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불과 60여년 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한 비극적인 이별에 관한 여정은 여전히 '아이수출국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대한민국의 어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프다.

 

 

1950년대 아일랜드는 전통카톨릭국가로서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 아일랜드인들은 우리나라사람들처럼 가무를 즐기고 유쾌한 민족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의 기질과 아주 다른 엄격한 종교적 잣대는 당시 전쟁중이었지만 강력한 유대국이었던 우리나라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정책이 많았던 것같다.

 

1952년 여름의 어느 날,

아일랜드 티퍼레리 카운티에 숀 로스 수녀원에서는 열 아홉살 처녀 필로미나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당시 아이랜드는 미혼모를 큰죄인이라고 낙인찍고 수녀원에 가둔 후 아이를 낳으면 다른 나라로 입양시키는

'아이장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마르셀라라고 불리는-수녀원에 감금된 미혼도들은 본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필로미나는 리버릭축제에서 만난 우체국직원과의 하룻밤 사랑으로 임신하였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맡겨져

힘들게 아들을 낳게 된다.

죄인들이 거주하는 수녀원의 별채는 안락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고 미혼모들은 부엌일을 하거나 세탁, 그리고

자신들이 낳은 아기들을 돌보는 일들을 나누어 하고 있었다.

필로미나는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마거릿과 친해졌고 필로미나가 낳은 앤터니와 마거릿의 아이 메리는

오누이처럼 3년을 수녀원에서 보내게 된다.

 

어느 날 아일랜드 언론은 아일랜드의 아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를 하게 되고 외무부소속 직원이었던

조 코램은 더 이상 아이들이 수출되지 못하도록 비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는 아일랜드의 대주교였던 매퀘이드는

찾아가 수녀원에서 아이를 파는 일은 중지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당시 빈약한 재정의 주수입원이었던 아이수출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확인한다.

 

결국 몇 몇 양심있는 관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앤터니와 메리는 미국의 비뇨기과 의사 부부인 닥과 마지에게 입양되고 만다.

필로미나와 마거릿은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수녀원장의 협박과 당시 사회적인 비난, 그리고 자신들의 부족한

능력에 굴복하고 아이를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이미 세 아들을 둔 마지부부는 앤터니와 메리를 정성을 다해 키우게 된다. 배려있고 따뜻한 마지와는 다르게 조급하고 계산적인

닥 때문에 때로 상처를 받긴 했지만 앤터니는 메리를 친 여동생처럼 보살피면서 혹시 자신이 밉게 보여 다시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착한아들표'로 성장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영화로 먼저 알게 되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어린 엄마 필로미나가 어쩔 수 없이 놓쳐야 했던 아이를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은 그의 아들 앤터니의 삶에 맞춰져 있다.

잘 생기고 머리좋았던 앤터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거의 잊은 채 왜 자신이 버려져야 했는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보고 고향인 아이랜드의 수녀원을 찾기도 하지만 수녀들은 절대 그의 친모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우등생이며 모범생이었던 앤터니는 사실 버려졌다는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심각한 중독에 빠져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집권한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위치가 달라지곤 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들이었다.

뛰어난 감각으로 정부의 요직으로 등용되기도 했지만 마이크의 동성애는 결국 에이즈라는 복병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이크가 몇 몇의 동성애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때로는 마약이나 알콜에 휩싸여 방탕한 성생활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보수주의자인 나 역시 동성애자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만약 마이크가 생모밑에서 자랐더라면 그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더 비극적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에이즈로 죽음에 이른 앤터니는 자신이 태어났던 수녀원의 묘지에 묻히고 생모인 필로미나는 죽은 아들과

해후한다. 앤터니의 빛나는 삶-동성애와 에이즈를 제외하고-을 살았다는 앤터니의 파트너 피트에게 전해듣고 필로미나는

동성애조차 아무 꺼림낌 없이 받아들인다.

"정말 행복하게 살았군요, 그렇죠? 나는 절대로 그런 삶을 물려줄 수 없었을 거에요. 피터."

미혼모를 죄악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속에서 앤터니는 절대 바르게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유하고 안락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길러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앤터니가 처음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생모를 찾았을 무렵 누구라도 그의 입양에 관한 진실을 말해주었더라면 앤터니는

좀 더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친부모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오는 해외입양아들을 보면서 평생 자신의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연어들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자신의 기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실화라는 점에서 더 끔찍하고 가슴아프다.

과연 종교와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당시 아이들의 해외입양으로 돈벌이를 했던 종교인들은 저세상에서도 자신들의 소신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해외로 버려지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 역시 앤터니처럼 평생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갈 것이다.

50여년 전 미숙한 사회구조와 맹목의 종교때문에 생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우리는 종교나 정치의 권력이

얼마나 참혹한 역사가 되는지를 똑똑하게 보게된다.

그렇더라도 앤터니가 그렇게 삶을 놓아버리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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