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먼저 분량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600쪽이 넘는 두께와 묵직한 무게는 가볍게 훑어보는 교양서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읽기 시작하면 예상과 달리 챕터별로 가독성에 차이가 있다. 기술 용어와 과학적 설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례 중심의 서술과 반복적 설명을 하고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각 장이 비교적 명확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방대한 내용에 꽤나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속독보다는 한 장씩 멈추어 생각하며 읽을 때 이 책의 밀도가 제대로 체감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슈퍼컨버전스', 즉 초융합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초융합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생명공학, 합성생물학이 서로를 가속하며 하나의 새로운 가치 체계와 문명 단계로 수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함으로써 생명공학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그렇게 발전한 생명공학이 다시 AI 학습의 토대가 되는 순환 구조가 바로 초융합이다. 저자는 이 시대에는 개별 기술을 따로 이해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기술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을 큰 틀에서 읽을 때의 접근법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변화들을 연결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이미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료, 식량, 경제, 환경이라는 영역은 각각 독립된 주제가 아니고 모두 생명 설계 기술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읽는 과정에서는 각 장을 개별 정보로 축적하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키워드인 예측, 개인화, 설계, 통제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의 선택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중심에 두고 읽으면, 책의 메시지가 더 또렷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