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 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그들처럼 롱런할 것인가
이랑주 지음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제목이 주는 느낌은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 현재에까지 살아남은 비밀같은

것을 파헤친 것이 아닐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스트라디 바리우스같은 바이올린이나 스위스의 시계같은

명품을을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만난 것은 전세계에서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남은 시장의

이야기였다. 나역시도 전통시장보다는 깔끔하고 쾌적한 대형마트를 주로 선호하는 사람이라 작가가 만난

전세계의 시장이야기는 처음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같기만 했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밀려오는 감동으로 쪽수가 적어지는 것이 서운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마흔 언저리의 여자가 대기업에 잘 다니던 남편까지 꼬득여(?) 1년간의 세계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뭐 요즘은

집을 팔아서 가족들과 전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먹고 살만하면 그럴수도 있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여행은 그녀가 어렵사리 일과 공부를 병행하여 마친 대학원만큼이나 의미있고 감동스런 여정이었다.

그녀가 만났던 살아있는 시장의 모습에서 왜 평생 우리의 뇌를 1%밖에 못쓰고 가는지 아쉬움이 절로 밀려든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누군가는 희망과 미래를 건져내기도 하고 나같은 한심한 사람들은 그들이 보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우수한 머리를 물렸받았을지도 모를 내 뇌는 주인을 잘못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직업이 '상품가치 연출전문가'이다 보니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보는 특별한 재능이 있을 것이다.

그저 단순히 상품을 보기좋게 진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동까지 선사하는 아름다운 현장을 둘러보는 그녀의 마음조차 아름답게

다가온다.

전국각지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책 옆에 간장이며 소스같은 특산물을 같이 판다는 서점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같이 생긴 멋진

건물안에 자리잡은 전통시장이라니...더구나 정크푸드의 대명사 맥도날드에서 만나는 클래식 연주는 어떻고.

'온기를 팝니다'라는 슬로건처럼 단순한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마음까지 더하는 시장상인들의 열정에 절로 감화되고 만다.

불편하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우리 전통시장의 모습과 겹쳐서 절호 한숨이 나온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을까.

 

 

8년간의 재개발로 탄생한 스페인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외관부터가 예술 그자체였다.

바르셀로나의 구도시 산타 마리아 델 마르에 있다는 이 시장은 유명한 스페인 건축가 엔릭 미라예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하긴 스페인에는 100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 가우디 성당같은 곳도 있으니 8년간의 공사쯤이야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계를 포기하고 기다려준 상인들의 인내심은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인내심이 아닐까.

 

 

과일 하나하나를 예쁜 포장지로 감싸서 탑처럼 쌓아올린 매대의 모습이나 부담없이 집어들 수 있도록 소량포장한 과일이며

먹거리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사온 음식들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은 공간들이 더 없이 부럽기만 하다.

자신이 파는 제품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하물며 '너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거야'라고 말을 걸어주는 장면에서는 그저 자신의 물건을 '팔거리'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만 같았다.

 

수백년의 전통을 깨뜨리지 않고 현대와 공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멋진 시장과 사람들을 보면서 왜 우리의 전통시장이

도태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벅찬 건물틈사이의 아주 적은 틈새앞에 신호등을 설치하고 틈새를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공간에

레스토랑을 차린 사장의 아이디어는 창업에 골몰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의미를 던져준다.

서서 지나다닐 공간도 없는 특화시장의 부산함과 부담없이 먹기에는 만만치 않은 먹거리들 때문에 손님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우리시장에 적용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그저 둥근 돔안에 정갈하게 포장만 하려는 재래시장번영사업은 이제 이벤트가 있고 감동이 있는 그런 시장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불황이 지속되는 요즘 이 책은 희망이 되고 돌파구가 될 것만 같다.

나는 이 책을 장사가 안된다고 한숨짓는 상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일하고 휴식하고 싶었던 내게도 뭔가 해보고 싶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느슨해진 삶에게 더 없이 적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을 준비하는 아들녀석에게도 꼭 읽히고 싶다. 뭐가 되고 싶은지 뭘 해야하는지 고민인 녀석에게

방향등이 될 것같기 때문이다. 1년이란 시간과 비용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녀의 여행이 너무 부럽다.

다만 나는 그녀가 본 것들을 거의 보지 못한채 마드리드며 바르셀로나를 지나쳐 왔다는게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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