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시험이 끝나고, 뿔뿔이 헤어지는 ‘실업자 예비병들은 무척 배가 고파 보였다. 모두들 묵묵히 한꺼번에 몇 십 년을 살아버린 것처럼 잔뜩 늙은 표정을 하고 거리로 밀려 나왔다.

거리는 마침 연말이 가까웠으므로 축제 기분이었다.
네온의 불빛이 울긋불긋 그들의 얼굴을 인디언 추장처럼 채색했으나, 그 사내들은 도무지 느낄 줄 모르는 전쟁고아 같았다. 손을 주머니에 꾹 찌르고, 이를 악물고, 성욕을 억제하려는수도승처럼 한눈도 팔지 않고, 징글벨이 울리는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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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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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이웃들에 대해손을 흔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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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제 발리에, 최고급 금도금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행색에 오히려때는 한여름의 로마, 무더운 날씨이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트레비 분수‘를 구경하기 위해 한국 아저씨 둘이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때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흰 턱수염의 사장 리처드 아텐보로 경처럼 점잖게 생긴 노인이 지도를 보고 있다가 이들에게트레비 분수가 어디냐고 묻는다.
트레비 분수는 불과 5분 거리, 한국 아저씨들은 친절하게 트레비 분수의 위치를 손짓 발짓 해가면서 가르쳐준다. 노인은 캐나다에서 왔는데 로마를 구경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늙어서 그런지걷기조차 힘들다고 엄살을 부린다. 미안하지만 두 사람이 거기까지 좀 데려다달라고 한다. 한국 아저씨들은 조금 망설이다가 고급 금테 안경에 몽블랑처럼 보이는 고급 만년필이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혀 있고, 구두는 스경외감을 가지고 안내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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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의 음악은 완성도가 높고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치열한 아마추어 고딩 삘이 난다. 감수성 충만하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해주는 타임머신 같다고 한다면 오버일까(아,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려주고 싶다)? 고품격 밴드 연주에 어울리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생 장난질 같은 미디 반주에 어울리는 음악도 있는 법. 하바드의 음악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꼭 불량식품 같다고 할 수 있다.
가까이에서 라이브를 들어본바, 가창력 역시… 가수라고 하기엔수준이 좀 떨어진다. 그러나 막 안 되는데, 못 부르는데, 정말 열심히 ‘지 삘에 꽂혀서‘ 부르는 목소리와 미완성의 감수성을 지닌 가사들이 나는 눈물 나게 좋다(해체는 왜 했는지… 맘 아프게).
절대, 절대로 페이지를 늘리려는 속셈은 없다. 딱 한 곡의 가사만살짝 보여주고 싶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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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는 한아름 , 주문 받은 책은 일주일 내 구비해 놓는 신속성을 자랑하는 ‘고려 서적‘ , 분식이 생각날 때 ‘만두바‘ , 토종 음식이 생각날 때 ‘초당골‘,
뜨끈한 설렁탕이 일품인 감미옥‘ , 불고기가 생각날 때 ‘금강산‘ , 와인에 절인 삼겹살이생각날 때 ‘돈의보감‘ , 자장면과 탕수육이 그리울 때 ‘효동각‘ ,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야참을 먹으러 가는 ‘양평해장국‘..
맨해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32번 스트리트의 브로드웨이를 시작으로 5번 애비뉴 사이를 걷다 보면 종로 거리의 한 부분을 오려 와서 붙여 놓은 듯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200미터 가량 되는 코리아 타운 거리 양쪽으로 은행, PC방, 호텔, 음식점, 빵집, 안경점, 슈퍼마켓, 백화점, 여행사, 노래방, 비디오 가게, 핸드폰 가게, 미용실, 병원, 약국 등모든 상점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다. 한글 간판을 내걸고 있는 가게들과,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검정색 콜택시와 대형 관광버스들 모두 한국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식료품 점마다 떡국에 들어갈 떡과 손만두를 비롯해 잡채, 부침개, 유과, 송편 등 명절 음식을 부족함 없이 갖춰 놓는 건 물론이고 한국 영화나 TV프로그램이 녹화된 테이프도 대여해서 볼 수 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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