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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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김시덕의 <한국 도시 2026>은 향후 2~3년 동안 한국 도시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전망하는 책이다. 도시를 읽는 사고 방식을 정립해 주는 안내서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는 정치 일정, 국제 정세, 산업 재편, 인구 감소, 교통 인프라 등 구조적 변수를 중심으로 한국 도시의 변화를 분석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인상은 도시 현상은 구조적 힘이 만든다는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고, 한국 사회의 소음 속에서 무엇을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책의 1부에서 저자는 총선·대선·지방선거를 거치며 쏟아졌던 개발 공약이 실제로는 어떻게 조정·축소·지연되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보여준다. GTX 계획의 지연, 가덕도 신공항 공정 문제, 지자체 간 교통 정책 충돌은 모두 정치적 구호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내가 이 부분에서 특히 공감했던 점은, 한국은 정치적 사이클이 촘촘하여 공약은 많지만 정책 지속성은 약하다는 점이다. 결국 장기적 도시 변화는 선거 공약보다 물리적·재정적 제약에 의해 결정된다는 저자의 분석은, 최근 도시 담론의 과열을 해석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트럼프 2기, 미·중 패권 경쟁, 북·중·러 결속, 러–우 전쟁 장기화 등을 도시 변화의 중요한 변수로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 동남권 방위산업 벨트의 성장 가능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국제 관계와 지역 산업 구조가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읽으면서 도시의 미래를 말하면서 국내 개발 이슈만 보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방위산업이 지역 성장의 큰 축으로 떠오른다는 분석은 기존의 부동산 중심 도시 담론과는 다른 신선함이 있었다.




1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구·산업 구조 분석이었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도시의 흥망을 극명하게 가르는 요인이라는 점, 반도체 중심 축이 왜 계속 견고한지, 교외 택지 개발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한다는 지적은 모두 구조적 논리에 기반한다. 특히 지방 소멸의 원인이 항상 ‘중심지의 약세’가 아니라, 교외 개발로 인한 인구 분산이라는 저자의 관점은 기존 사회적 통념을 뒤흔든다. 도시의 생명력은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인구·산업·도시 기능이 결합되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통은 도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지만, 이 책은 교통망 건설이 언제나 예측보다 훨씬 느리고 복잡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GTX-B·C의 지연, 지하화 계획의 기술적 제약, 지반 문제, 노선 갈등 등은 현재 한국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교통 인프라를 미래 가치의 핵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저자의 분석은 교통망 하나로 도시 미래를 판단하는 단순화를 경계하도록 만든다.

2부에서는 서울·경기권, 동남권, 중부권, 대구·경북, 동해안, 전북·전남, 제주 지역까지 각 지역의 특성을 구조적으로 살핀다. 서울 강남의 불변성, 1기 신도시 재건축, 반도체 벨트의 확장성, 동남권의 방위산업, 전북의 새만금 이후 과제, 제주 공항과 균형 발전 이슈까지 지역별 분석이 매우 촘촘하다. 지역의 미래는 단일 요인이 아니라 산업·인구·교통·정치가 다층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었다. 특히 ‘동남권의 장기 성장 가능성’과 ‘전북·전남 소권의 구조적 어려움’은 국제 정세와 인구 구조의 영향이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도시 2026>은 개발 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도시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저자의 정교한 분석은 도시 연구자·정책 이해자뿐 아니라 부동산·지역 이주·사회 정책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에게도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미래를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 기반해 어떻게 도시를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뉴스와 정치적 메시지에 흔들리기보다 도시를 움직이는 구조의 힘 - 정치 일정, 국제 관계, 인구, 산업, 교통- 을 먼저 보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 도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고 도구를 제공한 책이다.이 관점은 한국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유효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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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AI - 새로운 부의 설계자
박성혁.나탈리 허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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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과연 AI가 돈을 번다고? 이 책은 AI가 실제로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부의 흐름을 바꿔가는지를 실무적 관점에서 면밀히 해부한다. 저자들은 AI 자체의 경이로움보다 AI를 비즈니스 맥락에 연결해 실질적인 매출과 효율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기술 숭배와 과도한 공포 양쪽을 모두 경계하며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통찰을 던진다.

저자 박성혁은 데이터 분석과 비즈니스의 접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요 예측, 광고 예산 배분, 개인화 추천과 같은 실무 사례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나탈리 허는 실리콘밸리에서의 투자·법률 경험을 토대로 AI 사업화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와 윤리 문제를 판례와 현장 사례로 풀어낸다. 두 저자의 시선이 합쳐지며 기술, 사업, 법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핵심 주장은 명확하다. AI는 예측과 최적화를 통해 기업 의사결정을 바꾸며, 결국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고 해석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부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술 자체보다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분석해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 관점은 특히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흔히 저지르는 멋진 모델을 만들면 고객이 따라온다는 착각을 바로잡아 준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러 군데 있지만 특히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실무적 사례들이다. 판매 데이터와 광고 데이터를 결합해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광고비를 재배분하여 매출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린 구체적 사례는 실전의 힘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법적·윤리적 장벽에 관한 서술이다. 생성형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 학습용 데이터의 공정한 사용, 책임 주체 규명 등은 기술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논점임을 보여준다. 이 두 부분은 기술 낙관론과 기술 공포 양쪽을 동시에 눌러주는 균형 잡힌 서술로 다가왔다.

또한 실리콘밸리 관찰로서 책이 제공하는 통찰도 강력하다. 트럼프 2기와 같은 정치적 변화가 AI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오픈소스 전략을 둘러싼 미·중 경쟁, 반도체와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구도는 한국의 위치를 전략적으로 재설정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한국이 갖춘 반도체 인프라와 콘텐츠 경쟁력을 장기적 비전과 결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희망적이나 동시에 현실적 과제들을 드러낸다.

이 책을 내 삶에 적용하는 방안은 분명하다. 일상 업무나 소규모 비즈니스에서도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구조화해 작은 실험을 반복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AI 도구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데이터가 어떤 가치를 창출할지 먼저 정의하고 그에 맞는 지표를 세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법적·윤리적 고려를 초기에 설계하는 것이 장기적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방법임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상군이 있다. 비즈니스 리더와 창업가, 데이터 분석가와 제품 매니저, 투자자와 법률가, 그리고 공공정책 입안자들이 특히 읽어야 한다. 일반 독자 중에서도 AI의 실제 활용과 한계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익한 기초 틀을 제공한다. 다만 기술적 깊이를 기대하는 연구자나 엔지니어에게는 일부 내용이 실무적 사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얕게 느껴질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의 관찰이 강해 일부 사례와 정책 논의가 한국 현실에 바로 적용되기엔 추가적 해석이 필요하다. 또한 실행 지침이 실무 사례 중심인 반면 중소기업이나 공공 부문이 당장 따라 하기엔 비용·인력 측면의 구체적 대안이 부족하다. 더불어 기술의 한계와 실패 사례에 대한 심층 분석이 좀 더 있었으면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하면 이 책은 ‘AI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책이다. 기술 자체의 경이로움에 취하지 않고 데이터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실무적 통찰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각 조직의 상황에 맞게 한국적 맥락과 자원 제약을 고려한 추가적 전략 수립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AI 시대에 부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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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 최적화 - 100억 부자를 만드는
황재수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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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은 물건을 줄이고 깔끔한 공간을 유지하는 생활 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한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삶의 태도이다. 이 책 <미니멀 라이프 최적화>를 읽으며, 미니멀리즘이 인테리어 취향이나 소비 절제 차원을 넘어 ‘부를 부르는 기술’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 20년간 금융업에 종사한 저자가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 진짜 미니멀리스트일수록 돈이 모인다라는 주장에 강하게 끌렸다. 비우는 것이 곧 잃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기회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은 미니멀 라이프가 공간, 시간, 나아가 경제적 자유까지 실현시키는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물건을 비우는 것이 마음과 집중력을 되찾고 작은 습관이 삶의 흐름을 바꾼다는 관점은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더 나아가 집을 휴식과 효율의 중심으로 최적화하고 생활 시스템을 자동화함으로써 소비와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방법, 공간의 흐름이 곧 재물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미니멀 풍수 개념까지 제시하며 기존 미니멀리즘의 범위를 넓힌다. 특히 불필요한 자산을 줄이고 효율적인 자산을 키우는 다운사이징 전략과, 배당 중심의 투자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드는 배당 건물주 전략은 미니멀 라이프가 실제로 부의 축적 시스템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중복되는 물건이 흉(凶)을 부른다는 말이었다. 비슷한 물건을 쌓아두는 행위가 공간을 막고 결국 운의 흐름까지 막는다는 설명은, 정리 정돈을 미관이 아닌 인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저녁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 삶 전반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미니멀리즘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덜어냄’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이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책을 통해 나는 미뤄왔던 정리 정돈을 내 삶의 체질 개선 작업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쓰지 않는 것은 빠르게 떠나보내며, 정보와 관계 속에서도 불필요한 과잉을 덜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생기고, 집중력이 높아지며, 경제적 성과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 책은 정돈된 집을 꿈꾸는 사람은 물론, 삶을 개선하고 경제적 자유까지 얻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실천 가능한 노하우와 금융적 관점이 함께 제시되기에 실제로 변화하고 싶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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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강용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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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철학적 사유보다는 정서적 안정에 가깝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를 통해 삶을 다시 질문하기보다는, 이미 지친 독자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독이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문제는 그 다독임이 철학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은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정한 전제에 있다. 삶은 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만족은 잠시이며, 고통은 구조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전제는 충분히 버텨지지 않는다. 고통은 분석되기보다 완화되고, 비관은 사유되기보다 중화된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는 불편한 철학자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조언하는 온화한 멘토로 재구성된다.

읽으며 반복적으로 느낀 아쉬움은, 독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은 본래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내몰아야 하는데, 이 책은 그 불편의 순간마다 설명과 해석을 덧붙이며 길을 정리해 준다. 생각할 여백보다 공감할 문장이 많고, 질문보다 결론이 앞선다. 덕분에 읽기는 수월하지만, 읽고 나서 오래 붙잡고 고민할 문장은 많지 않다.

내용 또한 자기계발서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라는 조언, 기대를 낮추라는 메시지는 낯설지 않다. 그것이 쇼펜하우어의 이름으로 말해질 때 새로워지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 생활 조언으로 축소된 느낌을 준다. 철학자의 사유가 삶을 설명하기보다, 삶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이다.

책의 구성 역시 단편적이다. 주제별로 나뉜 짧은 글들은 에세이로서는 읽기 좋지만, 하나의 사유 체계로 쌓이지 않는다. 철학이란 결국 사상의 흐름과 긴 논증의 축적을 통해 완성되는데, 이 책은 그 축적을 의도적으로 포기한다. 그 선택은 접근성을 높였을지 모르나, 깊이를 대가로 치른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철학을 읽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철학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를 통해 삶을 깊이 사유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부족하고, 다만 철학의 언어로 조용히 위로받고 싶은 독자에게만 적합한 책이다. 철학을 기대했다면 아쉽고, 위로를 기대했다면 무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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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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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신선하다. ‘처방해드립니다(remedy)’라는 단어는 이 책이 독서, 특히 Jane Austen 의 소설들을 마치 약처럼, 또는 치유제처럼 제시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삶에서 느낀 고단함, 공허, 상실, 나아가 정체성의 흔들림 같은 내면의 병증들 앞에서, 단지 위로를 얻기 위함 뿐아니라 자신을 다시 세우고 살게 하는 처방전으로서 독서를 제안하는 듯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문학 감상, 자아 회복, 삶의 재정비라는 복합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루스 윌슨은 1940년대에 처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접했고, 그때부터 평생 오스틴 작품들을 사랑한 독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마음속 깊은 공허와 불만족,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듯한 정체성의 상실을 느낀다. 70대 무렵 그녀는 당시의 삶 - 전통적 결혼생활과 사회적 역할- 을 내려놓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남부 하이랜즈의 햇살 가득한 작은 오두막집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스틴의 여섯 편 장편소설을 다시 읽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녀가 그 10년 동안 독서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잃었던 자아를 회복했는지를 회고하는 기록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저자가 삶의 공허와 정체성 상실을 느꼈을 때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해 온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문장과 인물들을 다시 만나며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남은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 나가는 모습은 독서가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힘 있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이 경험은 나이와 조건에 상관없이 문학이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독서를 통한 치유력을 실천하며 삶의 두 번째 장을 연 경험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는 독서를 통해 잃었던 자신을 회복하고 자기 수용과 희망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가 늦은 나이에도 삶을 재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부분은 실제 삶의 변화와 실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진 힘과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은 단지 과거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오스틴의 소설을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교차하며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비춘다. 그녀는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겪는 사랑, 우정, 자아, 선택, 후회, 희망 등을 자신의 삶과 겹쳐 읽는다. 그 과정에서 책은 문학 탐닉이 아니라, 자기 수용, 삶의 의미 재탐색, 그리고 두 번째 삶의 장을 여는 통로가 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독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치유가 될 수 있다. 특히 나이든 시기, 삶의 안정 뒤에 찾아온 공허나 정체성의 흔들림 속에서도, 오래된 문학은 우리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잃었던 목소리를 찾아주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한다. 둘째,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ilson 스스로 70대, 80대라는 나이에 기존 삶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했고, 그 경험을 통해 늦었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라는 강한 희망을 보여준다.

이 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도움이 될 책이다. 오랜 세월 가족, 사회적 역할, 책임 속에서 살다가 “나 자신”을 놓쳤다고 느끼는 중년 이상 여성 혹은 나이 든 사람들. 인생의 전환점을 고민하거나, 은퇴, 노년, 자녀 독립, 정체성 재설정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재탐색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나처럼 노년, 정체성, 인간관계, 삶의 의미 등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단지 위로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자극과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문학을 취미나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삶을 치유하고 재구성하는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라고 느낀다. 특히 나이와 사회적 역할에 얽매여 있는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며 당신에게도 두 번째 삶이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읽는 이가 자신의 삶 속 문제 외로움, 후회, 정체성의 혼란, 상실감을 직면할 용기가 있다면, 책 속에서 제안된 ‘읽기 처방전’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어떤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고전이 어떻게 지금의 우리 삶을 비추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문학·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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