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거리고구름이 살짝 내려앉은 토요일(27일) 아침..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인문학강좌-정조의 비밀편지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딱인 알토란 같은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두번째 강연회입니다.
조선의 역대왕들중 세종과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정조의 비밀편지가 발견된것이 거의 1년쯤전이었습니다.
TV에서 정조이산이라는 드라마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을 때여서 이서진의 모습이로 기억된 '정조'가 사실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의 모습과 비슷하다느니...다혈질에 욱하는 성질이었다느니..해서 조금은 실망했다고 할까.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서 왕으로서 한인간으로서 정조 이산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저자인 안대회 교수님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시고 지금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한시나
조선의 문헌들에 대한 저서가 많이 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족해도 넉넉하다'(http://blog.naver.com/hjmjkklll/20088902226)에서 한시(漢詩)의 깊은맛을 느꼈던 터라
마치 지인을 만나는 것 같은 마음으로 뵈었는데...자그마한 체구에 날씬한(?)몸매..그리고 부끄럼을 타시는듯한
미소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분이다.
정조의 비찰(秘札)이 350여통이나 발견된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과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닐만큼
잘 정리될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태워 없애라는 정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정적으로서의 뒷날에 대한 염려와
받은 일시와 봉투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관해온 심환지 덕분이라는 것은 책에서도 밝힌바 있다.
책에 기술되었던 내용들을 요약하여 보여준 슬라이드에서는 어찰 한장만 있으면 벼슬한자리는 보장받을만큼 귀하게
대접받던 조선시대에서 태우라고 했던 비밀편지가 이렇게 많이 발견된 것과 서예가의 글씨라고 할만큼의 서체솜씨와
문장가로서의 능력의 탁월함때문에 학문적 예술적으로 그格이 달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국왕의 모든 명령문과 교서는 신하를 통해서 이루어진 시절에 하루에 10여통을 쓸만큼 속필과 달필을 자랑했던
정조는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서로 교감하는 균형감각을 지닌 훌륭한 왕이라는 것과 조선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왕으로서의 다양한 면모가 비찰을 통해 알수가 있었다.
독살설에 시달릴만큼 정조의 정적이었던 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에게만 비찰을 내렸을까?
사실은 체제공과의 서찰이 더 많았을거라고 추측은 되나 전해지지 않은듯 하고 보관의 필요성을 느낀 심환지에 의해
살아남은 정조의 편지에는 자유로운 형식의 소품체의 글이 많다. 신하들에게 정도의 문체를 엄하게 감독한 정조지만
조정에서의 공무가 아닌 글..이를테면 본인을 포함하여 개인적인 사사로운 글에서는 자유롭게 구사하므로써 실리주의
정조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뒤주속에 갇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당쟁에 시달리고 워커홀릭이라고 할만큼
일중독에 빠져있던 정조가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건강을 헤친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심환지의 초상을 보면 타협을 모르는 꼿꼿한 선비 그대로의 모습이 느껴지는데...이런 심환지를 정적으로서 만이
아니라 동지로서 신하로서 예우하고 상생하는 정치고수의 정조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런 심환지가 굳이 정조를
독살하였을까? 한중록을 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안테나에 걸리지 않고 정조를 독살하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였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라고 한다.
국어와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이러한 사료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중되거나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이지만
간혹 해석이 들어가지 않거나 오독이 없을 수 없으나 문헌을 근거한 학문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려고 애쓴다는 말씀도
아주 공감했던 이야기였다.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도 사실은 완벽하게 진실이라고 얘기하기 어렵고 해석에 따라
사관이 달라지는 어려움속에서 '정조의 비밀편지'를 해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번역자의 입장에서만 설 수 없는 학자로서의 고민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겠는가 하는 점에서는 몇년을 더 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기
어려웠을거라는 저자와는 달리...나는 여전히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만큼 오래 살았더라면 뒤의 역사는 다르게 쓰여질수
있었을거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책에는 소개되지 못했던 또다른 어찰에서 친족인 삼촌과 어려서 갔던 도봉산의
아름다움과 국화꽃을 보니 그시절이 생각나 달려가고 싶지만 아쉽고 삼촌이 그립다는 내용과 여덟살 이전 원손시절에
큰외숙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정조의 따뜻함과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군왕이어도 인간임은 어쩔수 없지 않은가.
긴 시간속에 숨어있던 정조의 편지를 세상속으로 이끌어내준 심환지와 그의 후손들..그리고 저자이신 안대회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느낀 소중한 강연회였다.
교수님 사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