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빠가 위암 3기로 입원하셨던 적이 있다. 엄마는 병간호 때문에 아빠 곁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나는 인천의 가까운 외삼촌댁에 맡겨졌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기엔 너무 어렸던 탓에 입원중이던 아빠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겨우 아빠를 만날 수 있었던건 수술이 끝나고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뒤였으니,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엔 아빠의 병에 대한 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계속,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나에게 그리 가까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학창시절에 조부상 때문에 며칠간 비어있던 친구의 자리를 보면서도 사실은 너무나도 먼 남 일이었고, 우선은 내 나이부터가 죽음과는 굉장히 동떨어있기도 했고 말이다.

 이랬던 내가 죽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냥 곁에 계실것만 같던 나의 외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이제는 주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부친상'인 경우도 늘어났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당신의 사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나서야 드디어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아, 이제는 나에게도 마냥 먼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웃음'과 '죽음'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에는 뭐랄까, 조금 거북한 느낌이 앞섰다. 다루고 있는 소재와는 다르게 묘하게 가벼운 분위기로 이야기의 서문을 연 것은 좋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신의 아버지에 비교하며 효율적이고, 신속하다는 식의 적절치 못해보이는 단어를 사용한 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며 작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작가가 그저 가볍게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을 그저 두려워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죽음에,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한 마디 말로 정의할수도 없으며, 내가 찾아낸 답도 다른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생각이 있기 마련이니까.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유명인사의 이야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이야기. 이처럼 모두의 시각에서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해주는 덕분에, 독자로 하여금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는가? 언뜻 쉬운 문제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당신은 죽음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여담이지만 내일 같은 건 없다) 살고, 도락을 좇고, 소임을 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런 후 마침내 죽음이 임박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를 맞았다. 그런데 바로 앞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당신 인생사가 다 헛소리였음을 새로이 자각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애초에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p.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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