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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첫 문장 -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평점 :
"우주를 채우려면 모래가 몇 알 필요할까?"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묻냐고?
기원전 250년 철학자 아리키메데스는 「모래알을 세는 사람」을 쓰면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대상을 '모래알처럼' 막연히 상상하던 사람들에게 "인간이 셀 수 없는 것은 우주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_책속에서
솔직히 말하자.
과학책은 어렵다.
두껍고, 낯설고, 무슨 말인지 외래어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과학서를 펼치긴 늘 망설여졌다.
그런데 『과학의 첫 문장』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과학사 책이 아니었다.
흔히 과학은 계산과 검증, 이론과 실험의 세계로 좁혀 인식되지만, 이 책은 그런 협소한 접근을 넘어서 과학을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한 인간적 탐구의 산물로 되돌려준다.
히포크라테스의 최초의 과학 문헌을 시작으로 이 책은 총 36권의 위대한 과학 고전 안에서 가장 결정적인 '첫 문장'들을 꺼내 보여준다.
"모든 것은 약해지고 어느 한 순간에 죽는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과학은 외부인이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논리적이고 직선적인 방식으로 진전되지 않는다."
-제임스 D.왓슨, 「이중 나선」
"우리는 생존 기계다. 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맹목적으로 보존해 나르기 위해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로봇 기계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플라톤, 베살리우스, 다윈, 아인슈타인, 그리고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에 이르기까지.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과학의 문장들 속엔 철학이 있고, 인간이 있고, 상상이 있었다.
특히 “나는 가설을 꾸미지 않는다"라는 뉴턴의 선언은 이 책의 인상적인 출발점이다. 그는 중력을 설명했지만, 그것이 왜 작동하는지를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미지(未知)를 ‘몰라서 생략한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침묵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논쟁이 싫어' 《프린키피아》를 일부러 난해하게 쓴 뉴턴.
논쟁은 피했을지 몰라도,
“읽는 사람도, 쓴 사람도 모른다”는 밈이 당시 대학가에 따라다녔다고 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2부에서는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조망하며,
3·4·5부에서는 지구과학, 생물학, 우주과학의 핵심 고전과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을 살펴본다.
이 책은 결국 ‘과학이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왜 말하려 했는가’를 묻는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문장’은 하나의 사유의 축으로 기능하며 독자에게 철학적 여운을 남긴다. 그러다 보면 과학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고백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사유의 깊이를, 과학을 멀게 느끼던 이들에게는 접근의 언어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왜 여전히 과학을 읽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어차피 다 못 알 거,
정답에 닿지 않아도 괜찮다.
어쨌든 과학은 그 여정이 제일 재미있으니까.
이왕이면 우아하게 궁금해하며 과학의 첫 문장으로 그 서문을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