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쓰는 몸을 만드는 걷기와 달리기 - 부상 없이, 지치지 않고 두 다리로 내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법
김병곤 지음 / 웨일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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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나는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주 3회 정도 러닝과 근력 운동을 하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어 늘 '운동은 해야 하니까 한다'는 의무감에 머물러 있었다.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내 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지금의 방식이 맞는 방향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이 책은 그런 막연함을 꽤 구체적으로 정리해 준다. 걷기와 달리기는 단순한 유산소 운동이라고 보기에는 몸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심혈관과 대사 건강을 직접적으로 조절하는 핵심 습관임을 알려준다. 특히 보폭, 속도, 리듬 같은 요소들은 몸의 효율과 부담을 동시에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몸은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고, 걷기와 달리기는 그 설계를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성은 단계적으로 이어진다. 첫 단계는 걷기 능력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4주 프로그램이다. 하루 30분, 주 3회라는 구조이지만, 반복을 통해 몸을 운동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운동 강도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같은 움직임이라도 심박과 호흡, 피로 수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8주 프로그램을 통해 강도를 조절하며 몸의 반응을 학습하게 한다.

세 번째 단계는 러닝으로 확장되며, 이 구간에서는 퍼포먼스보다 부상 예방이 더 중요한 기준임을 강조한다. 근력 강화, 특히 하체 안정성과 코어의 사용이 강조되며, 달리기를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만들기 위한 구조적 접근이 중요해진다.

트레이닝 드릴은 걷기와 달리기 동작을 하나의 완성된 운동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포함된 기본 움직임 요소를 분해해 반복적으로 익히는 훈련 방식이다.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단순히 거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보폭의 길이와 리듬, 발이 지면에 닿는 위치, 상체의 안정성, 팔의 흔들림과 호흡 패턴 같은 요소를 각각 분리해 정확하게 체화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세분화된 동작을 반복하면 몸은 불필요한 긴장을 줄이고 효율적인 움직임 패턴을 학습하게 된다. 결국 트레이닝 드릴은 운동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강도 훈련이라기보다, 잘못된 움직임을 교정하고 몸의 사용 방식을 재정렬하는 기초 단계이며, 걷기와 달리기를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과정이다.

이 내용을 접하고 나니 지금까지의 내 운동 방식이 떠올랐다.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주 3회 러닝과 근력 운동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속도나 시간만 채우는 데 집중해왔던 것 같다. 이제는 무작정 뛰기보다 보폭을 조금 줄이고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해보거나, 발이 어디에 닿는지 의식하며 걷고 달리는 연습부터 해보고 싶어진다. 근력 운동 역시 횟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과 안정성을 느끼는 방향으로 바꿔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은 요소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는 과정이 쌓인다면, 지금의 운동은 점점 더 내 몸에 맞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운동의 목적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부상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이며, 운동은 강도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루틴도 이 책의 기준을 적용하면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러닝은 속도보다 호흡과 안정성에 집중하고, 근력 운동은 반복 횟수보다 어떤 근육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의식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운동은 루틴도 중요하지만, 몸을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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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 - 108개의 짧으나 깊은 이야기와 60개의 가슴에 새겨지는 말들
김정빈 지음 / 새로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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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책은 분명 취지는 좋다. 짧은 글로 바쁜 일상 속에 사유의 시간을 만들어주겠다는 방향도 지금 시대와 잘 맞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펼치기 전, 이미 마음이 조금 멀어졌다.

우선 형태부터가 그렇다. 북 스탠드 일체형 커버라는 아이디어는 흥미롭지만, 실제로는 호지캐스로 고정된 구조 때문에 표지가 쉽게 상하고, 책을 다루는 감각도 썩 편하지 않았다. '언제든 펼쳐두고 보라'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물성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이었다.

구성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108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나 맥락보다는 좋은 문장을 모아 묶어놓은 듯한 인상이 강하다. 한 편 한 편은 나쁘지 않지만, 읽다 보면 책을 '읽는다'기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문장들을 다시 소비하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조금 더 치밀한 편집이나 주제의식이 있었더라면 훨씬 깊어질 수 있었을 텐데 성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짧은 문장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유효하고, 때때로 마음을 붙잡는 문장도 있다. 자극적인 정보 대신, 생각을 머물게 하는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책이라는 형태로 묶였을 때의 밀도와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시선의 방향과, 그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마음까지 건드려준다. 그래서 읽을거리를 넘어 짧은 사유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 하나로 행복과 불행을 오간다. 외부 환경보다 내 안의 상태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남을 이기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스리는 삶. 더 가지려 애쓰기보다 지금을 받아들이고 만족할 줄 아는 태도.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기준을 다시 떠올려본다.

결국 이 책은 좋은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둔 노트에 가깝다. 그 조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소 평면적인 읽기로 남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기대했던 깊이보다는 가볍게 스쳐가는 인상으로 남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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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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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한 권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록이자, 시대를 견딘 예술가들의 태도를 느낄 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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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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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제목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생업이 아니라 버티는 방식,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나는 화가다. 그래서 그린다'라는 문장이 더 자연스럽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그렸다'라고 비틀었다. '그럼에도'라는 접속에서 무언가 조건들이 앞에 놓여 있다는 전제가 암시된다. 가난, 식민지 현실, 전쟁, 사회적 억압, 예술에 대한 낮은 인식 같은 요소들. 그 모든 상황을 전제로 깔고 '그릴 수 없는 조건에서도 결국 그렸다'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 제목은 화가들의 삶과 태도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를 지탱하는 방식이 곧 그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격변의 역사 속에서 예술은 생존과 표현 사이를 오가며, 시대를 견디는 방식이 되곤 했다. 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가 40인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림이 어떻게 시대와 맞물려 생성되고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을 자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작가들이 있다. 김환기, 유영국, 김기창, 이응노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들의 작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색과 형태,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기운이 오래 남는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도 그 여운이 이어졌다. 이미 익숙한 이름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화가들까지 함께 등장하면서, 각기 다른 삶의 궤적과 작업 방식이 느껴진다.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전쟁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화가들은 식민지 상황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했고, 해방 이후에는 또 다른 혼란을 통과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서양화와 동양화, 전통과 현대, 민족성과 보편성 사이의 긴장이 작품에 녹아있다. 특정 화풍이나 사조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응답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표현이 서로 다르고, 그 차이가 오히려 한국 근대미술의 폭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 책의 특징은 작가 한 사람, 한 작품에 집중하면서도 그것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살핀다. 왜 그런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특히 낯선 이름의 화가들 역시 생애와 작업 배경이 함께 서술되어 작품에 대한 접근 장벽이 낮아진다.


김기창의 초기작 <정청>은 근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던 이상적인 부르주아 가정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화면 속 젊은 여성은 작가가 청년 시절 연정을 품었던, '소저'라는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며, 그 곁에 앉아 있는 소녀는 그의 누이동생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인도 계보를 잇되, 당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서양화의 재현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데생과 섬세한 채색이 결합되며, 이른바 신일본화 경향 속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양식은 당시 식민지 동양 화단을 지배하던 흐름이었고, 그 중심에 김기창이 있었다.


김기창은 어린 시절 열병으로 청각을 잃었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치열한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결국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며 당대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한다. <정청>은 개인적 서사와 시대적 흐름이 교차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평온한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당대 사람들이 바라던 삶의 형태가 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한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당대가 그려낸 삶의 형상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의 환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은 끝내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생활의 어려움, 사회적 혼란, 개인적 고통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간 시간은 곧 인내의 기록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화려한 기교보다 삶을 통과한 흔적이 남아 있고, 지금까지 감각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저자 박영택은 미술평론가로서 오랜 시간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해 온 인물이다. 전시 기획과 비평 활동을 병행하며, 작품과 작가를 균형 있게 조명하는 글쓰기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사실에 근거한 서술을 통해 각 화가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덕분에 특정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감상을 확장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한 권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록이자, 시대를 견딘 예술가들의 태도를 느낄 수 시간이다.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예술이 지닌 지속성을 증명한다. 화가들의 삶과 작품이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 그 시간을 그림으로 따라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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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 - 지구 생물부터 우주 행성까지, 세상을 해석하는 양자역학 이야기 최소한의 지식 4
김상협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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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최근 국내 언론은 양자컴퓨팅 기술이 연구 중심 단계에서 산업 경쟁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허 동향을 분석한 기사에서는 양자 기술이 기초 연구 영역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확장된 응용 분야에서 훨씬 빠른 성장륙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특히 신약 개발과 금융 시뮬레이션, 보안 체계 같은 실사용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강조되면서 한국 역시 양자컴퓨팅 특허 증가 속도에서 세계 상위권에 위치하며 국가 차원의 전략 사업으로 편입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몇 달 전 이런 기사를 읽었고, 기회가 된다면 양자역학 관련 책을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보도는 양자역학이 더 이상 물리학 내부의 이론 체계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시 세계의 법칙이 정보 처리 구조와 산업 설계 방식으로 직접 연결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은 기술적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양자역학은 서로 분리되어 보이던 과학 영역들을 하나의 구조로 재배열하는 언어처럼 작동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 책은 그 지점을 분광학에서 출발해 화학, 생물학, 천문학, 그리고 기술 영역으로 확장하며 따라간다.

분광학에서는 태양빛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프라운호퍼선이 핵심 단서로 제시된다. 이 검은 선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원자의 내부 구조가 드러나고, 전자가 연속적인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에너지 준위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자는 상태 간 전이를 통해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며, 이 과정이 양자 도약으로 설명된다.

화학에서는 벤젠 구조가 중요한 사례로 등장한다. 이 책은 결합을 고정된 선으로 보지 않고, 전자가 공간에 퍼져 있는 확률적인 상태로 설명한다. 전자구름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자를 하나의 그림처럼 고정해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처음에는 입자가 정해진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자가 넓은 공간에 퍼져 있어 전체적으로 분자를 이루는 모습이 달라진다. 그래서 분자 구조도 하나의 딱 떨어진 모양이라기보다, 여러 모습이 겹쳐 있는 상태로 이해된다. 벤젠의 결합은 특정한 선으로 나뉘지 않고, 전자가 분자 전체에 퍼져 있는 형태로 설명된다.

화학에서 배웠던 결합과 구조는 머릿속에 꽤 또렷한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원자 사이를 잇는 선, 일정한 모양으로 고정된 분자 구조, 그렇게 정리된 세계가 익숙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전자는 점처럼 박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설명이 따라오면서, 결합이라는 개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벤젠 구조를 다시 떠올리면, 선으로 단정되던 결합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구조가 아니고 넓게 퍼진 전자 분포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설명이 낯설면서도 설득력 있다. 익숙했던 화학의 그림 위에 다른 층이 하나 더 겹쳐지는 느낌이다.

기술 영역에서는 큐비트를 기반으로 한 양자 컴퓨터가 중심 개념으로 등장한다. 0과 1로 구성된 고전적 정보 체계를 넘어 중첩 상태를 활용하는 계산 구조가 설명된다. 양자 암호 통신과 양자 센서는 이러한 원리를 실제 기술로 확장한 결과로 제시되며, 물리학적 개념이 정보 기술 인프라로 직접 연결되는 점을 보여준다.

이 설명을 따라가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은, 양자역학이 더 이상 미시 세계의 이상한 규칙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0과 1로 딱 나뉘어 움직이던 정보의 세계가,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개념 위로 확장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큐비트가 중첩 상태를 가진다는 설명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하나의 답을 정해 놓고 계산을 진행하는 방식 자체가 전혀 다른 구조로 바뀌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계산의 출발점이 하나로 고정된 값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라는 점에서, 기존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양자 암호 통신이나 양자 센서 같은 기술도 결국 같은 원리 위에 놓여 있었다. 정보를 숨기거나 측정하는 방식이 기존과 달라지는 이유가, 물리학의 기본 규칙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점이 연결되면서,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양자역학이 실제 기술 구조를 바꾸는 기반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각 장은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 화자들의 대화로 문을 연다. 개념을 바로 정의하기보다 인물 간의 문답이나 상황극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장 전체의 흐름을 끌어가는 방식이다.

또한 각 장은 서로 독립된 설명으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과학 영역이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저자는 수식 중심의 전개보다 사례 중심의 서술을 선택한다. 일상적 장면과 과학사의 구체적 사례가 개념 설명을 이끌어간다. 막연하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졌던 양자역학의 개념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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