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고래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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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려내는 빛은 어째서 그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것일까요?


캄캄한 바다 밑바닥과 머나먼 하늘 저편의 우주를 비출 필요가 있으니까요.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던 문장이다. 물론 그 외에도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읽는 장면이 나왔다던가,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던가 하는 부가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첫 계기는 그랬다.

 그렇지만 이미 절판이 되어버린 책을 구하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중고서점이 보일 때면 늘 빠짐없이 들어가서 찾아보고는 했지만 매번 허탕이었고,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가 거의 포기해가고 있었을 무렵. 기적처럼 얼음고래 재판을 위한 텀블벅 후원 모집 소식이 들렸다.

 여기까지가 바로 작년의 일. 책은 무사히 받았지만 시험이네 뭐네 일상에 치여 살다가 마침내 여유가 나서 완독할 수 있었다. 수험서 외에 일반 문학서적을 읽은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그저 감동스러울 뿐ㅠㅠ


 《얼음고래》라는 제목만 보았을 땐 도무지 어떤 내용을 다루는 책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는데, 책을 펴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도라에몽'에 관한 이야기였다. 1장의 요술문부터 10장의 사차원 주머니까지 매 장은 도라에몽의 도구들을 소제목으로 내세우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주인공인 아시자와 리호코가 도라에몽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동시에 그 작가인 후지코 F. 후지오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며 처음 마주한 아시자와 리호코는 조금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만나는 모든 인물들에게 F로 시작되는 단어를 사용해 'SF', 일본어로 '조금(Sukoshi)' F~하다 라는 호칭을 붙이는 리호코는 ― 다양한 일본어 단어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일본어를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조금 했다 ― 늘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타인에 대한 벽을 느꼈기 때문일까.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독자인 나 역시도 그다지 리호코에게 정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리호코는 자신에게 사진 모델을 제안하는 학교 선배 벳쇼 아키라를 만나게 되고. 리호코가 유일하게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인 벳쇼를 통해 독자는 조금씩 리호코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모두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얼음에 갇혀 차가운 바다 아래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고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벳쇼와 리호코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래는 결국 구조작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지만, 리호코는 벳쇼라는 존재로 인해 성장을 하고, 그간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보고있지 않던 주변인들과 하나둘 마주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단순하게도...이 벳쇼라는 캐릭터와 리호코가 연인으로 맺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벳쇼가 묘사하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리호코와 일정 부분 비슷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리호코에게는 벳쇼가 정말이지 좋은 이해자였으니까. 어쩜 저렇게 리호코에게 필요한 말만을 해줄까, 어쩜 저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걸까, 그런 감탄을 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다 한 순간 어...? 하고 위화감을 느꼈던 순간. 잠시나마 착각을 해서 지금 등장인물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렸던 그 순간. 그 순간을 조금 더 소중히 했어야 했다. 설마 그런 반전이 숨겨져있을 줄이야...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감추어졌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간 모호하다고 생각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그 순간이 주는 쾌감. 그 쾌감이 나로 하여금 독서를 놓지 못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얼음고래》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리호코의 옛 남자친구로 나오는 와카오라는 인물의 존재가 어찌나도 불편하던지. 리호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제발 그만 만났으면, 제발 차단해버렸으면. 그런 생각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반복을 했는지 모르겠다.

 스토킹, 그리고 가스라이팅에 민감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많이 버겁지 않았을까. 가장 초입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주의 문구가 들어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이야기가 리호코 중심으로 전개되는 탓에 마지막에 와카오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의 상상속에서나마 자신이 저지른 짓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기를 바란다. 스토킹과 가스라이팅은 어떠한 연유에서건 절대로 용서받아선 안될 범죄이니까.




 이처럼 다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책을 덮는 순간에는 '역시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은 항상 이렇다. 평범한 소설처럼 보이면서도 어딘가에선 반드시 신비롭거나 미스테리한 요소를 찾아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있는.

 그런 한 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이 츠지무라 미즈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책을 손에 들었지만, 일본 작가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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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팅의 실전 다이어리 꾸미기 - 30가지 콘셉트로 꾸미는 나만의 다이어리 밥팅의 다이어리 꾸미기
밥팅 지음 / 넥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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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랜만의 포스팅입니다!
저는 최근 인스타나 트위터 등에서 활동하며 다이어리 꾸미기를 취미로 즐기고 있는데요,
좋은 기회로 최근에 출간된 밥팅의 실전 다이어리 꾸미기의 서평단이 되어
약 일주일 정도 책을 참고하며 다이어리를 꾸며봤습니다!
 




책 외관은 무척이나 깔끔하게, 그러나 누가 봐도 다이어리에 관한 책이구나! 라는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디자인이에요. 
이 예쁜 표지를 살짝 넘겨보면


이렇게 작가님의 인스타, 유튜브 주소와 함께 동영상으로 바로 이동 가능한 QR코드도 있어요!
책으로 봤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동영상으로 조금 더 자세한 팁을 얻을 수 있고,
저처럼 그냥 다른 사람 다꾸를 구경하는것만도 재밌다~ 하시는 분들도 들어가보면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밥팅님 유튜브랑 인스타는 저도 구독하면서 종종 훔쳐보고 있는데 정말 예쁘게 잘 꾸미시거든요!


목차를 살펴보면,
실전편이지만 저처럼 이 책을 먼저 접하는 분들을 위해 다꾸에 자주 이용되는 물건들,
그리고 다꾸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 분들이 카페나 SNS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을 아래에 보이는 사진처럼 표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어요!


이게 별거 아닌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게,
저는 처음 다꾸에 입문할때 '인스'가 뭔지, 또 '도무송'은 뭔지,
다른 분들이 사용하시는 용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무척 불편했거든요ㅠㅠ
사고싶은 종류의 스티커가 있는데 이걸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니 검색하기도 불편했고,
그래서 카페나 인스타의 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우느라 무척 고생한 적이 있거든요.
그 당시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단순히 나를 위해서 구입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다꾸를 막 시작한 주변사람에게 추천하기에도 딱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용어 정리가 끝나면 실제로 밥팅님이 꾸미신 다이어리의 전체 사진과 함께,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꾸미신건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신건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페이지들이 이어집니다:)

다이어리라고 해서 단순히 글씨만 쓰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취향에 맞게 꾸미게 되잖아요.
키치한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빈티지를 좋아하시는 분도, 레트로를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아니면 저처럼 딱히 고정된 느낌 없이 그때그때 끌리는대로 다꾸하는 잡탕(^^;;)족도 있고...
이 책은 어떠한 취향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정말 다양한 콘셉트를 소개하고 있어서
다양한 느낌의 다꾸를 간접체험 하면서 내 취향을 찾아가는데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저는 가장 마지막 챕터의 컬러 다이어리를 정말 인상깊게 봤는데요,


이건 제가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 다꾸 결과물들인데...
하나를 배우면 그 하나만 파는 성격 때문에 저는 그동안 한 장에 하루치 일기만 써야한다는...
그런 이상한 강박이 있는건지 늘 한 페이지를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늘 특별하고, 할 말이 많은 일상을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밥팅님이 올려주신 컬러 다이어리 페이지를 보는 순간,
아 굳이 한 페이지를 하루만으로 꽉 채우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는걸 깨닫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최근 며칠간은 크게 부담을 갖지 않기 위해 자잘한 내용으로 일기 채우기를 도전해봤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
단순히 프레임 뿐만이 아니라 책에서 소개해주신 깨알같은 팁들도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어요.
예를 들어 가장 처음의 길쭉한 다꾸는


이렇게 옆에 적힌 팁을 따라 직접 와이드형 위클리 칸을 구현해서 적어봤고요, 


늘 밋밋하기만 했던 날짜도 이런 식으로 소개해주신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봤고,
(그러나 밑그림 없이 바로 적어버려서 처참하게 실패한건 안 비밀...)


이렇게 중간중간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제목도 적...을 예정이었는데...

마음이 너무 앞섰나봐요ㅠㅠ
연습좀 해보고 적을걸, 의욕만 앞서서 바로 도전했더니 글씨가 엉망이네요.
글씨를 조금 더 두껍게 했으면 참 예뻤을텐데...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손그림을 그려서 글씨를 꾸밀 생각을 그동안 잘 못했던 사람이라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며 부끄러움을 참고 올려봅니다ㅠ
 


(일기 내용은 그야말로 우울함의 결정체라 살짝 모자이크를...)
중간에 써있는 저 '우울' 이라는 글자 역시도 밥팅님의 책을 참고했는데요,


가끔 형광펜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있었지만 별 생각없이 손이 가는 대로 썼는데,
이것 역시도 팁을 따라서 가는 닙, 넓적한 닙을 신경쓰며 써주었더니 
그냥 마음대로 쓸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느낌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다이어리를 쓸 때 손글씨 역시 중요하잖아요? 
손글씨에 따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좀더 예뻐보이고,
저같은 글씨를 가진 사람들은 귀여운 다꾸가 정말 안어울리기도 하는데ㅠㅠ...


밥팅님 책은 이렇게 손글씨에 고민을 가진 분들을 위해 마지막 장에 따로 손글씨를 따라해보는 손글씨 강좌 페이지도 마련되어 있어요!
저...정말로 귀여운 다꾸 하고싶은데 그 위에 글씨만 썼다 하면 분위기가 이도저도 아닌게 되어버려서
시간 날 때 열심히 한번 따라써보려구요ㅠㅠ



그날그날 쓰고 싶은 내용, 분위기 등, 모든것이 다르다 보니 밥팅님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의 반의 반도 제대로 활용해보지 못했지만,
가끔 어떻게 다꾸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힐때, 어떤 재료들이 조화가 잘 되는지 잘 모르겠을 때 등,
다꾸 초보분들 뿐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막히는 경우에도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인 것 같아요.

다꾸를 시작했지만 아직 어떻게 꾸며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도 남들처럼 예쁜 다꾸를 하고 싶다,
하고 계시는 전국의 수많은 다꾸 꿈나무 분들께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으로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지금보다 더 예쁜 다꾸를 자랑할 수 있게 되겠지요.

이런 좋은 책을 만들어주신 밥팅님, 그리고 넥서스북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서평을 쓰는 사이에 크리스마스가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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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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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빠가 위암 3기로 입원하셨던 적이 있다. 엄마는 병간호 때문에 아빠 곁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나는 인천의 가까운 외삼촌댁에 맡겨졌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기엔 너무 어렸던 탓에 입원중이던 아빠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겨우 아빠를 만날 수 있었던건 수술이 끝나고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뒤였으니,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엔 아빠의 병에 대한 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계속,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나에게 그리 가까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학창시절에 조부상 때문에 며칠간 비어있던 친구의 자리를 보면서도 사실은 너무나도 먼 남 일이었고, 우선은 내 나이부터가 죽음과는 굉장히 동떨어있기도 했고 말이다.

 이랬던 내가 죽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냥 곁에 계실것만 같던 나의 외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이제는 주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부친상'인 경우도 늘어났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당신의 사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나서야 드디어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아, 이제는 나에게도 마냥 먼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웃음'과 '죽음'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에는 뭐랄까, 조금 거북한 느낌이 앞섰다. 다루고 있는 소재와는 다르게 묘하게 가벼운 분위기로 이야기의 서문을 연 것은 좋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신의 아버지에 비교하며 효율적이고, 신속하다는 식의 적절치 못해보이는 단어를 사용한 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며 작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작가가 그저 가볍게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을 그저 두려워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죽음에,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한 마디 말로 정의할수도 없으며, 내가 찾아낸 답도 다른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생각이 있기 마련이니까.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유명인사의 이야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이야기. 이처럼 모두의 시각에서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해주는 덕분에, 독자로 하여금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는가? 언뜻 쉬운 문제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당신은 죽음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여담이지만 내일 같은 건 없다) 살고, 도락을 좇고, 소임을 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런 후 마침내 죽음이 임박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를 맞았다. 그런데 바로 앞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당신 인생사가 다 헛소리였음을 새로이 자각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애초에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p.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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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집사 - 집사가 남몰래 기록한 부자들의 작은 습관 53
아라이 나오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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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살면서 이 단어에 꿈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굳이 부자라고 불리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를 즐기려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한테 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마련이다.

 이 책은 저자 아라이 나오유키가 부자들, 그것도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 부자의 투자 비결
- 부자의 소비 원칙
- 부자의 인간 관계
- 부자의 금전 철학
의 구성으로 분류되어 있다.


 글쓴이가 만난 부자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인 탓이었을까. 책을 끝까지 다 읽어내려간 뒤에도 딱 이거다, 하고 한 단어로 부자가 되는 비결을 정리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의 신뢰와 도움이 있었던 반면, 어떤 사람은 혼자서 주식투자를 하는것 만으로도 부자가 되었다. 순전히 운이 따라서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의 생각과 전략으로 부를 거머쥔 사람도 있다.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제각각이듯,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도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증명이 된 것일테다.

 저자의 책에서 언급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어렵거니와, 만약 따라해본다 한들 모두가 부자가 되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운이 따라주지 않을지도 모르고, 주변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요소들도 많을테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며 부자들에게 볼 수 있는 몇가지 특징이 눈에 띄었다. 적절한 시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자들이 눈 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미래에 대한 불분명한 희망을 품고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도 않았다. 경제학에서 소위 말하고는 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이렇게,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가치에 대한 기준도 우리와는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어떠한 물건을 사러 갔을 때, 결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과연 이 가격을 지불해서 살만한 물건일까. 사고나서 후회하지 않을까. 정말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무엇 하나 속시원하게 구매를 결정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부자들은 달랐다. 우리가 "돈"의 가치에만 주목하는 사이에, 부자들은 돈으로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이 얻게 될 편익까지 고려한다. 그러면서도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들어왔던 말 중에 "쓰는 만큼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부자들의 이런 습성을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너무 안쓰고 모아두지도, 그렇다고 과하게 사용하지도 않고,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또다시 돈을 벌 수 있는 원동력(휴식이든, 보람이든...)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집사의 정중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한가득인 책 표지와는 다르게, 내용은 컴팩트하게, 하지만 다루어야 할 요점들은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읽기에 굉장히 편한 책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책에 나온 부자들의 습성을 그대로 따라하기 보다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관점으로 사물과 사람을 보고 있는지, 그들의 마음가짐을 참고하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미래의 부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며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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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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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흰 활동을 시작할 무렵, 덕분에 읽게 된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책을 손에 들자마자 《오베라는 남자》와 나란히 두어보았는데, 서로 다른 두 책이 주는 통일감이 왠지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았다.

 소포모어 징크스. 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 전《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두번째 작품,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의 구매 결정을 위해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전작과 비슷한 구조와 느낌 때문에 예상처럼 좋지 못한 평을 많이 발견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소포모어 징크스의 예를 찾자면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당시의 기억이 제법 강하게 남아 처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들었을 때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작가의 전 작품 《오베라는 남자》는 2015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다음달 쯤에는 영화화까지 되어 개봉이 될 예정이다. 첫 작품이 이처럼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새로운 작품이 기존 작품의 틀 안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베라는 남자》의 뒷부분을 읽으며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었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기에, 작가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책을 읽은지 머지않아 이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와의 공통점을 하나만 들자면, 이 책의 주인공인 '엘사'의 행동거지나 생각을 독자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곱살 어린 나이인 엘사는 제 나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곧바로 인터넷 '위키피디아'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아내려 하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른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이 때문에 학교의 다른 아이들에게 수도없이 구타와 괴롭힘을 당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엘사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녹록치 않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짝을 찾아 가정을 꾸렸으며, 무엇보다도 일을 우선시하는 엄마는 '반쪽이'라는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이다. 엘사의 아파트에는 매우 신경질적인 부부, 다혈질적인 남자, 무슨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 '괴물'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모여 살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엘사가 의지하는 것은 단 한 사람, 자신의 '수퍼 히어로'인 할머니 뿐이지만...

 이야기가 시작된지 머지않아 할머니는 엘사의 곁을 떠나버린다. 더는 할머니를 만날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그런 할머니가 마지막에 엘사에게 부여한 임무, '괴물'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엘사는 아파트의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몰랐던 모습과, 할머니와 아파트 거주민들의 관계, 마지막으로 자신이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소설은 할머니가 엘사에게 해주었던 가상의 세계 '미아마스'의 이야기와, 엘사가 실제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마치 《오베라는 남자》에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작가의 그런 표현 방식이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깨닫게 된다. 할머니가 매번 엘사에게 해주던 '미아마스'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그것도 엘사 주변의 인물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다고.
 아이의 시선으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며,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이상하게만 보였던 인물들의 숨겨진 뒷 이야기도. 그런 일련의 과정속에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어느새 인물을 향한 애틋한 마음만이 가득 들어차게 된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미워할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소설이 진행되며 조금씩 다가오던 위협을 물리친 끝에 갈등이 해결되고, 할머니가 최종적으로 엘사에게 남기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순간. 어느새 작가의 지난 작품에서도 그랬듯 펑펑 울고 있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두 작품을 읽고 나니,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는 그의 능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누군가의 행동 이면에 숨겨진 고뇌와 과거. 그것이 고조되다 못해 마지막에 한데 모여 터지는 순간, 책장을 넘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원한다 해서 누구나 구현해낼 수 없는 이러한 느낌을 전작의 흥행이라는 부담감 속에서 다시 한 번 구현해 낼 수 있다니. 어째서 이 작품이 2015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의해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려와 함께 책을 펴들었지만, 이제는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뜻밖의 주인공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할지,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건 어떤 감동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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