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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신선하다. ‘처방해드립니다(remedy)’라는 단어는 이 책이 독서, 특히 Jane Austen 의 소설들을 마치 약처럼, 또는 치유제처럼 제시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삶에서 느낀 고단함, 공허, 상실, 나아가 정체성의 흔들림 같은 내면의 병증들 앞에서, 단지 위로를 얻기 위함 뿐아니라 자신을 다시 세우고 살게 하는 처방전으로서 독서를 제안하는 듯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문학 감상, 자아 회복, 삶의 재정비라는 복합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루스 윌슨은 1940년대에 처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접했고, 그때부터 평생 오스틴 작품들을 사랑한 독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마음속 깊은 공허와 불만족,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듯한 정체성의 상실을 느낀다. 70대 무렵 그녀는 당시의 삶 - 전통적 결혼생활과 사회적 역할- 을 내려놓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남부 하이랜즈의 햇살 가득한 작은 오두막집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스틴의 여섯 편 장편소설을 다시 읽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녀가 그 10년 동안 독서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잃었던 자아를 회복했는지를 회고하는 기록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저자가 삶의 공허와 정체성 상실을 느꼈을 때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해 온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문장과 인물들을 다시 만나며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남은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 나가는 모습은 독서가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힘 있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이 경험은 나이와 조건에 상관없이 문학이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독서를 통한 치유력을 실천하며 삶의 두 번째 장을 연 경험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는 독서를 통해 잃었던 자신을 회복하고 자기 수용과 희망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가 늦은 나이에도 삶을 재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부분은 실제 삶의 변화와 실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진 힘과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은 단지 과거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오스틴의 소설을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교차하며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비춘다. 그녀는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겪는 사랑, 우정, 자아, 선택, 후회, 희망 등을 자신의 삶과 겹쳐 읽는다. 그 과정에서 책은 문학 탐닉이 아니라, 자기 수용, 삶의 의미 재탐색, 그리고 두 번째 삶의 장을 여는 통로가 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독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치유가 될 수 있다. 특히 나이든 시기, 삶의 안정 뒤에 찾아온 공허나 정체성의 흔들림 속에서도, 오래된 문학은 우리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잃었던 목소리를 찾아주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한다. 둘째,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ilson 스스로 70대, 80대라는 나이에 기존 삶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했고, 그 경험을 통해 늦었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라는 강한 희망을 보여준다.
이 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도움이 될 책이다. 오랜 세월 가족, 사회적 역할, 책임 속에서 살다가 “나 자신”을 놓쳤다고 느끼는 중년 이상 여성 혹은 나이 든 사람들. 인생의 전환점을 고민하거나, 은퇴, 노년, 자녀 독립, 정체성 재설정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재탐색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나처럼 노년, 정체성, 인간관계, 삶의 의미 등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단지 위로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자극과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문학을 취미나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삶을 치유하고 재구성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라고 느낀다. 특히 나이와 사회적 역할에 얽매여 있는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며 당신에게도 두 번째 삶이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읽는 이가 자신의 삶 속 문제 외로움, 후회, 정체성의 혼란, 상실감을 직면할 용기가 있다면, 책 속에서 제안된 ‘읽기 처방전’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어떤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고전이 어떻게 지금의 우리 삶을 비추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문학·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