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강용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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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철학적 사유보다는 정서적 안정에 가깝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를 통해 삶을 다시 질문하기보다는, 이미 지친 독자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독이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문제는 그 다독임이 철학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은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정한 전제에 있다. 삶은 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만족은 잠시이며, 고통은 구조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전제는 충분히 버텨지지 않는다. 고통은 분석되기보다 완화되고, 비관은 사유되기보다 중화된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는 불편한 철학자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조언하는 온화한 멘토로 재구성된다.

읽으며 반복적으로 느낀 아쉬움은, 독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은 본래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내몰아야 하는데, 이 책은 그 불편의 순간마다 설명과 해석을 덧붙이며 길을 정리해 준다. 생각할 여백보다 공감할 문장이 많고, 질문보다 결론이 앞선다. 덕분에 읽기는 수월하지만, 읽고 나서 오래 붙잡고 고민할 문장은 많지 않다.

내용 또한 자기계발서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라는 조언, 기대를 낮추라는 메시지는 낯설지 않다. 그것이 쇼펜하우어의 이름으로 말해질 때 새로워지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 생활 조언으로 축소된 느낌을 준다. 철학자의 사유가 삶을 설명하기보다, 삶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이다.

책의 구성 역시 단편적이다. 주제별로 나뉜 짧은 글들은 에세이로서는 읽기 좋지만, 하나의 사유 체계로 쌓이지 않는다. 철학이란 결국 사상의 흐름과 긴 논증의 축적을 통해 완성되는데, 이 책은 그 축적을 의도적으로 포기한다. 그 선택은 접근성을 높였을지 모르나, 깊이를 대가로 치른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철학을 읽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철학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를 통해 삶을 깊이 사유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부족하고, 다만 철학의 언어로 조용히 위로받고 싶은 독자에게만 적합한 책이다. 철학을 기대했다면 아쉽고, 위로를 기대했다면 무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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