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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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하면 떠오르는 문구는 바로 '태어나려는 사람은 알을 깨야 한다'일 것이다.

역자처럼 나도 이 책을 중학생일 때 읽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삼중당문고라고 두껍지 않은 문고판책들이 유행이었는데 엄청난 고전들이 이어 출간이 되었었다.

그 문고판을 읽는게 너무 좋았다. 심지어 단테의 '신곡'도 읽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다만 천국, 지옥, 연옥같은 단어와 공자나 뭐 사상가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을 다시 읽은 기억이 없는데 세계 다큐멘터리나 끔찍한 살인이나 사고를 다룬 영상에서 '데미안'이 자주 등장하곤 했었다. 대통령을 저격했던 범인이 그 책을 읽었다거나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분명 데미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알을 깨고 나오고 싶은 사람에게 망치쯤은 아니더라도 돌멩이 정도는 되어주는 계기가 되는.

하지만 그 깨임이 다 아름답거나 기쁨이었던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평안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평범해 보이는 소년 싱클레어. 그 시대에도 삥을 뜯는 아이들이 존재했던 모양인지 싱클레어 보다 세 살쯤은 더 많아보이는 소년 프란츠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당시 화폐의 가치는 알 수 없지만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었던

싱클레어에게도 크로머가 달라는 2마르크는 꽤 큰 액수였던 것 같다.

싱클레어는 차고 있던 시계를 주겠다고 했지만 크로머는 현금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고작 저금통에 65페니밖에 없다. 크로머에게 그 돈을 건네자 크로머가 한 말이 기가 막힌다. '나한테 1마르크 35페니를 빚진 거야 언제 받을 수 있지?'

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문구보다 이 말이 더 기막히게 다가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둑이 매를 드는 세상이 있고 강도같은 인간들이 존재했구나. 그게 빚이라고?


어린 싱클레어에게 이 일은 깊은 트라우마가 된다. 삶이 불안하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 때 성숙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가진 전학생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불안해보이는 싱클레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하라고 하지만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이름을 입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두렵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얘기를 했고 점차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이후 데미안과 신에 관한 의견을 나누면서 다시 큰 충격을 받는다.

부모님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신은 불가침의 신성한 존재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카인이 더 의인일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얘기를 한다. 그리고 싱클레어에게 훈장같은 '카인의 표식'이 있다고 말한다. 동생을 죽인 카인이 의인이라는 말도 놀랍지만 자신에게 그 표식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나이가 들어가고 대학에 진학하게 될 때까지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스치듯 한 번 만나게 된다.

사춘기의 방황이라고 하기에는 더한 무질서와 방탕을 경험하면서도 싱클레어는 늘 데미안을 그리워하게 되고 너무 자주 이상한 꿈에 시달리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새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싱클레어는 그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내게 되고 이후 그 그림에

대한 답을 전해받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해가 되는가? 아브락식스라는 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고?

이 부분부터 데미안을 읽는 사람들은 소년의 성장기가 아닌 철학서, 혹은 융이 말할 것만 같은 정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 만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에게서 싱클레어는 강렬한 사랑과 열정을 느끼게 된다.

뭐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같은 사랑을 하려는 건가? 세속적 시각으로 보면 위태스러워 보인다.

책의 중간쯤이라도 어렵다 싶으면 책의 뒤편에 읽는 '작품 개요'를 먼저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에바부인이 '이브'를 뜻하는 독일의 창세기 표현이라는 걸 알면 이런 위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늘 불안과 방황에 시달리는 싱클레어에게 닥칠 위기와 신비한 능력을 지닌 것 같은 데미안과 에바부인이 말하려는 폭풍같은 미래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지 자꾸 궁금해지는 것이다. 전장에 나가데 된 데미안은 부상을 입고 환영인듯 현실인 듯 옆 침상에 누운 데미안을 만나는데 그제서야 나는, 독자들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적어도 지금도 벌어지는 인간들의 전쟁놀이에 참혹하게 희생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이 소설은 헷세가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썼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시의 젊은이들이 느꼈던 막연한 불안이나 방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전쟁같은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지나가기에 이 세상 모든 소년(소녀)들은 싱클레어라는 사실을,

그래서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신비로운 데미안을 만나고 싶어했다는 것을.

언제나 다시 읽어도, 특히 요즘처럼 불안한 시대에 읽으면 더 위안이 되는 '데미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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