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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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타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런데 산타와 달리 8살 위의 형 다로는 빼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산타가 중학교 동창회에 나갔을 때 학창 시절 기억이 거의 없던 산타에게 형처럼 기억을 잘하는 친구가 다가와 여자 형제가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산타가 머리가 긴 또래의 여자아이와 걷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혈연 관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산타는 형에게 형과 자신과의 사이에 여자 형제가 있지 않았냐며 물어봤지만 없었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어쩌면 '스키마와라시'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의 기억과 기억 사이에 깃드는.

아! 물론 이것은 형 다로가 즉석에서 그냥 붙인 이름이다. 그런 존재 또한 없다.

산타는 어렸을 때 부터 어떤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에 깃든 '과거'가 보였다.

'그것'은 예고되지 않고 갑자기 훅 다가오며 열을 머금은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부른다'는 느낌을 주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함께 느끼는 감정들. '그것'이 일어날 때 느끼는 외로움 또는 노여움, 공포 등의 감정.

산타는 항상 받는 쪽이었다. '그것'이 일어나려면 자신의 물건과 일상적으로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이어야 했다.

'그것'에 대한 기대와 불안. 그래서 산타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 되었다.

형 다로는 산타에게 산타의 기억력이 나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사물의 기억의 파편을 봄으로써 성가신 일에 말려들지 않게 산타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일부러 잊어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산타는 학교를 졸업 후 조리사로 근무하다 일하는 가게가 문을 닫자 고향에 내려와 형의 골동품점 일을 돕게 되었다. 낮에는 형을 도와 일을 하지만 밤에는 '고케쓰 공무소'의 한켠에서 조그만 술집을 운영했다. 간판도 없고 안주도 몇 가지 없어서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단촐한 술집이었다.

그 날도 골동품 업무를 하는 형의 지인들이 와서 술을 마시며 그쪽 업계의 괴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었던 고다마 씨가 철거 현장에서 나오는 유령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쿄 도심부의 철거 현장에서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여자아이 유령. 그 아이는 11월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여름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껴 유령이라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를 목격한 곳은 그곳 뿐만이 아니었다. 오사카 북쪽의 오래된 빌딩을 철거했을 때에도 아이를 목격했다고 한다. 머리를 길게 세 가닥으로 땋은 여자아이.

산타는 그 여자아이가 스키마와라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때 형은 철거 현장에서 타일을 쓴 부분이 있었는지 물었고, 고다마 씨는 한참 생각 후 있었다는 대답을 했다.

형 다로와 산타는 긴장했다. 그들은 특정 타일을 찾고 있었다. 만지면 강렬하고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는 '과거'가 보이는 타일을.



형제는 타일을 추적하며 산타가 타일을 만졌을 때 보았던 광경과 타일에 새겨진 문양들을 참고로 타일이 1930년에 세워졌던 '아쿠쓰가와 호텔'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추리했다. 거기에 더해 형은 산타가 반응한 타일들이 원래 용도에서 다른 용도로 전용된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철거 현장에 나타난다는 스키마와라시는 아무 철거현장이 아니라 그 타일이 있는 곳과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고 추리했다.

어느 날 이축업체를 운영하는 마쓰카와 씨가 산타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 역시 철거현장에서 도란을 메고 콘크리트 잔해더미를 보고 있는 스키마와라시를 목격했음을 이야기한다. 마쓰카와 씨는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현장사진을 찍다가 그 여자아이 모습까지 찍는다.

이후 형과 도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은 스키마와라시가 도란에 무언가를 채집하고 있다고 추리했다.

얼마 후 마쓰카와 씨로부터 다로가 관심을 가질 물건이 있을만한 특이한 건물을 철거하니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마쓰카와 씨가 불러서 간 건물에서 산타는 '그것'이 부른다는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어떤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달 전망대가 있는 맨 끝 좁은 방의 벽에 있는 타일을 살펴보다 어떤 존재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집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산타를 지나치는 싸늘한 바람… 그리고 예전에 아이 방으로 썼던 방에 있던 책상이 진동하며 서랍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툭 튀어 나온 작은 손….

더구나 산타의 머릿속에 "○○"를 부르는 맑고 뚜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 소설은 주인공 산타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잔잔하게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왜 주인공이 키운 개의 일까지 소상히 소개하는가 싶지만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산타는 사념이 집중된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이 기억하는 '과거'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오래된 물건을 만진다고 전부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고, 새로운 물건에서도 '그것'이라는 것이 일어난다.

그런 산타의 능력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에서 스키마와라시와의 접점을 찾아내고, 산타가 보는 광경과 스키마와라시의 비밀을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형 다로는 산타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항상 산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고케쓰 형제의 삶은 바쁘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면을 보여준다.

젊은 사람들이지만 골동품점을 운영하고 옛 것을 선호하고 형은 항상 차분함과 느긋함을 보여준다. 산타가 표현하길 거기에 어울리는 노안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흔한 SNS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개인이 운영하는 고즈넉한 카페를 좋아하고, 형은 문고리를 산타는 풍경소인을 수집하는 요즘은 보기드문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스키마와라시는 왜 나타나는가', '콘크리트 잔해 더미에서 무엇을 찾고 있나', '스키마와라시와 산타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라는 의문들을 가져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아쿠쓰가와 호텔'의 타일이 쓰인 오래되고 전용된 빌딩이 전부 철거되면 스키마와라시는 어떻게 되는걸까?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왜 스키마와라시가 ○○를 찾아 다녔을까'라는 것이다.

작가는 스키마와라시라는 존재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옛 것에 대한 향수, 빠르게 변화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느림과 느슨함의 미학.

형제들의 직업처럼 스키마와라시는 변화된 세계에서 느끼는 과거로의 향수가 아닐까? 그리고 스키마와라시가 수집한 물건이 의미하는 것처럼 옛 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생명과 문화의 탄생.

간만에 잔잔하게 나의 기억으로 스며드는 소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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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브라운
너새니얼 호손 지음 / 내로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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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하다라……. 사악을 어떻게 정의하지?

Wickedness or not

한글 p.31, 영문 p.30



세일럼 마을의 젊은 굿맨 브라운은 해가 질 즈음 여정을 나선다. 아내 '신념'이 배웅을 하러 나와 그에게 그날 밤이 지나 해가 뜬 다음에 갈 것을 권유하지만 굿맨 브라운은 일년 중 딱 그날만은 그럴 수가 없다며 길을 나선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그는 가장 짙은 어둠을 뽐내는 숲속의 황량한 길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굿맨 브라운과 분위기가 비슷한 오십 대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굿맨 브라운과 비슷한 옷을 차려입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거대한 검은 뱀 모양의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나이 든 남자는 힘들면 자신의 지팡이를 사용하라며 굿맨 브라운에게 내밀지만 굿맨 브라운은 약속은 딱 여기까지라며 서로가 만났으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계속 걸으며 이야기할 것을 요구했고 굿맨 브라운은 충분하다며 소리쳤지만 자신도 모르게 숲속 더 깊이 남자를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굿맨 브라운은 양심에 찔려하며 자신의 집안 사람들은 절대 이런 곳에 오지 않았을거라 이야기했지만 늙은 남자는 굿맨 브라운을 비웃으며 자신은 그동안 브라운가의 사람들을 포함한 신의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그들과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굿맨 브라운의 조부와 아버지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 마을의 행정관, 대법원과 주 의회의 절대다수, 주지사 등.

굿맨 브라운은 자신의 아내 '신념'이 이 일에 대해 알게 되면 상심할 것이라며 아내를 슬프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어버리겠다고 울부짖었다. 그 때 그들 앞으로 나이든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 중의 한명인 구디 클로이스 권사였다. 굿맨 브라운은 권사를 피해 숲길로 빠졌지만 나이 든 남자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 권사에게 아는 척을 한다.

독실한 권사는 나이 든 남자를 알아 보며 반가워하며 그를 '주인'으로 칭했다.

굿맨 브라운은 그녀에게서 교회의 교리문답을 배웠던것을 생각하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탄식을 내뱉는다.

둘은 계속 앞으로 향했고 굿맨 브라운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신념'이 있다며 더이상 나이 든 남자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굿맨 브라운이 아내 '신념'과 같이 지낼 평온하고 안락한 날들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겼을 때 멀리서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교회의 목사와 구킨 장로였다.

그들은 오늘 모임에 빠지느니 교회의 안수 만찬을 빠지겠다는 대화를 하는데…….




짧은 단편이지만 정말 심오한 깊이가 있는 단편이었다.

굿맨 브라운의 고향인 세일럼은 폐쇄적인 청교도 공동체였다. 모두가 같은 신념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며 성장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마을이이었다.

1692년 이곳에서 '마녀재판'으로 25명이 처형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보여준 대표적인 일화이다. 미국 역사상 치욕스런 사건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이 '마녀재판'의 특별재판관 중의 한 명인 존 호손의 후손이기도 하고 세일럼 출신이기도 한 나다니엘 호손이 이 『굿맨 브라운』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굿맨 브라운은 어릴 때부터 신의 교리에 따라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악마가 지배하는 어두운 숲속에서 선하고 신실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을 만나며 그의 믿음은 흔들린다. 그들은 악마를 '주인'으로 숭상하며 악인과 뒤섞여 수치스러워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장엄하게 이교도로의 개종의식을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낮동안의 마을에서의 모습은 선하고 바르기 그지없지만 실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내면속에서 어둡고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밤의 숲속에서의 그들의 모습처럼.

그들의 악함은 세일럼 마을에서 선함이라는 가면과 연극 속에 가려져 있었다.

굿맨 브라운의 눈에 보이는 선함은 진실된 것이 아니었고 마음 속의 악함을 경계해야만 했다.

선함을 가장한 성인들의 추악한 진실을 맞닥뜨린 굿맨 브라운의 혼란과 좌절과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마지막 용기를 짜내 악에 대항하고자 하지만 홀로 숲속에서 깨어난다.

과연 그가 겪은 일은 실제였을까? 아니면 그의 의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였을까?

그가 굳게 믿고 의지하면 살아왔던 신념이 무너졌을때 그는 살아가는 이정표 또한 잃고 방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 사건 이후 예전의 굿맨 브라운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종교적 신념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고 해서 과연 그가 불행한 생을 살았던 것일까?

그가 강요된 집단적 신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살게 되지는 않았을까?

물론 집단적 신념에 사로잡힌 이들 눈에는 기이하고 불행하게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번 읽어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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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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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새로운 획을 그을 대작인것 같아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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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소설 읽기 - 베르테르에서 해리 포터까지,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본 문학 속 주인공들
클라우디아 호흐브룬 지음, 장윤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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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 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을 선정하여 문학 속 인물이 마치 실존하는 인간인 것처럼 그 인물의 심리와 시대적 상황 등을 반추하여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고대의 《오이디푸스 왕》부터 현대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까지 15편의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을 분석하고 있다. 대중적이고 다들 아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안타깝게 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지 않아서 내가 느낀 인물에 대한 느낌과 작가의 인물 분석을 비교하지 못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오이디푸스 같은 경우는 영문학을 공부할 때나 심리학을 공부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역시 이 책에서도 제일 처음 다루고 있는데, 작가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서 감추려고만 하는 비밀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므로 양부모가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을 툭 터놓고 이야기했더라면 불행을 애초에 막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발달 초기 단계에서 사랑과 보살핌 대신 친부모로부터의 거부와 폭력을 경험한 오이디푸스에게 양부모 역시 적절한 갈등 해소 방법을 제시하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이디푸스가 친아버지를 만났을 때 공감 능력의 결여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이코패시'의 가능성까지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이디푸스를 한 인물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 맞추지 않고 세세한 상황을 가지고 따진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나 신들 거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아서 왕》의 이야기는 남성적 영웅 행위가 중심이고 여성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 위치에 있다. 그저 생식을 위한 생물학적인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

아서와 귀네비어와의 관계도 사랑이 아닌 정치적인 관계로 둘 사이에는 자녀도 없다. 아마 아서가 친부모 밑에서 성장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애정이라는 유대관계 형성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관계형성의 어려움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남성들 손에 자라난 아서는 남성 기사들과의 관계는 원만했고, 기사들은 아서를 최고로 칭송했다. 그는 귀네비어보다는 기사 랜슬롯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아서는 랜슬롯과의 사이에 친구나 신하 이상으로 느끼는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랜슬롯이 귀네비어를 데리고 도망을 쳤을 때, 귀네비어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라 랜슬롯을 잃은 충격이 더 컸다고 한다. 아서는 불륜으로 죽어야하는 사람은 귀네비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랜슬롯은 자신에게로 돌아올테니.

이 책에는 얼마전에 새롭게 읽었던 《드라큘라》에 대한 분석도 나와있다.

그중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반 헬싱 박사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드라큘라의 반 헬싱 박사가 가학적 성격을 가지고 죽이는 행위를 통해 내적 만족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회에 잘 적응한 사이코패스!

악을 죽인다는 명분으로 그의 파괴 욕구는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이 파괴 욕구는 루시의 수혈에서 드러난다. 쇠약해진 루시에게 루시를 흠모하는 세 명의 남자와 반 헬싱이 함께 수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이고 이런 무분별한 수혈이 위험하다는 것은 의사인 반 헬싱은 알고 있었음에도 행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드라큘라가 없었다면 루시는 '혈액형 부적합'으로 이미 죽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드라큘라을 읽으면서 나도 이 부분에서 '서로 혈액형이 맞으려나'라는 의문은 들었었다. 그래도 고전 소설이니 그러려니하고 넘어갔는데…. 이 부분을 꼭 집어 가학적 파괴 욕구를 가진 사이코패스라니.

굳이 뱀파이어를 쫓아가서 세 신부를 죽이고 그도 죽여버린 사이코패스 반 헬싱 때문에 뱀파이어와의 평화로운 공존이 늦어졌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작가가 뱀파이어와 인간의 공존이라고 말한 《트와일라잇》에서도 '컬렌 가족'을 빼면 그다지 평화로운 공존은 아니었던 듯한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

그는 섬세하며 저돌적인 인물이다. 레트는 스칼렛이 자신의 사랑에 제대로 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사랑한다. 딸 보니를 끔찍이 사랑하며 스칼렛이 첫 결혼에서 얻은 아이들까지도 똑같이 애정을 나누어 준다. 그는 자신이 맺은 관계에 충실했다.

하지만 스칼렛은 다른 자녀들처럼 그들 둘 사이에서 생긴 딸에게도 그 정도의 사랑만 준다. 그리하여 레트는 딸 보니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영원히 스칼렛을 떠나게 된다.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아닌 레트 버틀러는 생각할 수 없다. 정열적이고 유머러스한 레트.

어릴 때 이 영화를 보며 왜 스칼렛은 저리 매력적인 남자를 두고 매력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애슐리를 사랑할까 하고 궁금했었던 기억이 있다.

스칼렛은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랑만 동경했을까? 결국 레트가 떠난 후에야 사랑을 깨닫게 되니.

《삐삐 롱스타킹》의 삐삐는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음에도 발달 초기 단계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수많은 장난과 말썽에도 불구하고, 남을 잘 돌보는 책임감있는 모습과 따뜻하고 인정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삐삐는 흥미를 좇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며 친구를 만든다. 삐삐의 인생에서 어른들의 사랑과 질투심은 짐이 될 것임에 틀림없기에, 삐삐는 성장 후 성생활도 다양한 놀이나 장난처럼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출간된 소설 속 삐삐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 당시 젊은 히피 여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삐삐와 히피의 모습… 어쩐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세계적 선풍을 이끌었던 뱀파이어 이야기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는 1917년 스페인 독감으로 어머니를 잃고 그 또한 죽음의 문턱에 까지 이르렀으나 뱀파이어로 변해 죽음을 면한다. 그는 뱀파이어로서 혈기왕성한 10대를 보내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사용하여 자살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을 죽이면서 자기합리화를 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20세기 전반에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에드워드는 항상 불안속에서 자신을 통제하며, 친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배운 자신의 소중한 존재의 상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벨라를 보호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고 에드워드는 벨라를 자신과 똑같은 뱀파이어로 바꾸어야만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벨라를 보살피며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에드워드가 자신이 벨라에게 쾌락을 안기는 연인이자 아이를 돌보아주는 남편으로만 남아도 충분하다는 걸 자각했다고 한다. 벨라의 위협적이고 왕성한 성욕. 이 부분에서 너무 웃음이 났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이걸 이 정도로까지 심하게 표현을 해야되나 싶은 인물 분석도 있어 나름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은 책이다.

문학소설을 쓸 때는 현실을 사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이나 주요인물로 표현하면 너무 밋밋하고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평범하게 생기고 평범한 성격의 인물이 눈에 띄지 않고 아무런 사고없이 무난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그냥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하면 누가 그 소설을 읽으려 하겠는가.

작가들은 개성있는 인물을 창조하여 극중 인물간의 갈등을 최대화하고 극적요소를 많이 사용한 소설을 쓰고, 독자들은 긴장과 갈등해소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실제 삶에서의 활력을 느낀다.

한마디로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 처럼.

분명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건강이라는 것이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작가의 상상력과 최대한의 갈등과 개성의 부각이라는 점을 명심하여 책을 읽어 소설에 대한 이상과 꿈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책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가 진단한 인물 분석과 각자가 소설을 읽고 느낀 인물에 대해 비교해 보면서 읽으면 어떨까.

소설의 인물 분석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고 신선한 견해여서 재미난 시간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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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 MIDNIGHT 세트 - 전20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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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일으키는 책표지 디자인부터 알찬 고전 구성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네요. 너무 기대되고 꼭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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