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이면 그림을 그렸다
나태주 지음, 임동식 그림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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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 스케치를 배우고 있다. 준비물은 스케치북과 4B연필, 지우개, 연필 깎는 칼 이다. 원통, 원뿔, 정육면체, 구, 컵, 화병, 캔음료, 물건을 담은 종이포장지, 피망, 나뭇잎, 인물화... 구도부터 균형이 안맞게 잡다보니 선생님이 위치를 잡아주신다. 면에 그리지만 '덩어리감'이 나타나게 그려야 된다. 명암을 주어서 밝은 부분이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빛의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을 파악하고 어두운 부분과 더 어두운 부분, 가장 어두운 부분을 나누어 그라데이션하면 입체감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나는 초보라 따라하기에도 벅차서 잘 그리는 분 그림을 보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풀꽃 시인 나태주 (풀꽃,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1945년생 동갑내기 화가 임동식의 그림을 보고 시를 적은 책이다. 임동식 화가는 아내도, 자식이 없이 오롯이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수도승 같다고 표현한다. 이 장면에서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생각났다. 만화에 모든 것을 쏟아 넣은 인생...

 

한 남자가 양쪽 귀 부분에 나뭇잎 한장씩을 잡고 있는 그림 제목은 '산토끼'이다. 이에 시인이 '토끼야 놀자'는 시로 덧붙여 놓는 형식이다. 임동식 화가는 자연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한다. '고개 숙인 꽃과 마주한 인사', '고개 숙인 꽃과 별빛에 대한 인사'가 그러하다. '소년과 그의 오십년 후의 손'은 앳된 소년이 토끼를 잡고 있는데 거친 노인의 손이 보인다. 오십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을까. '귀농 당년', '농촌으로 온 사람들', 들깨밭 보이는 풍경'은 농사를 일구는 사람과 주변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가 권유한 풍경', '친구가 권유한 고목', '친구가 권유한 방흥리 노목', '친구가 서 있는 풍경', 친구가 권유한 풍경 - 일몰, 향나무, 죽림리 가는 길, 안영리 가는 길, 봄비 나리는 곰나루, 정군이 권유한 바람쐬는 날...' 등을 보면 이 화가는 좋은 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주고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단 장사 왕서방 - 고층매장, 소매장, 전원매장'에서는 색색깔의 비단과 풍경을 볼 수가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은 '원골마을 별빛 수선화 밭에서 아기 강아지 찾기'였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 수선화가 이렇게 빛나는 건지 궁금하다. 여러 시 중에선 나태주 시인의 '안부' (안부 :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고 싶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가 기억에 남는다. 낮에는 따뜻하고 밤이 되면 추운 날이다. 아직 가을이 남아 있다. 시간을 내어 근처를 걷거나 여행을 가기에도 적당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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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클래식 아고라 1
류성룡 지음, 장준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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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되기를 바란다. 이기는 방법, 성공의 기록, 합격의 묘수, 100억 만들기 등의 컨텐츠가 인기를 끈다. 반대로 어떻게 졌는지, 실패했는지에 관한 내용은 축소, 은폐되기 십상이다.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와 영화가 여러 번 나왔다. 올해에는 '한산'이 개봉했는데 비교적 좋은 흥행을 보여줬다. 나는 뒤늦게 영화관에서 가서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학익진을 펼쳐 적을 비교적 좁은 공간에 넣고 포위하여 공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적군도 당연히 그런 험한 진세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지만 미끼 역할을 하는 부대가 있어 쫓아 오게 하는 작전이 있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징비록과 녹후잡기(징비록 이후 추가할 만한 내용), 그리고 해설(징비록에 대한 현대적 설명, 인물 유성룡, 국제정세, 징비록을 읽는 이유) 이다. 전체 360여 페이지중 해설이 140페이지가 넘는다. 나는 '징비록'이란 책이 좀 지루한 면이 상당해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해설 부분은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에 중요 직책에 있었던 유성룡이 당시 있었던 일 중심, 시간순으로 객관적으로 적으려고 하고 있다. 조선이 일본군의 진격에 허망하게 단기간에 연속 패배하고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또다른 곳으로 피난을 떠나는 모습이 당황스럽고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순신의 승전에 대해서는 환호와 함께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1591년 통신사로 간 황윤길, 김성일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김성일은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나라 안팎이 모두 놀라 인심이 동요할 것이므로 해명했다"는 것이다. 유비무환의 자세가 부족했고 당파 싸움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나 싶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김성일에게 책임을 물어 경상 우병사로 임명해 경상도로 내려보낸다. 김성일은 책임을 느꼈는지 무관으로서도 역량을 발휘하여 승전하지만 2차 진주성 전투를 전후해 사망한다.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의 승리와 명군의 도움, 관군과 의병의 연합 등으로 일본군을 부산, 남해 등으로 몰아내고 일본과의 강화 협상에 나서지만 일본측의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 등으로 결렬되고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한다. 임금의 명을 속히 따르지 않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가 대패를 당하고 다시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남은 병력으로 일본군을 패퇴시킨다. 유성룡과 이순신은 유년시절 같은 동네에서 지내던 죽마고우였고 정읍 현감이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추천해 부임시키는 등 이순신의 능력과 곧은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곧바로 진격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고 군량미만 소비하는 명군을 보면서 지금 현실에서도 강대국들의 사이에 끼여 있는 상황에 만일 전쟁이 난다면 또 어떤 처지가 될까 생각하니 막막하다. 환율과 물가, 금리는 오르고 민생은 어려운데 정치는 어지럽다. 다만 K-무기의 폴란드 수출과 kf-21 전투기 개발 등은 위안거리로 삼을 만하다. 언제고 쉬울 때가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부침을 겪으면서도 해결책을 강구해 나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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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의 맛 - 유튜버 자취남이 300명의 집을 가보고 느낀 것들
자취남(정성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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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하고 퓨어한 유투버'로 즐겨보는 자취남 채널, 책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취남'과 또 하나의 채널 '유부남'까지 운영하고 있다. 외국과 지방까지 방문하여 집과 사람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내 집도 아닌데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 '미니멀리스트의 집', '일하는 집',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 비교'. '반려동물이 주인인 집' 등을 재미있게 보았다.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안방과 욕실, 냉장고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저자가 친밀감을 주기 때문에 초대하는 것 같다. '자취의 맛', 이 책의 글 또한 잘 읽힌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대화하듯이 써내려간다. 


재미 뿐 아니라 일과도 약간 관련이 있어 보게 되었는데 서울의 집값이 이렇게 비싸다는 것에 놀랐고 여러 홈 아이템에도 관심이 갔다. 내 경우에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사는곳이 시골이라서 집에 뭔가 자그마한 거라도 필요할 때 사러 나가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전원일기의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서 둘러보고 사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흰색 티셔츠를 샀는데 큰 문제없이 도착하는 걸 보고 쇼핑에 맛을 들인 듯 하다. 당장 필요하진 않더라도 언젠가 쓰임새가 있겠다 싶은 물건들을 사서 재고 하다가 요즘은 여러 번 생각해서 구매하는 편이다. 특히 음식은 유통일지가 지나 버릴 수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요리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5분-10분도 괜찮으니.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공간과 여유를 가지면 한다. 


부동산 상승론자와 하락론자의 의견이 분분하다.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마다 이 정도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런 여건이 마련되면 주택이든, 아파트든, 빌라든 하나 정도는 매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서울 집값이 너무 높아 근로소득으로는 절대 사지 못한다면 지방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노후에 이곳에서 지내면 좋겠다 싶은 시골 촌집이라도 있어서 피서지나 휴양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대출은 위험하니 작은 돈이라도 조금씩 모으면서 정리해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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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컬러링북 - 색연필로 누구나 쉽게 색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
MUZE(한은경) 지음 / 도서출판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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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보면서 그림을 따라 그리곤 했다. 잘 그리진 못했지만 연필과 종이로 간단히 윤곽을 잡고 색을 서서히 채워 넣다 보면 조금씩 완성이 되었다. 어느 정도 그린 것 같은데 비율이 안맞거나 색이 안 맞거나 음영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그리면 되니 문제 없다. 


이 책은 민화의 정의와 종류, 간단한 도구와 표현방법을 먼저 익히고 제목처럼 민화를 색칠할 수 있다. 왼쪽에는 컬러가이드가 있고 오른쪽에는 밑그림이 나와서 왼쪽 완성작을 보면서 채워넣으면 된다. 똑같이 해보기도 하고 다른 색을 넣어 개성있게 색칠해 볼 수도 있다. 종이가 물을 머금게 하여 표현을 이채롭게 할 수도 있다. 


모란도, 연꽃과 물총새, 맨드라미, 매화, 수국과 나비, 복사꽃, 국화, 목련과 새, 화훼도, 화조도, 양귀비, 동백, 초충도, 장미와 나비, 영모화, 등나무 꽃, 능소화 등이 나오니 칠해보고 싶은 것부터 하나씩 하면 된다. 내가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수국과 나비' 였다. 여러 꽃색도 칠해보고 흰색 부분이 많아 쉬워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화한 여러 꽃과 고양이와 나비, 새도 부분 부분 칠해 보았다. 


오래 전에 사서 모셔둔 160색 색연필을 꺼내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 눌려 있었는데 다행히 부서지진 않은 상태였다. 그라데이션을 연습 (직선으로 면 채우기, 앞부분에 힘을 주고 강약 조절, 색연필 심은 뾰족하게 깎기, 힘을 뺀 상태로 덧칠하기) 하고 각 민화 그림에 대한 의미도 읽어보았다. 


민화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무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서민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한국적인 그림'이다. 내가 있는 가게 옆에는 민화를 가르치는 분이 있어 방문해본 적이 있다. 여러 크기의 족자와 액자에 그려진 민화 그림은 정감있는 옛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오랜 경력으로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시고 학원생도 여럿 있는 듯 하다. 한번씩 만나면 인사하고 도움드릴 부분이 있으면 돕고 하면서 지낸다. 


오랜만에 해보는 컬러링북으로 쓸만하다고 볼 수 있다. 민화는 한편으로 진득하고 투명한 느낌이 드는 듯 하다. 판소리 '흥보가'를 틀어놓고 색칠하거나 시원한 그늘에서 수박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되지 않을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물흐르듯이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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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모험 - 미지의 타인과 낯선 무언가가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샤를 페팽 지음, 한수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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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예전에는 사람들이 적은 곳을 여행지로 삼았다면 요즘은 사람이 보이고 모이는 곳을 즐겨 찾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많은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 구경을 한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면 듣고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 등을 보곤 한다. 엄청난 미인이 있는 듯이 너무 티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별 생각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도 하나의 풍경이 될 수 있다. 

 

'만남이라는 모험', 제목이 좋다.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모험이다. 7시에 일어나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보게 되는 우연의 일치는 운명을 좌우하지 못한다. 그저 그런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그친다. 거기서 누군가 말을 건다거나 관심을 표시하는 것으로 뭔가가 시작된다. 당장 하지 않더라도 몇 번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실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아주 바쁘지도 않고 딴 생각에 열중하지 않는 열린 상태여야 할 것이다.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고 만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첫째, 만남으로 변화된 모습들(화가 피카소와 시인 엘리아르, 소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의 아델과 엠마, 18세기 에밀리 뒤 샤틀레와 볼테르, 이 책의 저자와 고등학생 일때의 철학 선생님, 둘째, 만남을 갖기 위해서 할 행동들 (자기의 틀 깨기, 아무 기대 없이 열어두기,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기), 셋째, 만남의 여러 해석들 (인류학적, 존재론적, 종교적, 정신분석적, 변증법적 해석)을 살펴 볼 수 있다.

 

친밀감으로 고백한다는 건 누군가를 잘 알고 다독임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다고 치자. 다시는 만나지 않을 외국인에게 이런 저런 속내를 얘기하고 맘 아팠던 경험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작스레 신뢰가 생겼다거나 뭔가 통한 게 있을 수도 있고 그 장소나 그날의 분위기에 따를 수도 있겠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을 사람에게, 아니면 자연 혹은 애완 동물에게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꽤 괜찮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모든 부정적인 예감들은 돌연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스스로 억제하고 있었던 것들이 용감하게 고개를 들고, 우리가 지녔던 두려움이 증발해 버리기도 하며, 우리를 억누르던 불안감이 흩어져 버린다. 때때로 이런 변화는 거의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이렇게 새로이 피어나는 자유의 감정이 바로, 만남을 의미하는 하나의 징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부터 우리는 어떤 모험을 감행해야겠다는 욕망을 품는다. 우리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거나 더 이상 유익하지도, 즐겁지도 않다고 여겨질 때 이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뭔가 안맞고 어긋나고 인연이 아닌걸로 여겨질 때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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