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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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타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런데 산타와 달리 8살 위의 형 다로는 빼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산타가 중학교 동창회에 나갔을 때 학창 시절 기억이 거의 없던 산타에게 형처럼 기억을 잘하는 친구가 다가와 여자 형제가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산타가 머리가 긴 또래의 여자아이와 걷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혈연 관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산타는 형에게 형과 자신과의 사이에 여자 형제가 있지 않았냐며 물어봤지만 없었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어쩌면 '스키마와라시'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의 기억과 기억 사이에 깃드는.

아! 물론 이것은 형 다로가 즉석에서 그냥 붙인 이름이다. 그런 존재 또한 없다.

산타는 어렸을 때 부터 어떤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에 깃든 '과거'가 보였다.

'그것'은 예고되지 않고 갑자기 훅 다가오며 열을 머금은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부른다'는 느낌을 주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함께 느끼는 감정들. '그것'이 일어날 때 느끼는 외로움 또는 노여움, 공포 등의 감정.

산타는 항상 받는 쪽이었다. '그것'이 일어나려면 자신의 물건과 일상적으로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이어야 했다.

'그것'에 대한 기대와 불안. 그래서 산타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 되었다.

형 다로는 산타에게 산타의 기억력이 나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사물의 기억의 파편을 봄으로써 성가신 일에 말려들지 않게 산타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일부러 잊어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산타는 학교를 졸업 후 조리사로 근무하다 일하는 가게가 문을 닫자 고향에 내려와 형의 골동품점 일을 돕게 되었다. 낮에는 형을 도와 일을 하지만 밤에는 '고케쓰 공무소'의 한켠에서 조그만 술집을 운영했다. 간판도 없고 안주도 몇 가지 없어서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단촐한 술집이었다.

그 날도 골동품 업무를 하는 형의 지인들이 와서 술을 마시며 그쪽 업계의 괴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었던 고다마 씨가 철거 현장에서 나오는 유령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쿄 도심부의 철거 현장에서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여자아이 유령. 그 아이는 11월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여름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껴 유령이라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를 목격한 곳은 그곳 뿐만이 아니었다. 오사카 북쪽의 오래된 빌딩을 철거했을 때에도 아이를 목격했다고 한다. 머리를 길게 세 가닥으로 땋은 여자아이.

산타는 그 여자아이가 스키마와라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때 형은 철거 현장에서 타일을 쓴 부분이 있었는지 물었고, 고다마 씨는 한참 생각 후 있었다는 대답을 했다.

형 다로와 산타는 긴장했다. 그들은 특정 타일을 찾고 있었다. 만지면 강렬하고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는 '과거'가 보이는 타일을.



형제는 타일을 추적하며 산타가 타일을 만졌을 때 보았던 광경과 타일에 새겨진 문양들을 참고로 타일이 1930년에 세워졌던 '아쿠쓰가와 호텔'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추리했다. 거기에 더해 형은 산타가 반응한 타일들이 원래 용도에서 다른 용도로 전용된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철거 현장에 나타난다는 스키마와라시는 아무 철거현장이 아니라 그 타일이 있는 곳과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고 추리했다.

어느 날 이축업체를 운영하는 마쓰카와 씨가 산타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 역시 철거현장에서 도란을 메고 콘크리트 잔해더미를 보고 있는 스키마와라시를 목격했음을 이야기한다. 마쓰카와 씨는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현장사진을 찍다가 그 여자아이 모습까지 찍는다.

이후 형과 도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은 스키마와라시가 도란에 무언가를 채집하고 있다고 추리했다.

얼마 후 마쓰카와 씨로부터 다로가 관심을 가질 물건이 있을만한 특이한 건물을 철거하니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마쓰카와 씨가 불러서 간 건물에서 산타는 '그것'이 부른다는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어떤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달 전망대가 있는 맨 끝 좁은 방의 벽에 있는 타일을 살펴보다 어떤 존재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집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산타를 지나치는 싸늘한 바람… 그리고 예전에 아이 방으로 썼던 방에 있던 책상이 진동하며 서랍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툭 튀어 나온 작은 손….

더구나 산타의 머릿속에 "○○"를 부르는 맑고 뚜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 소설은 주인공 산타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잔잔하게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왜 주인공이 키운 개의 일까지 소상히 소개하는가 싶지만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산타는 사념이 집중된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이 기억하는 '과거'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오래된 물건을 만진다고 전부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고, 새로운 물건에서도 '그것'이라는 것이 일어난다.

그런 산타의 능력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에서 스키마와라시와의 접점을 찾아내고, 산타가 보는 광경과 스키마와라시의 비밀을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형 다로는 산타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항상 산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고케쓰 형제의 삶은 바쁘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면을 보여준다.

젊은 사람들이지만 골동품점을 운영하고 옛 것을 선호하고 형은 항상 차분함과 느긋함을 보여준다. 산타가 표현하길 거기에 어울리는 노안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흔한 SNS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개인이 운영하는 고즈넉한 카페를 좋아하고, 형은 문고리를 산타는 풍경소인을 수집하는 요즘은 보기드문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스키마와라시는 왜 나타나는가', '콘크리트 잔해 더미에서 무엇을 찾고 있나', '스키마와라시와 산타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라는 의문들을 가져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아쿠쓰가와 호텔'의 타일이 쓰인 오래되고 전용된 빌딩이 전부 철거되면 스키마와라시는 어떻게 되는걸까?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왜 스키마와라시가 ○○를 찾아 다녔을까'라는 것이다.

작가는 스키마와라시라는 존재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옛 것에 대한 향수, 빠르게 변화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느림과 느슨함의 미학.

형제들의 직업처럼 스키마와라시는 변화된 세계에서 느끼는 과거로의 향수가 아닐까? 그리고 스키마와라시가 수집한 물건이 의미하는 것처럼 옛 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생명과 문화의 탄생.

간만에 잔잔하게 나의 기억으로 스며드는 소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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