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 - 유전공학, 바이오테크, AI 혁명이 열어갈 인류의 미래
제이미 메츨 지음, 최영은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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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책은 먼저 분량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600쪽이 넘는 두께와 묵직한 무게는 가볍게 훑어보는 교양서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읽기 시작하면 예상과 달리 챕터별로 가독성에 차이가 있다. 기술 용어와 과학적 설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례 중심의 서술과 반복적 설명을 하고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각 장이 비교적 명확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방대한 내용에 꽤나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속독보다는 한 장씩 멈추어 생각하며 읽을 때 이 책의 밀도가 제대로 체감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슈퍼컨버전스', 즉 초융합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초융합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생명공학, 합성생물학이 서로를 가속하며 하나의 새로운 가치 체계와 문명 단계로 수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함으로써 생명공학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그렇게 발전한 생명공학이 다시 AI 학습의 토대가 되는 순환 구조가 바로 초융합이다. 저자는 이 시대에는 개별 기술을 따로 이해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기술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을 큰 틀에서 읽을 때의 접근법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변화들을 연결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이미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료, 식량, 경제, 환경이라는 영역은 각각 독립된 주제가 아니고 모두 생명 설계 기술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읽는 과정에서는 각 장을 개별 정보로 축적하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키워드인 예측, 개인화, 설계, 통제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인간의 선택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중심에 두고 읽으면, 책의 메시지가 더 또렷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의료가 더 이상 '아프면 치료하는 시스템' 이 아니라 '아프기 전에 예측하고 설계하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유전체 분석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AI가 영상 진단에서 인간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질병은 사건이 아니라 확률이 된다.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의 건강 계획이 설계된다는 서술은 기술적 가능성과 동시에 윤리적 부담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인간의 자유를 넓히는 방향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게 된 미래는 준비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바이오경제에 대한 관점이었다. 박테리아로 콘크리트를 복원하고, 거미줄이 방탄 소재가 되며, DNA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례들은 산업 구조의 이동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듯 친환경 담론이 아니라 효율과 성능의 문제이며, 석유 대신 세포로, 채굴 대신 배양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제시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바이오경제가 미래의 보조 산업이 아니라 산업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 하나 강하게 남은 인상은 윤리적 질문이다.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축적된 뒤, 과연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예방하는 반면 인간 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 말라리아를 근절하는 기술이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책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 책임 있는 사용을 전제로 한 경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현재를 재정의하는 책에 가깝다. 이미 시작된 변화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의 주체가 아닌 결과의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흐른다. 분량은 많지만 그만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다. AI와 생명공학이 만들어낼 미래를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기대하기보다,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사회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는 신간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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