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간 멀미와 싸워가며 출퇴근길에 꿋꿋이 읽어내려갔다. 처음 네이버와 YES블로그 등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봤을 때 부터,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책이 아닐까 굉장히 기대가 높았던 책이었는데...

 예상은 맞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입구에 매달려 그저 한가로이 바람에 흔들흔들 휘날릴 뿐입니다. 그래도 영업 중인지 아닌지 손님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는 포렴이에요. 주인의 파트너라고 자부합니다.

 첫 장을 읽자마자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던 점은 서술방식이었다. 보관가게의 영업을 알리며 흔들리는 포렴, 보관가게에 맡겨진 자전거, 가게 내의 장식장, 어릴 적 보관가게의 기적을 믿고 다시 찾아온 손님 나미, 마지막으로는 고양이 '사장님'까지. 각각의 장에서는 이들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 가게사장 도오루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의 시점에서도 도오루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 만으로 충분히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었고, 물건을 맡기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일에 불필요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건과 관련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책을 들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문구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는 않아도 도오루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고 있음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보고 있는 나마저도 주변에 이런 가게가 있다면 들러서 속상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으니, 가게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들은 오죽하랴. 비록 처음엔 가게의 시스템을 이용해 100엔만으로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행동도 제법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보관가게는 단골들을 중심으로 한적하고 편안한 가게로 점차 굳어져간다.


 그렇다고 책이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은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뒤의 이야기들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오루가 처음 보관가게를 시작하게 한 의문의 남자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더니, 뒤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물과 기존 보관가게의 손님이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도 없이 사라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의외의 인물로부터 듣기도 한다. 

 이처럼 초반에 조금 두루뭉술, 허술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하나하나 채워져 나가는 것을 볼 때의 그 충족감이란... 분명 가볍게 읽어내려갔던 처음과는 달리,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책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쥐 할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더니, 비밀을 밝히기라도 하듯 점잔을 빼며 말했다.

 "나는 양이오."

 헐, 대박 사건! 쥐가 아니라 양이었어?  

 또 한가지, 원문의 표현이 도대체 어땠는지 알 방법이 없지만 번역이 참으로 재미있다. 집사(시츠지:しつじ)와 양(히츠지:ひつじ)의 일본어 발음 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기는 장면인데, '대박 사건' 처럼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넣어 유쾌함을 가미해주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떠올랐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서 마치 이웃의 일마냥 친근감도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고민을 해결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만 한 가지. 열린 결말보다는 확실하게 딱 떨어지는 결말을 좋아하다보니 마지막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 아쉬웠다기보단 궁금했다. 아주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함께 살아온 도오루와 고양이 '사장님', 그리고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던 비누 아가씨. 마지막 에필로그 이후,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일이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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