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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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흰 활동을 시작할 무렵, 덕분에 읽게 된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책을 손에 들자마자 《오베라는 남자》와 나란히 두어보았는데, 서로 다른 두 책이 주는 통일감이 왠지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았다.

 소포모어 징크스. 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 전《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두번째 작품,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의 구매 결정을 위해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전작과 비슷한 구조와 느낌 때문에 예상처럼 좋지 못한 평을 많이 발견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소포모어 징크스의 예를 찾자면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당시의 기억이 제법 강하게 남아 처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들었을 때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작가의 전 작품 《오베라는 남자》는 2015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다음달 쯤에는 영화화까지 되어 개봉이 될 예정이다. 첫 작품이 이처럼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새로운 작품이 기존 작품의 틀 안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베라는 남자》의 뒷부분을 읽으며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었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기에, 작가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책을 읽은지 머지않아 이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와의 공통점을 하나만 들자면, 이 책의 주인공인 '엘사'의 행동거지나 생각을 독자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곱살 어린 나이인 엘사는 제 나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곧바로 인터넷 '위키피디아'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아내려 하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른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이 때문에 학교의 다른 아이들에게 수도없이 구타와 괴롭힘을 당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엘사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녹록치 않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짝을 찾아 가정을 꾸렸으며, 무엇보다도 일을 우선시하는 엄마는 '반쪽이'라는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이다. 엘사의 아파트에는 매우 신경질적인 부부, 다혈질적인 남자, 무슨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 '괴물'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모여 살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엘사가 의지하는 것은 단 한 사람, 자신의 '수퍼 히어로'인 할머니 뿐이지만...

 이야기가 시작된지 머지않아 할머니는 엘사의 곁을 떠나버린다. 더는 할머니를 만날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그런 할머니가 마지막에 엘사에게 부여한 임무, '괴물'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엘사는 아파트의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몰랐던 모습과, 할머니와 아파트 거주민들의 관계, 마지막으로 자신이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소설은 할머니가 엘사에게 해주었던 가상의 세계 '미아마스'의 이야기와, 엘사가 실제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마치 《오베라는 남자》에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작가의 그런 표현 방식이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깨닫게 된다. 할머니가 매번 엘사에게 해주던 '미아마스'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그것도 엘사 주변의 인물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이야기였다고.
 아이의 시선으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며,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이상하게만 보였던 인물들의 숨겨진 뒷 이야기도. 그런 일련의 과정속에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어느새 인물을 향한 애틋한 마음만이 가득 들어차게 된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미워할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소설이 진행되며 조금씩 다가오던 위협을 물리친 끝에 갈등이 해결되고, 할머니가 최종적으로 엘사에게 남기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순간. 어느새 작가의 지난 작품에서도 그랬듯 펑펑 울고 있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두 작품을 읽고 나니,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는 그의 능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누군가의 행동 이면에 숨겨진 고뇌와 과거. 그것이 고조되다 못해 마지막에 한데 모여 터지는 순간, 책장을 넘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원한다 해서 누구나 구현해낼 수 없는 이러한 느낌을 전작의 흥행이라는 부담감 속에서 다시 한 번 구현해 낼 수 있다니. 어째서 이 작품이 2015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의해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려와 함께 책을 펴들었지만, 이제는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뜻밖의 주인공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할지,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건 어떤 감동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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