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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가 들려 - 청소년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 4·3
김도식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이보게, 준규가 나온 거 같네!"
"네?"
"그런데 메고 온 더플백이 좀 수상하다는 거야. 그 안에 흉기가 있다고 하더구먼."
'준규가 출소했다. 그가 돌아왔다.‘
바람이, 4월의 바람이 수혁의 귓가를 간질이며 지나갔다.
무심코 넘기던 달력 속에 유독 가슴 아픈 날이 있다.
4월 3일.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제주의 날.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제주 4‧3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두 소년, 소녀의 눈으로 따라가며 조심스럽고도 단단하게 풀어낸 청소년 소설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청소년 소설이 아니다. 시대를 기억하고 싶은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이야기다. 작가는 이념의 광풍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한 세 명의 청춘을 전면에 내세우며, 역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살아 숨 쉬던 ‘삶의 결’까지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제주 4‧3은 1947년 경찰의 발포로 시작된 민중의 저항과, 1948년 무장봉기 이후 이어진 국가권력의 대대적 진압 과정에서 약 3만 명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역사’로 방치되어 왔고, 청소년 독자에게는 더욱 생소한 주제로 남아 있었다. 김도식 작가는 이 비극을 서사와 감정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역사를 마주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함께 동굴을 탐험하고 밝은 미래를 꿈꿨던 세 청춘
해방이 곧 자유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청년들의 맑은 영혼은 서서히 오염되어갔고, 끝내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켜야 할 사람을 향해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찬란했던 순간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소설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하는지, 왜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되는지, 그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품고 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가 상처 입은 그날들. 그날의 고통과 사랑, 선택과 용기,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책임'까지…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 깊은 여운이 남는다.
4월이 오면 동백꽃 배지를 다는 제주 사람들처럼, 이 책 한 권이 당신 마음속에도 작은 동백꽃 하나 피우게 하길 바란다.
기억이 애도가 되고, 애도가 화해가 되는 길.
그 시작에 이 책이 함께하길.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제주도 올 때마다 한 번씩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어야 한대. 예전에 아주 슬픈 일이 있었대. 너도 그거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