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란 맘다니 - 34살 민주사회주의자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시장이 되었나?
시어도어 함 지음, 박상주 감수, 김재서 옮김 / 예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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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트럼프가 조란 맘다니를 급진적 사회주의자로 비판했다는 기사 내용을 접하면서 알게 된 인물이다. 자본주의 중심 도시 뉴욕에서 100년 만의 최연소 시장이 탄생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과정이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조란 맘다니는 당선 가능성이 낮게 평가되던 인물이었다. 인도계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이며 무슬림이고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주의회 의원으로, 기존 정치 권력 구조에서 주변부에 위치해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인스타그램, 틱톡, 엑스 등을 활용해 메시지를 확산시키며 대중에게 어필했고, 자원봉사자는 소수에서 10만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선거 핵심 의제는 뉴욕의 생활비 문제였다. 임대료 동결, 무료 대중교통, 시 운영 슈퍼마켓, 무상보육 등 시민의 생계와 직접 연결된 정책이 중심이었다.

조란은 다짐했다. "뉴욕은 앞으로도 이민자의 도시로 남을 것"이라면서, "오늘밤부터 이 도시는 이민자가 이끌게 됩니다 라고 선언했다.(p401)

이 발언은 뉴욕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존 정치 질서의 변화까지 상징하는 말로 들린다.

뉴욕은 오랫동안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인데, 맘다니는 자신 역시 이민자 배경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 선언에는 이민자와 소수자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도시의 중심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주류로 여겨졌던 백인 중심,기득권 중심 정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은 채 뉴욕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점에서 뉴욕 시민들이 기존 정치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적인 비판 속에서도 그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무슬림, 이민자, 남아시아계 배경을 공개적으로 유지하며 정치 활동을 했다. 선거 과정에서 주요 언론과 기득권 정치 세력의 공격이 있었지만, 캠페인은 시민 참여 기반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뉴욕시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하며 당선한다.

이 과정을 보면 선거 전략이 이념 중심에서 생활 문제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복잡한 정치 논쟁보다 주거비, 교통비, 보육비 같은 직접적 체감 영역이 핵심 지지층을 빠르게 결집시키고 무당층의 관심까지 끌어들이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 메시지 전달과 자원봉사 조직의 대규모 확장은 기존 정치 캠페인 구조와 다른 흐름을 형성했다. 언론 비판과 기득권 정치의 견제 역시 선거 구도의 긴장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동했다.

우리나라 정치 환경과도 유사한 지점이 보인다. 생활비, 주거 문제, 복지 의제가 선거 핵심 이슈로 부상하는 흐름은 최근 국내 선거에서도 반복된다. 젊은 세대의 SNS 기반 정치 참여 확대, 조직 중심에서 개인 참여 중심으로 이동하는 선거 구조 변화 역시 맘다니 캠페인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조란 맘다니의 철학이 체계적인 이론 형태로 설명되기보다는 선거 과정 전반에서 드러나는 행동 원리와 정치 운영 방식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정치 메시지의 단순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복잡한 정책 설명보다 생활비 문제처럼 하나의 명확한 의제로 집중하는 방식이 선거 흐름을 바꾸는 핵심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또 디지털 기반 확산 전략이다. 인스타그램, 틱톡, 엑스를 활용해 전통 언론 구조를 우회하고 직접 유권자와 연결되는 방식도 중요하다. 34살 민주사회주의자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시장이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은 그의 정치 운영 방식과 정치적 성과를 만든 핵심 요소를 구조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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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시작하는 돈 공부 - 금융 문맹 탈출을 위한 맞춤형 재테크 수업
제이크 쿠지노 지음, 도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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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요즘 주식시장을 보면 반도체주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FOMO를 느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불안에 휩쓸려 판단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재테크 FOMO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 책은 지금 시점에서 꼭 읽어봐야 한다.

난생처음 시작하는 돈 공부는 재테크를 생활 시스템으로 인지하게 하는 입문서다. 이 책의 수준은 완전 초보를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데 자극을 준다. 금융 용어 또한 쉽게 설명하고 있고, 왜 사람들이 돈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하는지 그 구조를 보여준다.

책의 핵심은 두 단계로 나뉜다. 1부에서는 돈에 대한 태도와 기초 체력에 관한 수업이다. 저자는 재테크 FOMO라는 심리적 압박을 중요하게 다룬다. 남들이 투자로 수익을 냈다는 소식에 휩쓸려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자산 형성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돈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부자는 지루하게 돈을 번다는 관점은 단기 수익 중심 사고를 경계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 투자, 분산 투자, ETF 같은 기본 개념에 대한 이론 설명보다는 왜 그런 선택이 합리적인지 설명한다. 또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더 잘 쓰는 법도 다룬다.

방관자가 승리하는 유일한 시장 이 파트에서는 투자에서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성과를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반응하며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지만, 이런 행동은 감정에 휘둘린 판단으로 이어지기 쉬워 결과적으로 수익률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시장을 예측하기 보다 전체 시장에 분산 투자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전략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한다. 특히 ETF와 인덱스 펀드를 활용해 시장 전체에 투자하고, 불필요한 거래를 줄이는 방식이 개인 투자자에게 적합한 방법임을 알려준다. 방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미 세운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며 시간을 견디는 투자 자세를 의미한다.

이 내용은 투자하는 나에게도 가장 와닿는 태도였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시장의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는 태도가 결국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투자 태도를 점검해보게 되었다.



2부는 실행 단계에 가까운 수업이다. 실제 실행 중심의 재무 관리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산 수립과 소비 통제, 부채 관리, 투자 습관 형성, 은퇴 설계로 단계적 구조를 설명한다. 월 단위로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는 방식과 함께, 돈의 흐름을 자동화하여 관리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소득을 소비·저축·투자로 나누는 50/30/20 원칙을 통해 기본적인 자금 배분 기준을 설명하며 개인이 자신의 재정 구조를 점검해보길 추천한다.

부채와 관련해서는 빚을 먼저 갚을지 투자부터 시작할지에 대한 판단 후, 부채를 정리하는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준도 알려준다. 은퇴 설계 부분에서는 4% 인출 법칙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자산 활용 방식을 설명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과 같은 제도를 활용해 노후 재정을 준비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실제 생활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재무 관리의 흐름을 단계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산 관리부터 은퇴 설계까지 이어지는 구조라서 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재테크를 미루는 시대는 더이상 아니다. 재테크를 모르기 때문에 돈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돈의 흐름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설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동화된 투자, 반복 가능한 예산 관리,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난이도는 금융 문맹을 벗어나려는 독자에게 적절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투자 고급 전략이나 시장 분석보다는 재정 관리의 표준 프로세스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기본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돈 관리의 기준을 세우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되는 실천형 재테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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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해킹 - 소비심리를 지배하는 아주 작은 행동과학
리처드 쇼튼.마이클아론 플리커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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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핵심 저자 리처드 쇼튼은 행동과학 마케팅 분야에서 이미 검증된 이름이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어떻게 팔지 답답할 때 읽는 마케팅 책>의 연장선에서 나온 책이며, 미국 브랜딩 전문가 마이클아론 플리커와 함께 썼다. 플리커는 미국의 굵직한 브랜드들과 협업한 인물로, 광고 기술 비즈니스 컨설팅에 탁월한 인물이다.이 책은 브랜드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고 그 안에 행동과학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역으로 추척하는 구조이다.

시중에 마케팅 책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소비자 자신조차 왜 사는지 모른다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합리적으로 소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격이 높을수록 더 맛있다고 느끼고, 할인보다는 무료에 더 끌리고,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소비자를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판단구조 자체가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마케팅을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이 책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그동안 믿어온 좋은 메시지와 설득의 기술이 생각보다 별 효과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 불편함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각 챕터는 세계적인 브랜드 하나에 초점을 두고 심리를 해부한다. 파이브가이즈에서 시작해 크래프트 맥앤치즈, 스타벅스, 스니커즈, 애플, 아마존, 기네스, 리퀴드 데스, 다이슨, 페이스북, KFC, 프링글스까지 이어진다.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좋은 제품을 만든 것 외에도 소비자의 무의식을 정밀하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가 마케터인지 소비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엉덩방아 효과란 엉덩방아를 찧은 것처럼 실수를 보였을 때 호감이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를 입증하는 과학적인 증거로 하버드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의 고전적 실험이 있다.(p188)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더 가치 있게 느낀다는 인간의 인지 편향이다. 예를 들어, 오래 줄 서서 산 음식은 실제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고, 조립하거나 직접 만든 제품이 더 애착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기네스는 맥주를 따르는 데 2분이 걸린다는 단점을 오히려 숙성된 기다림이라는 서사로 바꿔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었다. 기다림이라는 불편을 넣었지만, 소비자는 그 기다림 때문에 오히려 더 프리미엄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다이슨은 제품 내부의 기술과 노력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일한 티를 내는 전략으로 신뢰를 쌓았다. 이때 소비자는 보이는 복잡함과 정교함을 근거로 뛰어난 제품일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사람은 결과를 직접 측정하기 어려을 떄, 그 뒤에 들어간 노력과 과정의 흔적을 보고 가치를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심리는 노력의 환상이라는 편향때문이다. 나 역시 다이슨 청소기를 사용하면서 투명 먼지통을 통해 빨려 들어가는 먼지를 직접 확인할 때마다, 청소가 잘 되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좋은 제품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KFC는 레시피의 비밀을 만들고 퍼뜨려 소비자의 상상력을 마케팅 도구로 삼았다. 정보 격차 이론(사람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면 그 간극을 채우려는 심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과 자이가르닉 효과(사람은 완성된 것보다, 미완성된 것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신경 쓴다)가 동시에 작동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 모두가 행동과학의 해석으로 설명된다.

나는 그동안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제 판단은 그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잘 설계된 환경과 심리적 장치의 결과에 가깝다. 마인드 해킹이란, 소비자를 속이거나 조종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읽는 내내 익숙한 브랜드 사례들을 통해 '아, 그래서 내가 샀구나'라는 생각이 반복되었고,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행동과학을 풀어내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탁월한 마케팅이란 결국 사람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사업을 준비하는 이들, 나는 왜 이걸 샀을까라는 질문을 한 번이라도 해본 모든 소비자라면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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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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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사회과교육과 교수인 이동민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리학자다. 미국지리교육협회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지리학의 눈으로 역사를 풀어온 다수의 저서들을 꾸준히 내왔다. 이번 책은 그 작업의 연장선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를 중심에 놓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이웃과 500년에 걸쳐 얽혀온 분쟁의 구조를 다룬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북한의 핵 도발, 타이완해협의 긴장이 매일 뉴스를 채우는 요즘, 이 모든 것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 이 전쟁의 배경을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아니라, 16세기 전 지구적 은 유통에서 찾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에서 쏟아진 은이 세계 교역의 혈액이 되면서, 은 산지로 떠오른 일본은 단숨에 동아시아 경제 지형에서 무게감이 달라진 나라가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침공은 그 팽창한 경제력과 군사력이 내부에서 터지기 전에 출구를 찾은 결과였다. 이렇게 읽으면, 임진왜란은 민족 간 원한의 시작이 아니라 글로벌 자원 질서가 동아시아를 흔든 최초의 충격파가 된다.

이 시각은 이후 챕터들을 읽는 내내 일관되게 유지된다. 17세기 소빙기가 명나라의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결국 청나라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외부 충격을 내면화하여 독자적 정체성을 키워나간 과정, 에도막부가 나가사키만의 인공섬 데지마를 통해 선교는 차단하면서도 교역은 허용하는 방식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전략. 이 모두가 땅의 조건과 기후, 그리고 교역로의 변화로 설명된다. 기후와 지리가 인간의 선택을 얼마나 좁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외압을 받은 한중일 세 나라가 왜 전혀 다른 근대화의 경로를 걸었는가. 저자는 지리적 조건이 핵심 변수로 생각한다. 사방이 바다로 열린 일본은 외부 자극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통제할 여지가 있었다. 광대한 내륙을 가진 청나라는 변방의 위협을 내부로 흡수하느라 해양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인 한반도는 어느 쪽의 논리도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취약함을 안고 있었다. 아편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이 틀로 읽으면, 각각의 전쟁은 우연한 충돌이 아니라 지리적 구조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이 각각의 사건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연쇄적 구조로 서술한다. 일본 군부가 중국 본토에서 확전을 거듭하자 미국·영국·중국·네덜란드 네 나라가 ABCD 포위망을 형성해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일본은 석유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이 봉쇄는 군사 작전 자체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 압박이었다. 자원 고갈에 몰린 일본이 택한 출구가 진주만 기습이었고, 그것이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만약 이 봉쇄가 없었다면, 혹은 일본이 중국 본토 확전을 멈췄다면 태평양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세력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면서 그어진 38선이 결국 전쟁의 경계선이 되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냉전이라는 세계적 대립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전쟁의 방아쇠가 어디서 당겨졌느냐보다, 왜 그 방아쇠가 거기에 있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묻게 된다.

냉전이 끝난 뒤 한중일은 경제적으로 긴밀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러나 타이완해협, 독도, 센카쿠열도 등 영토 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유라시아 내륙과 인도양을 잇는 새로운 지정학적 공간을 구축하며 러시아, 북한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반도와 타이완의 긴장은 높아지고 있다. 국지적 갈등이 세계적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저자의 경고를 보면서, 지금 뉴스에서 흘려듣던 동북아 긴장이 새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고집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어느 나라도 피해자나 가해자로 고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중일 각각의 선택이 어떤 지리적 조건과 자원 현실 위에 있는지를 추적할 뿐이다. 청나라 조약항 개항 순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함대 이동 경로, 1920년대 중국 군벌 분포도 같은 지도들이 본문 곳곳에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중일 세계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한반도의 미래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이 땅의 위치는 50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강대국 경쟁의 한복판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라, 그 구조를 정확히 읽는 이다. 한중일 관계를 민족 감정이나 뉴스 속 단편적인 갈등으로만 바라봐 왔거나, 혹은 동북아 정세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반복적인지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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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밀도 - 대화가 깊어지고 관계가 단단해지는 소통의 기술 7
김윤나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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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많다고 해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더 외로워진다고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소통 코치로 20년간 현장을 누빈 저자 김윤나는 흥미로운 진단을 한다. 현대의 대화에서 실종된 것은 어휘력도, 공감 능력도 아닌 질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고, 잘 될거라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한다. 위로가 오가지 않고 오히려 상대는 혼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단 한마디로 내 사람이 생기는 고밀도 대화법은 화려한 말솜씨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역시 관계를 만드는 말은 꾸밈이 아니라 밀도에서 완성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상대의 짧은 질문 하나가, 수십 마디의 위로보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닿는다. 질문은 상대에게 당신이 궁금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바쁜 시대일수록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저자는 1장에서 우리가 얼마나 나 중심의 말하기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짚으며, 상대 중심의 질문하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질문은 상대를 향한 깊은 존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자리에서 침묵하는 사람이 오히려 눈에 띄듯, 말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절한 순간에 질문을 찾아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주목받는다. 성숙한 사람들은 질문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그 질문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빛나게 한다. 결국 좋은 질문은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 모두를 성장시키는 힘을 가진다.

우리가 왜 말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공감의 말들이 실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저자는 사례를 통해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짚어낸다. 읽으면서 과거의 대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말하기 바쁜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어 2장에서는 실천 가능한 7가지 질문 유형을 소개한다. 호기심 질문, 후속 질문, 에너지 질문, 시제 질문, 깊이와 높이 질문, G.R.O.W. 질문, 진짜 질문이 그것이다. 각각의 질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구체적인 대화 예시와 함께 풀어낸다. 특히 시제 질문은 인상적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축에 따라 질문의 방향을 달리하면, 같은 주제라도 대화의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발견은 실용적이면서도 꽤 설득력이 있다.



시제 질문법은 상대가 충실하게 쌓아왔을 시간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과거를 살아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또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존재로서 누군가를 바라봐야 비로소 가능한 질문이기에 그렇다. 과거나 미래를 궁금해하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방에게 관심과 응원으로 전해진다. (p129)

마지막 장에서는 기술보다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전념하기, 타당화하기, 호응하기, 인정하기, 기다리기. 이 다섯 가지 태도는 질문의 기술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을 건드린다. 질문이란 결국 상대를 향해 온전히 열려 있는 상태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질문이라도 답을 듣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에게서 나온다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심문에 가까울 것이다.

저자는 20년 넘게 코칭과 강연 현장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변화시켜온 소통 전문가다. 수많은 실제 대화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통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그의 문장에는 현장감이 느껴지면서 읽는 내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책 전반에 걸쳐 '묻는 사람'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 스스로가 돌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조용히 건네는 방식으로 글을 이끌어간다. 말이 아니라 질문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 이 책을 통해 내가 그린 김윤나라는 저자의 인상이다.

이 책이 유사한 소통 도서들과 다른 지점은, 말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7가지 질문 유형이 독자에 따라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상황의 맥락과 관계의 깊이에 따라 같은 질문도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G.R.O.W. 질문의 경우, 단계를 의식하며 대화하다 보면 오히려 대화가 공식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팀을 이끄는 리더나 관리자, 자주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팀원의 속마음을 모른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를 위로하려다 오히려 상처를 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다만 이 책을 기술 습득의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내가 평소 대화에서 얼마나 상대를 향해 있었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태도로 읽으면 좋다. 질문은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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