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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의 레시피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모모 / 2024년 12월
평점 :

49일의 레시피, 이부키 유키 지음, 모모
<49일의 레시피>는 종이책으로 출간된 후, 2013년 NHK 드라마, 동명의 영화<49일의 레시피 Mourning Recipe>로제작되었던 화제성, 작품성을 인정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10여년 만에 재출간되어 이번에 읽을 수 있었다. 49제 대신 연회를 준비하면서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은 책이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약 2개월 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아쓰다 료헤이는 낚시를 간다고 하자, 아내 오토미가 고로케 샌드위치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도시락 주머니가 소스로 얼룩져 있어서 순간 버럭 화를 내며 도시락을 두고 갔는데, 그 후 수시간 뒤에 집에 혼자 있던 아내는 심장발작으로 죽게 된다. 아내가 죽은 후 료헤이는 쓸쓸한 얼굴로 도시락을 안고 있던 아내 얼굴을 떠올리며, 아내가 해 준 음식이 다 맛있었는데 요리를 제대로 칭찬한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경비일을 한 탓에 목소리 큰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거지 나쁜 뜻은 없었는데 말이다. 우린 항상 그렇다. 있을 때는 잘 해주지 못하다가 떠나보내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된다.
아내가 죽고 2주동안 료헤이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집은 엉망인 채로 지내고 있었다. 오토미는 슬픔에 빠져 남편이 아무것도 못하고 지낼 줄 알았던 걸까? 자신에게 배웠던 이모토에게 미리 49일치 돈을 주고 남편을 돌봐달라고 부탁했고, 이모토는 료헤이를 챙기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오토미가 평소에 지병이 있었는지 나와 있지 않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어떻게 이 모든 걸 준비할 수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진 가족들이 엄마의 유언에 따라 49제 대신 한바탕 춤추며 웃으면서 연회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오토미가 정성스럽게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만든 레시피를 보며 집안일도 배우고, 요리도 배워가면서 슬픔이 천천히 치유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오토미는 리본(rebone)이라는 단체에서 그림편지를 가치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살아온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배웠어야 할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나중에 이 아이들을 통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속옷 입는 법,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방법,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며 이제 자신감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아이들이 오토미의 49제에 찾아와 함께 오토미를 추억한다.
나도 올해 부모님을 모두 잃어 2번의 상을 치뤘는데 경황도 없고 슬픔을 제대로 씻어내지도 못했다. 아빠가 소천하시고 엄마에게 매일 2~3번씩 전화를 드리며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엄마 마저 없으니 세상이 없어진 듯 어떻게 할 지를 모르며 지냈었다. '옴마의 발자국'이라며 고인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고인의 연대표를 만들고 사진을 붙이고 추억하며, 함께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리본(rebone)에서 오토미에게 배웠던 아이는 오토미의 레시피대로 고로케 샌드위치를 만들어 온다. 모두들 오토미의 솜씨 그대로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엄마 소천하신지 2개월이 지났는데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이 벌써부터 그립다. 오토미처럼 우리의 엄마의 레시피가 남겨져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미는 남편과 딸에게 뿐만 아니라 리본에 살았던 아이들에게 정성껏 그림 일러스트가 그려진 레시피를 선물했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출생과 그 당시 있었던 중요한 사건, 이슈들도 함께 있었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니 모두들 오토미를 좋게 기억하며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료헤이는 49일간 함께 하며 도와주었던 이모토, 하루미를 보내고, 남편이 바람나 이혼하려 했던 딸을 도쿄로 돌려보내고 난 후 강에 빠져 자살하려 했지만 정신차리고 집으로 간심히 돌아와 따뜻한 난로가 있는 고타쓰로 쏘옥 들어 간다. 부엌에서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났고, 부옇게 된 유리문에 큰 하트가 그려져 있고 한 가운데 'OTOMI'라고 적혀 있었다. 료헤이가 본 것은 환상이었을까? 늘 곁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자신을 챙겨 주었던 아내가 떠 올랐던 것일까?
료헤이가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아내가 남긴 레시피를 완벽히 마스터한 덕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어찌되었던 잘 살아서 남은 생을 꾸려 나가야 한다. 먼저 간 가족이 남아있는 가족에게 바라는 것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중에 먼 훗날 천국에서 우리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리라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