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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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보울러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미 중학교 때, 시험공부가 싫어 우연히 손에 들었던 동일 작가의 <리버보이>라는 책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오베라는 남자>의 리뷰를 쓸 때도 한번 언급했던 바이지만, 문장이 짧게 끊어지는 영미권의 소설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때문에 항상 독서취향이 일본쪽 소설들로 편중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팀 보울러의 책은 언제나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검은 형상은 마치 그곳 바닷가에서 숨을 쉬고 있는 듯 유리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지난 밤, 책을 읽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트위터에 따로 메모를 남겨두었던 구절이다. 단순히 누가 ~~했다 라는 표현의 반복을 넘어 시적이고,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옮겨다놓은듯한 섬세한 문장. 이것이 내가 팀 보울러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기대를 갖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배경은 모라섬이라는 외딴 섬이다. 섬에 사는 마을사람들이 100명도 채 되지 않고, 외부와의 교류도 눈에 띄게 활발한 편이 아니었기에 섬의 폐쇄성이 부각된다.
 보고 있는 사람조차 답답하게 만드는 섬의 이러한 폐쇄성은, 주인공인 헤티가 살고있는 모라섬에 폭풍우와 함께 한 배가 떠내려오면서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배와 함께 떠내려온 한 노파의 등장과 동시에 섬에는 좋지 않은 일만 계속 발생한다. 섬의 자랑이었던 배 '모라의 자랑'이 폭풍우로 인해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요, 노파를 악으로 치부하며 섬에서 쫓아내려 했던 퍼 노인의 죽음까지.
 이러한 모든 일들을 노파의 등장 탓으로 돌리고, 노파가 죽었으면 하며 내심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답답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인공인 헤티의 반응 역시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첫 부분부터 헤티는 '바다유리'를 가지고 다니며 그 속에서 배, 이후로는 얼굴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바다유리에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모라섬에 떠내려온 노파의 것이라고 확신, 그 이후로는 과할 정도로 노파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글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어느 쪽이 옳은 것일지 판단을 내릴 수 없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고조되는 갈등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굳혀가는 헤티와, 헤티의 모험의 결과가 가져온 이야기의 결말. 그리고 숨겨져있던 진실. 마지막까지 매끄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와,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팀 보울러의 예쁜 표현력 덕분에 마지막에는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 소설의 성장소설로서의 면모였다. 소설 초반의 헤티는,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퍼 노인과의 수도 없는 갈등과, 자신을 괴롭히는 또래 아이들에게 드러내는 방어적인 행동 등. 항상 헤티의 옆에서 공감해주려 애쓰는 탐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구와도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노파의 일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게 된 것. 그것이 노파가 헤티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록 결말에는 뜻밖의 선택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선택은 헤티로 하여금 보다 넓은 세계를 보며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성장해나가는 헤티를 보는 즐거움, 뜻밖의 전개와 더욱 놀라운 진실, 그리고 곳곳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표현들까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 덕분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물론, 전작에 비해 헤티의 성장이 크게 부각되지도, 성장까지의 과정이 물 흐르듯 유연하지도 못하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헤티에게 성장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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