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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그녀는 거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고 있죠. 그녀를 볼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야.
하지만 자신만의 열쇠를 지닌 그녀를 창조한 인물은 예외다. 그는 마음 내킬 때면 아무 때나 찾아왔는데, 그녀를 돌보고 정기적으로 씻기기 위해서다. 그래, 그녀를 씻겨야 하니깐.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 지하에 봉인된 피에타 석상과, 그 석상을 탄생시킨 왜소증을 지닌 천재 석공 미모 비탈리아니, 그리고 자유를 갈망한 귀족 소녀 비올라 오르시니의 삶을 교차시키며 전개된다.
작가는 파시즘이 서서히 장악해가는 20세기 초, 이탈리아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 사회적 약자로 규정된 이들이 세상의 억압을 넘어 예술과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원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힘 있게 그려낸다.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운 거장으로 주목받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그녀를 지키다』로 공쿠르상과 프낙 소설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독자와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는 가진 것 없는 장애인과 가진 것 많은 귀족, 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에 의해 갇히고 억눌리는 두 존재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인간이 부당한 운명에 맞서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는지를 집요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낸다.
초반에는 이야기의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삼분의 일 지점을 넘기면서 서사의 밀도는 한층 단단해진다.
영화감독 출신다운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문장은 장면마다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구현하며, 한 편의 걸작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일까. 숨겨진 진실과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의 여정 속에 나는 어느새 책장을 내려놓지 못한 채, 그들의 삶에 깊숙이 휘말려 들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단지 파시즘 시대의 역사적 고발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과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억압은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비올라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던 순간,
미모가 피에타를 완성하던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미모이고, 비올라이다.
성별이라는 굴레, 신체적 편견이라는 사슬,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억압의 세계.
『그녀를 지키다』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유롭습니까?"
오래되고도 강력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이 작품은 더욱 강렬하게 깊이 파고드는 질문과 울림을 주며, 올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 인생에 남을 문학적 체험을 선사하는 책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되지 않음을 증명해 준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빚어낸 피에타, 분명 당신의 마음을 오랫동안 흔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