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기술 - 말 한마디 안 해도 원하는 것을 얻는 듣기의 힘
야마다 하루 지음, 정지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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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대화 자리에서 요점을 놓쳐 난감해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고 같은 말을 들었는데, 정작 대화가 끝난 뒤에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반응을 하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또 어떤 지인들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의견부터 덧붙이며 대화를 이어간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오히려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정작 들어야 할 순간에 끼어드는 장면은 익숙하다. 나 역시 그런 대화의 흐름 속에서 잘 듣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듣고 있지 않았다는 자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말하기보다 듣기 자체를 다루는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이 책은 듣기를 태도나 예의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듣기 지능은 정보 수용은 물론이고 관계를 설계하고 삶의 방향을 조율하는 핵심 역량으로 설명된다. 말 잘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이지만, 실제로 신뢰를 얻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소통이 화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어온 기존 관점을 뒤집고, 대화의 주도권이 청자에게도 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듣는 방식이 달라지면 대화의 결과 자체가 달라진다는 주장에 공감이 되었다.

듣기가 얼마나 능동적인 행위인가? 우리는 흔히 듣기를 수동적 태도로 오해하지만, 저자는 듣기가 오히려 고도의 판단과 선택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불필요한 소음을 걸러내고, 말의 속도와 의도를 구분하며, 언어 뒤에 숨은 감정과 맥락을 읽어내는 과정이 모두 듣기 지능의 영역에 속한다. 이 능력이 높아질수록 오해는 줄어들고, 관계는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설명은 일상 속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정보적 경청에서 제시하는 빠른 듣기와 느린 듣기의 구분이다. 우리는 흔히 모든 말을 동일한 속도로 듣지만, 저자는 정보가 필요한 순간에는 빠르게 핵심을 잡고, 상대의 의도나 감정을 읽어야 할 때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토끼와 거북이에 비유한 설명은 직관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다. 대화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바로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비언어적 경청에 대한 부분이다. 얼굴 표정, 눈맞춤, 미소, 침묵 같은 요소들이 단순한 부수적 신호가 아니라, 말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화상 회의나 디지털 소통 환경에서 비언어적 요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 대목은 지금의 현실과 잘 맞아떨어졌다. 상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곧 상대의 말을 듣는 행위라는 관점은, 말 중심으로만 보던 대화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바꾸고 싶다고 느낀 부분은 대화에서의 조급함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결론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반응을 준비하던 습관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의식적으로 듣는 연습을 한다면 관계에서 불필요한 긴장과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경청형 화자가 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아보고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듣기 지능이라는 개념이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만큼, 실제 일상에서 단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습법이 조금 더 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남는다. 이론과 사례는 충분하지만, 독자 스스로 점검하고 반복 연습할 수 있는 실천 과제가 더 있었다면 활용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다.

말이 넘쳐나는 초연결 시대에, 진짜 경쟁력은 말을 줄이고 듣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대화가 자주 어긋난다고 느끼는 사람, 관계에서 반복되는 오해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듣기의 방향부터 점검해보는 경험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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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과몰입하는 좌뇌, 침묵하는 우뇌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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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론서라기보다는 생각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법을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읽고 나면 뇌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보다는, 최소한 뇌의 해석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여지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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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과몰입하는 좌뇌, 침묵하는 우뇌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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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어째서 행복하지 못한가?

생각과 행위는 99.9퍼센트는 자신을 위한 것이나,

정작 자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뇌가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마음대로 멈추지 않고, 알면서도 같은 판단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 간극이 늘 궁금했다. 뇌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뇌과학은 늘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영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는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KAIST 뇌과학자 김대수 교수의 추천 도서라는 점도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좌뇌와 우뇌라는 익숙한 개념을 삶의 고통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분리뇌 환자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례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진짜 현실이라고 믿는 많은 생각과 해석이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좌뇌는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고, 판단하고, 설명하려는 특성을 지닌다. 문제는 좌뇌가 만들어 낸 해석을 하나의 생각으로 넘기지 못하고, 그것을 곧바로 나의 진짜 모습이나 현실로 믿어 버릴 때다. 남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추측,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열등감, 굳어 버린 신념들이 여기서 비롯된다는 설명은 일상 경험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반면 우뇌는 언어로 설명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직감, 전체적인 맥락 이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알 것 같은 느낌이 여기에 해당한다. 저자는 우뇌를 단순히 무의식으로 치부하지 않고 하나의 의식 형태로 설명한다. 책에서는 좌뇌의 끊임없는 해석과 판단이 약해질 때, 감사와 평온, 타인과의 연결감을 경험하는 상태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식 상태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개념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신경과학과 동양 사상을 함께 언급하지만, 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뇌의 작동 원리다. 불교적 개념 역시 영적 주장보다는 설명을 돕는 비교 대상으로 사용된다.

이 책은 뇌에 대한 전문 지식을 더 습득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복잡한 의학 이론이나 신경 해부학 대신, 좌뇌와 우뇌의 작동 방식을 일상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저자는 좌뇌와 우뇌 중 어느 한쪽이 더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칠 때 삶이 어떻게 불균형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침보다, 지금 나는 어떤 뇌의 해석에 더 끌려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마지막 장인 '뇌를 알고 난 후의 세계'는 앞선 논의를 삶의 태도로 정리하는 장이다. 저자는 좌뇌를 없애거나 판단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좌뇌의 해석과 이야기는 뇌의 기능임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도구라는 관점이다.

이 장에서 제시되는 세 가지 삶의 전략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생각에 끌려가며 살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인식한 채 선택하며 살 것인가. 좌뇌가 만들어 내는 해석을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일 때, 불안과 자기비판은 쉽게 커진다. 반대로 좌뇌를 적대시하거나 우뇌만을 이상화하는 태도 역시 또 다른 극단일 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 중간 지점, 즉 좌뇌의 해석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도 삶에 필요한 사고 도구로 활용하는 균형의 태도다.

이 책은 이론서라기보다는 생각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법을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읽고 나면 뇌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보다는, 최소한 뇌의 해석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여지는 생긴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내가 뇌를 쓰고 있는지, 아니면 뇌가 나를 끌고 가고 있는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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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인간 - AI 사용법을 넘어 AI 사고법으로
안병민 지음 / 북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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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질문 잘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장에서 질문은 늘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수업 흐름을 끊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거나, 준비되지 않은 질문은 오히려 이해도가 낮다는 신호처럼 해석되기도 했다. 정답을 빨리, 정확하게 말하는 학생이 유능하다는 인식 속에서 질문은 종종 소극성이나 미숙함의 다른 이름으로 취급되었다. 질문은 훈련의 대상이 아니라 성향의 문제로 여겨졌고, 교실에서 질문하는 학생은 특이한 아에 가까웠다.

안병민의 <질문인간>은 오래된 인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질문을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AI 네이티브 시대에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핵심 능력으로 규정한다. AI가 대답을 생산하는 기술로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답을 알고 있는가는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명제는 분명하다. 인간의 경쟁력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아니라, 무엇을 묻고 왜 묻는지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왜 지금 질문이 중요한가에 대해 저자는 현실적인 진단을 내린다. 우리는 이미 AI가 작성한 보고서, 요약된 회의록, 자동 생성된 기획안에 익숙해졌다. 겉보기에는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그 이면에서는 사고의 주도권이 점점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사고의 아웃소싱’이자 ‘사고의 종속’이라고 설명한다. 질문이 멈춘 자리에 AI의 답이 들어오고, 인간은 그 답을 검토하기보다 소비하는 역할로 밀려난다. 문제의 원인이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질문을 멈춘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이 퀄리티 높은 질문인가. 우리는 기발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질문 설계'다. 결과를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를 묻고 전제를 드러내며 일부러 불일치를 만들어 편향을 점검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정말 AI에게 맡겨도 되는 문제인지, 아니면 인간이 책임져야 할 문제인지를 먼저 성찰하는 질문까지 포함된다. 질문은 정보 요청이 아니라 관점이며 목적이며, 책임의 선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AI 혁신 가이드로서 현장에서 수많은 조직과 개인을 만나며, 같은 도구를 쓰고도 성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관찰해왔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기술 이해도보다 질문의 깊이에서 발생했다. 저자는 AI 시대의 가장 위험한 인간은 질문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질문하지 않는 순간, 인간은 판단을 포기하고 선택을 위임하게 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멀어진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게 읽힌 부분 중 하나는 리더십에 대한 정의다. 저자는 AI 시대의 리더를 문제 정의자, 가치 설계자, 최고 회의론자로 설명한다. 모호한 문제를 가설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능력, 기술보다 앞서는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태도, 그리고 AI의 환각과 오류 앞에서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집요함이다. 이 정의는 어디까지 판단을 맡기고 무엇만큼은 인간이 책임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고의 태도로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리더십을 질문의 태도로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 회의론자’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다. 책에서 말하는 회의론은 AI 의 답을 끝까지 검증하려는 책임의 태도에 가까웠다.

또 중요하게 읽힌 대목은 인간의 역할을 '편집'으로 규정한 부분이다. AI가 쓰는 시대에 인간은 창작의 주체에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판단자로 이동한다는 관점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어떤 맥락에서 배열할지 결정하는 편집의 힘은 자동화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인간의 역할을 방어적으로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고차원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다.

질문인간이란, AI의 답을 무조건 신뢰하지도, 기술을 두려워하며 거부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질문으로 방향을 잡고, 질문으로 기준을 세우며, 질문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존재다. 질문은 생각의 시작이 아니라 생각의 주도권을 지키는 도구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같다. 내일 당장 회의에서 던질 질문 하나, 보고서를 읽으며 붙잡아야 할 why가 결국 개인과 조직의 격차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AI 도구를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 팀과 조직의 방향을 고민하는 리더와 중간관리자,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고 싶은 모든 직장인이라면 충분히 읽을 만하다.

특히 질문을 잘하지 못한다고 느껴왔던 나에게는 질문이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임을 확인하게 해 준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 어떤 질문을 안고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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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 - 유전공학, 바이오테크, AI 혁명이 열어갈 인류의 미래
제이미 메츨 지음, 최영은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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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책은 먼저 분량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600쪽이 넘는 두께와 묵직한 무게는 가볍게 훑어보는 교양서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읽기 시작하면 예상과 달리 챕터별로 가독성에 차이가 있다. 기술 용어와 과학적 설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례 중심의 서술과 반복적 설명을 하고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각 장이 비교적 명확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방대한 내용에 꽤나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속독보다는 한 장씩 멈추어 생각하며 읽을 때 이 책의 밀도가 제대로 체감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슈퍼컨버전스', 즉 초융합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초융합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생명공학, 합성생물학이 서로를 가속하며 하나의 새로운 가치 체계와 문명 단계로 수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함으로써 생명공학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그렇게 발전한 생명공학이 다시 AI 학습의 토대가 되는 순환 구조가 바로 초융합이다. 저자는 이 시대에는 개별 기술을 따로 이해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기술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을 큰 틀에서 읽을 때의 접근법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변화들을 연결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이미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료, 식량, 경제, 환경이라는 영역은 각각 독립된 주제가 아니고 모두 생명 설계 기술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읽는 과정에서는 각 장을 개별 정보로 축적하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키워드인 예측, 개인화, 설계, 통제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의 선택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중심에 두고 읽으면, 책의 메시지가 더 또렷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의료가 더 이상 '아프면 치료하는 시스템' 이 아니라 '아프기 전에 예측하고 설계하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유전체 분석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AI가 영상 진단에서 인간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질병은 사건이 아니라 확률이 된다.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의 건강 계획이 설계된다는 서술은 기술적 가능성과 동시에 윤리적 부담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인간의 자유를 넓히는 방향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게 된 미래는 준비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바이오경제에 대한 관점이었다. 박테리아로 콘크리트를 복원하고, 거미줄이 방탄 소재가 되며, DNA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례들은 산업 구조의 이동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듯 친환경 담론이 아니라 효율과 성능의 문제이며, 석유 대신 세포로, 채굴 대신 배양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제시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바이오경제가 미래의 보조 산업이 아니라 산업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 하나 강하게 남은 인상은 윤리적 질문이다.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축적된 뒤, 과연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예방하는 반면 인간 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 말라리아를 근절하는 기술이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책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 책임 있는 사용을 전제로 한 경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현재를 재정의하는 책에 가깝다. 이미 시작된 변화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의 주체가 아닌 결과의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흐른다. 분량은 많지만 그만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다. AI와 생명공학이 만들어낼 미래를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기대하기보다,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사회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는 신간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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