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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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작품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었다. 책 속에서 책을 통해 전개되는 사건, 몰랐던 책을 알아가는 재미. 이런 재미를 느낀 적이 있었기에 <오 봉 로망>의 책 소개를 보는 순간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막상 받아본 <오 봉 로망>은 처음부터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책의 초장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 쓰러지는 사람.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들. 하마터면 소설의 장르를 추리소설로 착각할뻔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쏟아져나와 혼란스러움을 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오 봉 로망'. 이 책의 제목이자, 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뼈대처럼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프랑스어로 '좋은 소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서점은 말 그대로 좋은 서적만 취급하는 서점이었다. 현대의 다양한 마케팅 수단들, 그리고 물량공세의 틈바구니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좋은 소설들을 찾아내는 '좋은 소설 위원회'의 사람들. 이곳의 실질적 대표인 이방과 프란체스카가 조금씩 사건에 휘말리는 위원회 사람들의 일을 알게되며 대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가며, 독자는 '오 봉 로망'의 설립 과정을 조금씩 알아나가게 된다. 프란체스카와 이방이 만나 서점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서점이 열리는 순간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며 긴장감을 더해간다.
 정말 좋은 소설만을 찾아 소개하기 위한 서점이란, 그 목적만 보자면 굉장히 멋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격한 반대와 비난에 부딛힌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의 기준은 상당히 애매모호하면서도 주관적이어서, "왜 이 소설이 없어?"라는 의문을 갖는 손님이 없었을 리 있겠는가. 물론 자신의 소설이 없기 때문에 비난을 하는 작가도 있었을 것이고.

 책의 결말은 단적으로 말해 시원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그들이 반드시 알고싶었을 사실은 미궁에 빠지는. 다소 허무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참으로 현실적인 엔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건을 따라 짚어나가며 조금씩 고조되는 분위기만큼은 정말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보니 하루 공부를 마치고 하루에 100페이지씩 나누어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결말부분을 읽어내려갈 즈음에는 다음날 아침 출근조차도 잊은 채 책에 열성적으로 매달렸으니 말이다.
 어쩌면, 서점 '오 봉 로망'을 사랑했을 누군가도 나처럼 다음날의 근심걱정은 모두 잊은 채 그저 하염없이 서점에 자리잡고 책을 읽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이야기속 서점이 마냥 즐겁기만 한 엔딩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 주변에도 좋은 책이 가득해서 믿고 책을 살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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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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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보울러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미 중학교 때, 시험공부가 싫어 우연히 손에 들었던 동일 작가의 <리버보이>라는 책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오베라는 남자>의 리뷰를 쓸 때도 한번 언급했던 바이지만, 문장이 짧게 끊어지는 영미권의 소설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때문에 항상 독서취향이 일본쪽 소설들로 편중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팀 보울러의 책은 언제나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검은 형상은 마치 그곳 바닷가에서 숨을 쉬고 있는 듯 유리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지난 밤, 책을 읽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트위터에 따로 메모를 남겨두었던 구절이다. 단순히 누가 ~~했다 라는 표현의 반복을 넘어 시적이고,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옮겨다놓은듯한 섬세한 문장. 이것이 내가 팀 보울러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기대를 갖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배경은 모라섬이라는 외딴 섬이다. 섬에 사는 마을사람들이 100명도 채 되지 않고, 외부와의 교류도 눈에 띄게 활발한 편이 아니었기에 섬의 폐쇄성이 부각된다.
 보고 있는 사람조차 답답하게 만드는 섬의 이러한 폐쇄성은, 주인공인 헤티가 살고있는 모라섬에 폭풍우와 함께 한 배가 떠내려오면서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배와 함께 떠내려온 한 노파의 등장과 동시에 섬에는 좋지 않은 일만 계속 발생한다. 섬의 자랑이었던 배 '모라의 자랑'이 폭풍우로 인해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요, 노파를 악으로 치부하며 섬에서 쫓아내려 했던 퍼 노인의 죽음까지.
 이러한 모든 일들을 노파의 등장 탓으로 돌리고, 노파가 죽었으면 하며 내심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답답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인공인 헤티의 반응 역시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첫 부분부터 헤티는 '바다유리'를 가지고 다니며 그 속에서 배, 이후로는 얼굴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바다유리에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모라섬에 떠내려온 노파의 것이라고 확신, 그 이후로는 과할 정도로 노파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글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어느 쪽이 옳은 것일지 판단을 내릴 수 없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고조되는 갈등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굳혀가는 헤티와, 헤티의 모험의 결과가 가져온 이야기의 결말. 그리고 숨겨져있던 진실. 마지막까지 매끄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와,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팀 보울러의 예쁜 표현력 덕분에 마지막에는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 소설의 성장소설로서의 면모였다. 소설 초반의 헤티는,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퍼 노인과의 수도 없는 갈등과, 자신을 괴롭히는 또래 아이들에게 드러내는 방어적인 행동 등. 항상 헤티의 옆에서 공감해주려 애쓰는 탐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구와도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노파의 일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게 된 것. 그것이 노파가 헤티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록 결말에는 뜻밖의 선택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선택은 헤티로 하여금 보다 넓은 세계를 보며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성장해나가는 헤티를 보는 즐거움, 뜻밖의 전개와 더욱 놀라운 진실, 그리고 곳곳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표현들까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 덕분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물론, 전작에 비해 헤티의 성장이 크게 부각되지도, 성장까지의 과정이 물 흐르듯 유연하지도 못하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헤티에게 성장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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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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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국정교과서 문제나 일본 자위대 입국 허용 문제로 세상이 시끌시끌한 와중에 이 소설이 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고, 또 나나흰 서평 미션으로 나에게 도착하다니. 우연도 또 이런 우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펼쳐오던 흥선대원군과,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개화를 주장하던 민씨가 갈등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대원군과 전봉준 장군의 대화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백산 봉기를 시작으로 동학농민운동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책에서는 혁명을 준비하는 전봉준 장군 측의 이야기 외에도 대원군, 개화당 등 다른 측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역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동학도들의 혁명이 자신들의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또한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들의 대화와 생각이 생생하면서도 참으로 현실적이었다.


 사실 지금보다 약 10살쯤 어렸을 때 박경리의 <토지>를 읽어보고자 시도해보았던 적이 있었다. 토지의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그 때 내가 책을 금방 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술 방식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을 펴고 난 직후에도 비슷한 난관에 부딪혔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며 혁명이 무르익을수록 점차 고조되는 긴장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책에 집중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이 책이 품고 있는 인간성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국사와 관련된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지식이란 교과서에서 얻은 것이 전부였다. 단순히 농민군이 내걸었던 반외세 반봉건의 강령, 이 운동을 계기로 경복궁을 점거한 일본, 그로 인해 발발한 청일전쟁, 예상밖의 일본의 승리. 굉장히 객관적이면서도 표면적인 것들만 알아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비록 전봉준 장군과 대원군 주변의 인물들 위주로 조명되었다는 한계점 역시 가지고 있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보이는 이들의 삶은 농민들의 애환을 좀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치로 작용한다.


 책의 결말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남겨진 전봉준의 딸 갑례와, 신념을 쫓아 농민군에 합류한 이철래를 마음에 품고 험한 여정을 선택한 호정, 주체적인 삶의 기쁨을 알게 된 막동이 등.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에 책을 덮은 뒤에도 여운이 쉽사리 사라지질 않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역사를 기반으로 작가가 재창작 한 요소인지 판단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갑례와 호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역사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리뷰를 시작하며 국정교과서를 잠깐 언급했었는데, 내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역사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단 하나의 갈래로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초등학생때부터 기록해 온 일기장들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내 주관에서 작성된 만큼 그것이 100% 완전한 사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하물며 그것이 앞으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나갈 힘을 길러야 할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국정교과서라는 하나의 틀로 고정해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한 쪽의 의견만을 반영하여 편중된 교과서에, '올바른' 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잠깐 논지가 어긋났지만,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소재가 아니었던 만큼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절절했던 백성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것과 동시에, 지금의 우리는 이 때와 같은 실수를 다시 한 번 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국내 문제에 자꾸만 외국을 거론하며 끌어들이는 ― 예를 들자면 최근의 일본 자위대 입국 허용 문제와 같은 ― 행동들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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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리커버 한정판) -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당신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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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창밖으로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에 잠이 깨서 뒤숭숭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던 나에게 도착한 택배는, 단순히 종이봉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쁘게 접혀있었다.


 그런데 비 때문에 젖어있어서 어찌나 당황했던지ㅠㅠ 비 오는 날에는 일부러 택배를 부치지 않는다는 주변 몇몇 지인분들의 말에 이런 식으로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ㅠㅠ 아무튼 혹시라도 책이 상했을까 당황해서 서둘러 포장을 뜯어보니, 


 다행히 젖은데 하나 없이 멀쩡한. 심지어 표지에 이렇게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그려져있는 책이 나를 맞이했다. 다른 책들과 달리 겉표지가 책 크기에 비해 작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겉표지를 벗겨보자


 속에도 귀여운 물개가 아주 요염한 포즈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당신'이라는 문장과 함께, 뭔가 나른해보이는 듯한 물개의 표정이 더해지니 책 표지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칭찬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

남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면 좋겠어.


그 말은 결국,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생각보다 일을 잘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이런 열등감의 이면이 아닐까요? 

 책을 펼친지 몇 페이지도 되지 않아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이었다. 책 설명을 보자마자 이끌리듯 서평단에 신청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내가 가장 듣고싶었던 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책에서 벗어나 과거를 돌아보자면, 제법 필사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나를 움직이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어 조금은 방황하고 있는듯한 기분도 들지만, 적어도 몇 년 전까지의 나는 그랬다.

 도대체 왜 그랬던건지, 과거를 떠올려보면 아마도 중학생 때의 일이 가장 화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사는 지역으로 전학오기 전까지는 눈에 띌 정도는 아니어도 공부를 제법 잘 하는 편이었는데, 교육열이 보다 높은 지역으로 전학을 온 뒤로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학원 한 번 다녀보지 않았던 내가, 온갖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아빠의 욕심 덕분에 내가 전학가게 된 학교에는 지금 지역에서도 가장 외고를 많이 보낸다고 소문이 났던 곳이었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봤던 시험에서 나는 생에 처음으로 과목평균 앞자리에 '8'이라는 숫자를 찍어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내게 별 의미 없는 점수이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결과이긴 했다. 하지만 점수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날 밤 안방을 지나치다 우연히 들었던 아빠의 말.

 "이젠 쟤한테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이 말이 어찌나 서러웠던지 그날 밤에 소리를 죽여가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조금 길어졌지만, 아마도 내 삶에 전환점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시기인 것 같다. 특별히 외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고, 무조건 남에게 좋은 딸, 좋은 친구, 좋은 선배/후배로 남기 위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고에 진학하고, 외고에서는 생각처럼 나와주지 않는 성적에 충격을 받아 수면시간을 줄이고, 그래도 목표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줄이고. 그렇게 해서 결국 목표하던 대학에 진학했지만 왠지 허무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노력을 몰라주고, 오히려 결과만 보며 나에게 더한 성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완벽하게 있으려 하고, 그러다보니 팀과제에서도 항상 팀원들의 성과가 못마땅하고, 결국 모든 일을 맡아서 하려 하고...
 그러나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취업은 당연히 잘 하겠지. 너한테 이정도는 당연한 성과겠지. 처럼 더욱 심해져가는 반응들 때문에 회의감을 느끼고, 어떤 목표를 설정할지 모르게 된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 행동들은, 나를 그대로 적어 옮긴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을 정도로 과거의 이런 내 모습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거절하기, 적당히 하기, 기대에 부응하지 않기, 규칙 깨보기, 계획 없이 살기. 지금의 내 상태에 무언가 조언을 구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책이 나에게 주고 있는 해결책들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실은 부러워한다》(p.169)

 진심으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시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살면 남들이 미워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살면 남들이 싫어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살면 남들이 화를 낸다?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세요.

 하기 싫은 일은 용기를 내어 '하고 싶지 않아!'라고 확실히 말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이 노력했고 충분히 참아왔으니까요.

 

- 본문 중에서-

 


 마치 눈 앞에서 카운셀링을 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걸 그대로 간파당했다.(ㅋㅋㅋ)

 솔직히 20여년간 쌓아왔던 내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을, 책에서 권하는 대로 한번에 바꾸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무조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 내가 먼저 나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만큼은 이 책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책에서는 이러한 조언들을 위와 같은 귀여운 일러스트들을 사용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단순히 제삼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느낌이 아니라, 일러스트 속의 물개에 나를 이입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또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책에서 몇 번이고 '나는 이미 대단해'라는 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보고 있던 나마저도 '어 그런가...?' 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 정도로.

 해결책을 찾고 싶어서 책에 의존하려 했지만, 결국 결론은 내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짊어지고 있는 쓸데없는 부담은 조금 내려놓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배울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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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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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간 멀미와 싸워가며 출퇴근길에 꿋꿋이 읽어내려갔다. 처음 네이버와 YES블로그 등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봤을 때 부터,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책이 아닐까 굉장히 기대가 높았던 책이었는데...

 예상은 맞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입구에 매달려 그저 한가로이 바람에 흔들흔들 휘날릴 뿐입니다. 그래도 영업 중인지 아닌지 손님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는 포렴이에요. 주인의 파트너라고 자부합니다.

 첫 장을 읽자마자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던 점은 서술방식이었다. 보관가게의 영업을 알리며 흔들리는 포렴, 보관가게에 맡겨진 자전거, 가게 내의 장식장, 어릴 적 보관가게의 기적을 믿고 다시 찾아온 손님 나미, 마지막으로는 고양이 '사장님'까지. 각각의 장에서는 이들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 가게사장 도오루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의 시점에서도 도오루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 만으로 충분히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었고, 물건을 맡기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일에 불필요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건과 관련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책을 들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문구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는 않아도 도오루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고 있음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보고 있는 나마저도 주변에 이런 가게가 있다면 들러서 속상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으니, 가게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들은 오죽하랴. 비록 처음엔 가게의 시스템을 이용해 100엔만으로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행동도 제법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보관가게는 단골들을 중심으로 한적하고 편안한 가게로 점차 굳어져간다.


 그렇다고 책이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은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뒤의 이야기들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오루가 처음 보관가게를 시작하게 한 의문의 남자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더니, 뒤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물과 기존 보관가게의 손님이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도 없이 사라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의외의 인물로부터 듣기도 한다. 

 이처럼 초반에 조금 두루뭉술, 허술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하나하나 채워져 나가는 것을 볼 때의 그 충족감이란... 분명 가볍게 읽어내려갔던 처음과는 달리,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책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쥐 할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더니, 비밀을 밝히기라도 하듯 점잔을 빼며 말했다.

 "나는 양이오."

 헐, 대박 사건! 쥐가 아니라 양이었어?  

 또 한가지, 원문의 표현이 도대체 어땠는지 알 방법이 없지만 번역이 참으로 재미있다. 집사(시츠지:しつじ)와 양(히츠지:ひつじ)의 일본어 발음 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기는 장면인데, '대박 사건' 처럼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넣어 유쾌함을 가미해주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떠올랐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서 마치 이웃의 일마냥 친근감도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고민을 해결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만 한 가지. 열린 결말보다는 확실하게 딱 떨어지는 결말을 좋아하다보니 마지막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 아쉬웠다기보단 궁금했다. 아주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함께 살아온 도오루와 고양이 '사장님', 그리고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던 비누 아가씨. 마지막 에필로그 이후,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일이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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