한땀 깃들인 수제 페르시아산 양탄자에 얽힌 '페르시아 양탄사 흥망사'역시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공식에 들어맞는다. 어찌 어찌 대한민국 서울의 청사에 깔려있던 이란 페르시아산 양탄자의 운명과 우리의 역사를 묘하게 교차시켜 인간의 탐욕과 유행의 역사를 자아내고 있다. 양탄자를 보면서 이런 글을 떠올릴 수 있다는 작가의 재능이 놀랍다.

 

아이큐215인 최두식의 일생을 그린 '교육의 탄생'은 실제 우리나라에서 영재아였던 인물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 그는 어린나이에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사에서 근무를 했다고 해야하나? 당시의 컴퓨터보다 산술 능력이 더 뛰어났다는 그의 말년은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놀란 기억이 떠오른다. 최두식이 나사에서 만난 몰로디노프박사의 무의식요법의 정체는 무엇일까. 뒤편에 이어진 '어느 멋진 날'에서 식물인간 상태인 이스라엘 전 총리 아리엘 샤론의 병실에서 그 정체가 조금 드러난다. 일종의 최면을 거는 방법과 비슷한 것 같은데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의식은 분명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동생이 죽어가는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샤론은 과거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베이루트를 침공하여 수천명을 학살한 인물이다. 뇌출혈을 일으켜 식물인간에 이른 그에게 마치 주문을 걸듯 가장 아픈 기억속을 헤매게 하는 것이 복수는 아니었을까.

'레드썬'이라고 주문을 걸었던 인물이 와서 풀어주던가 영원히 의식을 동결시키는 죽음밖에는 벗어날 방법이 없단다.

 

우주전쟁을 연상시키는 '지상 최대의 쇼'와'경이로운 도시'에 등장하는 W시에 등장한 우주선은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져버린다. 상공에 떠있는 거대한 우주선에서 내려온 외계인은 인간의 형상을 담은 녹색식물(원주사람들은 우주인을 식용하기 위해 이렇게 구분짓는다)로 규정하고 부위별로 판매된다. 엑!!

영화처럼 이상한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을 납치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고 지구인, 하필 W시의 주민들이 외계인을 식용으로 하다니..기상천외의 발상이다. 저 멀리 우주 어디에선가 그걸 지켜보던 우주인들이 떼로 몰려와 지구를 폭파하는....것이 아니고 농장에서 사육되는 우주인들을 데리고 멀리 떠났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평화를 위한 쟁기운동가들의 왕'들은 반전운동을 위해 무기가 있는 제철소를 칩입하고 쟁기로 미사일을 부수려고 한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시의 이 퍼포먼스는 경찰에 체포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월드 인사이드 미러'의 기자 톰 존스는 한국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메일로 받고 한국의 W시로 향한다.

한 남자가 쟁기를 들고 탱크를 향해 돌진하는 남자의 사진. 김홍석이라는 남자는 이미 유서를 남긴채 자살을 한 상태였다.

마치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를 향해 마주섰던 중국남자처럼 전 세계의 시전을 집중할 것이란 기대로 취재에 나섰던 톰은 동북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고결한 남자의 투쟁을 극적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그 사건의 뒤에는 어이없는 진실이 숨어있다. 블랙코미디같기도 한 진실을 또 하나의 권력이랄 수 있는 언론에게 어떻게 이용되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 우리는 이런 언론놀이에 수없이 놀아났을 것이다. 여전히 진실조차 모른 채 말이다.

 

한 편 한 편 예상할 수 없는 소재와 주제로 놀라움을 주는 소설들이다.

전세계적인 역사와 사건의 일지를 탐독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박식한 글들이다.

실제 언젠가 우주선이 우리 머리 꼭대기위에 나타날지도 모르고 그토록 좋아하는 라면이 멸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알래스카의 모종의 사건이 인도네시아의 쓰나미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는 멍청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보이는 것도 보지 않는 방관자일지도 모른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놓으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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