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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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태아 자세로 몸을 웅크렸다. 흔들릴 수 있는 외로움. 위대한 여성적 비극.나의 어머니, 나의 사랑. 너무 늦었다. 나는 책들을 먹었고 , 여기서 살 수 있었다.‘(p30)

수잰 스캔런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미국에서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스캔런은 많은 책을 쓴거에 비해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책은 이 책이 처음인듯하다. [의미들]이라는 책 제목이 좋아서 우선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의 회고록으로 어린시절 엄마를 잃은 슬픔을 비롯한 해소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스무 살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되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정신치료를 받았던 삼년간의 기록물이다. 그녀의 끊임없이 파고드는 자살유혹 속에서 유일하게 삶의 전환으로 이끌었던게 글쓰기와 책읽기였다. 오랜 시간 그녀를 죽음의 광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한 작가와 책들이 그녀만의 시선으로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 일찍이 페미니즘을 선언한 그녀는 어쩌면 광기에 가로잡힌듯, 죽음과 가까웠던 소위 ‘미친 여자들‘이 창조해낸 문학을 탐구하며 그것에 기대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간다.

“내 인생은 일찌감치 너무 늦어버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자가 처음 언급한 작가의 인상이 강렬하다. ’뒤라스스페이스’라는 창조된 단어도 너무 매력적이다. 저자는 뒤라스의 [ 연인]을 ’이 책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의 시기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이라고 처음 읽었던 느낌을 관조한다. 수치와 자기혐오로 가득했던 십대 시절에 뒤라스스페이스는 인식이며, 젊음과 노년의 연결, 제정신과 광기의 연결, 사랑의 완성과 고독에 대한 욕구 사이의 연결이 되어주었다. 이렇듯 시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와 책들이 있다. 저자는 [연인]이 형성적 영향을 미친것은 그 책이 그런 책이 되는 것을 내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쓴다. 스캔런의 저서 [의미들]을 선택하고 읽으면서 내 안에 깊이 와닿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그런 책이 되는것을 지금 나이에 필요로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덫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부단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등 여성작가들의 문장과 자신의 경험을 교차해 쓰면서 고통의 언어를 의미있는 생의 언어로 이행시킨다.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읽기’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성찰하고 그 과정을 의미있게 풀어간다. 끊임없이 번져가던 불안, 우울, 상실, 소외등을 문학작품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연대하며 결국 삶을 지탱하는 문학의 자리에 자신을 스스로 회복해 나간다. 수전 선택이 일기에 쓴 ‘미친 여자의 자유‘,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공포가 광기와 글쓰기를 연결한다.‘ 처럼 저자 또한 그 궤적을 함께 그려나간 것이다.

읽을 수록 특별한 책을 만났다는 충만한 기분에 쌓인다. 강렬한 독서의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저자가 기록한 이 회고록을 읽어보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가는 다른 방식들을’ 나또한 삶의 다른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내 삶의 의미를. 하루종일 누군가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와 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미를 묻고 답을 내기도, 다시 질문을 하고 다시 고심하기도. 읽기는 그런것인듯 하다. 스스로 선택한 책들이 너무도 소중해진다. 우리가 같을수는 없지만 나만의 읽기를 찾아내는듯하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렇게 읽고 쓰는 필연적 고립의 삶일듯 하다. 여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궤적에 기꺼이 편승해본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듯하다. 깊어지는 계절에 의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싶은 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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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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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아사이 료의 <생식기>.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리고 표지조자 끌림이었던 책. 호기심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의 리뷰도, 책에 대한 소개도 그저 호기심을 더 자극할 뿐이라는 것을. 이럴때는 직접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인간개체 쇼세이 안에 서식하게 되면서 혼잣말처럼 주장하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소설을 하루만에 종식시키고 그 개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었다. 쇼세이가 잠들때마다 성적 흥분이나 의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생식기에 스스로를 팽창시켜야하는 존재. 이렇게 말하면 그게 또 무척이나 의심스러워진다. 책의 제목으로 할 만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호김심의 발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책읽기는 이래서 호기심 많은 존재들의 집단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도 어쩌면 하나의 공동체가 된 것인가? 주인공 쇼세이는 개체감각이 공동체 감각에 압도당하는 것을 극도로 주저하고 공동체에 사로잡히지 않는 진정한 <온전함>을 하나씩 모아가는 중인데, 나도 그것에 편승하고 싶어진다.

다쓰이 쇼세이. 33세. 독신, 가전회사의 총무과 총무부 회사원. 동성애개체.감정으로 사는 종. (이것은 지극히 쇼세이의 안의 그 존재가 입력한 입력값이다.) 쇼세이가 회사에 다니는 것은 돈을 벌기위한 의태이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확대.성장,성장을 목표로하는 공동체에 함께하기 싫어하는 아웃사이더이다.사회는 공동체의 목표를 저해하는 개체를 <악>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의 공통 목표인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을 저해하는 개체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쇼세이는 이러한 직장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는 개체의 시간을 공동체 감각으로부터 도망히는 시간, 공동체의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에 공헌하려는 초기설정에 아무 문제 없이 호응하는 개체들의 감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을 만들어 낸다.쇼세이는 일은 하지만 개체 감각을 공동체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 심신을 다음 시간으로 무사히 가져가기위해  판단, 결단, 선택, 선도의 자리에 오르기를 거부한다. 인간이 만든 사회구조에 필수적인 <성장>을 계속하기위해 생식본능에 우선하지 않는다. 사회 공동체의 <성장>은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하는 일에 전념해야하고, 그것은 곧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임을 내버리지 않도록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체제이다. 쇼세이는 직장을 확대. 발전, 성장의 맥락을 이용해 금전을 얻는 매개로서 스스로를 다른 구조를 지닌 별의 파견 근무지로 설정한다.경제적 자립을 흔드는 해고라는 결과로 이어질 만큼의 악평만 없으면 회사라는 공동체의 평가는 딱히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실하게 그 시간을 내어주고, 직장동료의 얘기를 들어주고(들어줄 뿐입니다. 그러다 가끔 공감하게 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친절할 뿐이라고 하지만) 다른이들이 이야기 대상자로 위로를 받곤 한다. 직장 동료인 소우도 ” 다쓰야 선배는 제 주위에도 없고 이전에 만난적도 없는 타입“이라고 말하며 위로를 받기도, 이쓰키는 ” 어쩐지 다쓰야 앞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못하는 말을 하게 돼“ 라고 말하기도 한다.

쇼세이는 다른 개체들처럼 공동체의 <지금보다 더>라는 슬로건에 갇히지 않는다. <성장>을 목표로하는 삶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다만 한 인간개체로의 삶을 유지한다. 그는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와 체지방률을 자신과 같은 키의 삼십대 남성 평균치까지 떨어트린다‘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스스로 약속한 네 가지 약속 사항을 철저히 지켜낸다. 그리고 자신만의 <다음>으로  성장은 베이킹 레시피에 도전하는 것이다.. 쇼세이는 독신아파트에서 이사하는 친구 다이스케를 위해 자신이 만든 디저트를 내놓는다. 쇼세이는 자기의 행복 기준을 [이성애 개체로부터 특권의식이 떨어져 나가는 미래] 에 맡겼으며 자신이 노화 개체가 되든 말든 심신이 시간속에서 전진하는 순수한 행복을 탐구하며 살아가기로 한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이 세계에 손을 얹는다. 문명화 된 세계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일의 되풀이는 인간종에게 다시 일어날 수 없다 그건 멸종이고 퇴행으로 여길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여전히 모를수도 있기에. 쇼세이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다같이 디저트를 먹고 이것이 쇼세이의 새로운 생활인 것이다.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개체라도 어떤 <온전함>을 쌓아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 나도 이렇게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책을 읽고, 그 책의 느낌을 써보고, 가끔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가족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보리와 산책을 하고, 그렇게 계절을 느끼고. 쇼세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아무도 모르게. ’저 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책의 내용이 현실이 되어 있을까?‘(그렇다면 기대되는데)후후 좋으네요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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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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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현시대의 감성과 함께 현 시대의 결핍 또한 읽을 수가 있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그들의 필체를 통해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사가 나의 시야를 깊게 해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시대를 면밀하게 관찰해 내는 그들의 소설이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도 하고 고요한 감정의 정서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번에 열린문학에서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쓴 새로운 앤솔러지 소설집 『걷다』가 출간되었다. <하다 앤솔러지>는 동사 <하다>를 테마로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모두 25명의 소설가가 같이한 단편소설집이다. 그 첫 번째 앤솔러지 『걷다』 편에는 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이 참여했다. 나는 <걷다>를 읽게 되었다. 책 자체가 너무 예쁘게 출간되어서 놀랐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담겨있어 의미있게 읽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성해나님의 소설도 좋았지만 임현 작가님의 소설을 늘 좋아한다. 임현 작가님의 소설은 <고두>를 통해 좋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더 좋았었다. 이번 <걷다>소설집에는 <느리게 흩어지>는 으로 소설속 명길의 모습은 점점히 나를 투영해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명길>의 산책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모순이나 결점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명길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매번 어려웠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서슴없이 먼저 사적인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것은 대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공허한 소음들일 뿐이다.(p167)

소설집의 다섯편의 단편 소설은 걷는 이야기다. 함께도 걷고,뒤로도 걷고,반려견과도 걷고, 혼자서도 걷는다. 걷는 모습은 다 다르지만 소설속 그들은 계속 걷고 있다.그들이 걷는 속에서 나도 걷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 ㅡ 이주혜, 「유월이니까」처럼 그들은 살기위해 걷고 죽지않기위해 걷고 또 뛰기도 한다. <산책>의 한자가 흩어질 산에 꾀책 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명길은 ’산책이라는 게 흩어지는 거구나. 꾀를 내어 흩어지는 일, 흩어지기위해 꾀를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걸까. 복잡한 머릿속을 흩어지게 하는 일, 그게 산책인걸까.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도 걷고 혼자서도 걷는 것일까.

‘다른건 몰라도 낭만에 때 묻히고 싶지 않아‘(p36)라고 말하는 세실이, ‘나는 아주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p131)고 말하는 영아의 모습이 나는 오래도록 그들을 애정하게 된다. ‘낮과 밤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최대한으로 밝게 살았으면 해서.‘라고 말하는 영아의 언니가,’ 좋기만 한 시간 속에서 자꾸만 너의 쓸모를 찾아서 무엇해. 정 그러면 너의 행복이 너의 쓸모라고 생각해 봐‘라고 위로하는 준이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임선우 님의 <유령개 산책하기> 소설이 꽤나 좋았었나 보다. 이렇게 좋은 문구들을 사용하는거 보면. 다섯편의 소설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걷는 모습에 자꾸만 동행하고 싶어진다. 많은 말을 주고 받지 않아도 그저 걷기만해도 오랜 여운이 남을 듯 하다. 오늘도 낭만에 때를 입히기 싫어서 읽고 읽는다. 좋은책속을 걷는 중에 어쩌면 생의 의미를 더 찾아낼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좀 더 남은 삶을 의미있게 살아낼수도 있겠다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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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읽는 세계사 - 하트♥의 기원부터 우주로 띄운 러브 레터까지 1만 년 역사에 새겨진 기묘한 사랑의 흔적들 테마로 읽는 역사
에드워드 브룩 히칭 지음, 신솔잎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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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사랑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담을 수 있나 내내 읽으며 황홀했다. 책을 받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표지에 감동이었고,페이지를 넘겨볼 때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하루를 온통 의미롭게 해주었다. 책에 수록되어있는 300장의 회귀 유물및 회화 이미지는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고 그것에 숨겨진 단서를 해석해주는 글은 계속해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게 해주었다. 하트❤️의 기원부터 우주로 띄운 러브 레터까지 1만 년의 역사에 새겨진 기묘한 사랑의 흔적들은 나의 심장을 울렁거리게 했다. 놀라운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고통스런 장면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역사속에 새겨진 인간 종의 무한한 사랑이 이렇게도 다양하게 펼쳐져 있구나하는 새로운 인식이 나의 의식읕 무한해제시키곤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사랑의 고통으로 힘들기도 하겠지. 인간사속에 여지없이 기록된 사랑의 흔적들이 큰 위로가 될듯 하다. 그리고 현존하는 사랑의 흔적들이 새롭게 기록되기를 갈망해본다.“딱 이런책이 존재하길 바랐다, 혼자만 알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영감의 보물창고 같은 책”이라고 표현해준 정대건 소설가님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나에게도 혼자만 알고싶은 영감의 보물창고같은 책이되었다.

첫 페이지부터 숨막히게 하는 유물과 삽화들이 멋지게 수록되어있다. 1만년여전의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입맞춤과 포옹그리고 성행위. 가장 오래된 결혼 계약서와 결혼시장등 사랑이 남긴 기묘한 물건, 신비로운 유물, 사랑에서 탄생한 물리적 자취들이 신비롭고 즐겁기만했다. 다양한 나라의 역사속에 나타나는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기념하는 방식은 어떠했는지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미지는 세계적 사랑의 시작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테베의 신성부대'의 잔인함에 놀랐고 죽은 아내를 위해 대관식을 거행한 포로투갈의 페드루1세에 더욱 놀라웠고 피투성이 암사자로 불린 잔 드클리송의 잔인한 복수 전쟁이 더더욱 놀라웠다.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잔인성또한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해석이 놀라웠고 이 책을 통해서 일반적이지 않는 사랑이 존재했다는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조금은 익숙한 이름들도 보였다. 그러나 해석은 특별했다. 그들의 예술이 담긴 생애는 시적으로까지 느껴졌다. 두 번의 만남으로 필생의 사랑을 하며 대작을 남긴 단테,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쓴 [내 삶의 이야기]의 쟈코보 카사노바, 황금빛에 가려진 비밀을 안고있는 [키스]의 구스타프 클림트, 집착에 사로잡힌 사랑을 하 수 밖에 없었던 비련의화가 프리다 칼로는 다시 읽게 되는 신비였다.

사랑을 표현한 특별한 물건들에는무엇이 있었을까? 자신들만의 사랑을 비밀스럽게 표현해낸 물건들이 또 신기하기만하다. 동전에 새길수밖에 없었던 바이킹의 남기고 싶은 말이 적힌 동전유물, 심장의 지도( 결혼의 바다 지도는 우리네 결혼생활을 그린듯한,너무 맘에든다), 눈 세밀화와 사랑의 정표들( 눈 세밀화는 약간 괴기스럽기도 했던),빅토리아 시대 암호엽서와 꽃말( 암호엽서는 편집할때 나도 따라해보고 싶은 이미지),사랑의 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등은 왠지 나도 소유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자기 사랑을 표현하기위해 여인에게 바친 궁전만큼 거대한게 있을까싶은 태양계를 떠난 러브 스토리는 어떻고 열기구 결혼 열풍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까지 사랑의 역사는 거대하고 누구도 그 역사에 참여하지 않을수 없다. 5천년간 손을 잡고 발견 된 부부의 화석은 현시대에 시사하는 의미가 또한 큰듯 하다. 내 사랑은 얼마만큼의 표현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는 변함없이 그 사랑을 지킬 용기가 있는지 책을 읽으며 내내 여러 사랑에의 모습에 긍정도 부정도 함께 한다.

사랑으로 인해 탄생되는 문학,미술, 음악,인간종의 유일한 유산을 이렇게 접할 수 있다는게 나의 시선을 새롭게 만든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진기한 박물관을 관람하듯 펼쳐보게 될듯하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 사랑만을 오래 심장속에( 하트의 기원이 된, 그리고 심장없는 시체들을 보며)새겨넣고 싶다. 사랑의 존재를 다시 사랑하고 싶고 사랑을 더욱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는동안 최고의 종교는 사랑이라는 생각이들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최고의 감동을 입혀준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출간하고 보내주신 현대지성출판사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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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결심 -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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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다 읽게되었다. 잔잔하며 단단하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에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내주었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작가의 시어머니인 아를레트의 모습이 그녀가 존재했던 풍경이 아름답게 남겨진다. 문득, 슬프기도 했다. 어느 문장 앞에서는 툭,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아를레트는 스위스 조력사를 선택하고 현생의 마지막 버튼을 누르기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켜냈다. 그런 그녀의 단단함은 관계에서 결코 과장하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잘 지켜왔던 생활습관에서 나온다는것을 알았다. 그녀는 도움을 주는것과 관계를 통제하는 것의 간극을 알았고 정해진 역활을 함부로 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그녀는 생의 이별도 관계의 이별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유산을 남겨주었다.그러한 시어머니를 자연스레 이해하고 공감하는 작가의 시선또한 아름다웠다. 작가님의 글속에 그 모든것들이 잔잔히 녹아있고 스며있다. 결이 맞는 책을 읽는다는것은 이렇게 마음을 움직인다. 오랜만에 나를 읽힌듯했다. 쓸쓸한날에 문득 펼쳐본다면 위로를 받을듯 싶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상실의 경험을 겪게 된다. 주변인들의 죽음은 늘 나에게 큰 의문을 남기기도 애정의 폭에따라 오래 기억속을 부유하기도 한다. 나에게 큰 정서적 유산을 남긴 큰오빠의 죽음은 그 누구의 죽음보다 더 오래 슬펐고 더 오래 나를 우울감에 젖게 하곤 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컸던 유년의 시절에 큰오빠는 나이차도 많이 나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돌봤고 책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고 어쩌면 나의 성향에 너무도 부합된 존재였다. 그런 큰오빠는 내가 한참 사춘기인 십대에 암으로 갑자기 내 곁을 떠나셨다. 그 상실의 체험은 나를 크게 변화시켰고 조금은 냉정하다시피한 독립체로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던것 같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것은, 문학을, 철학을, 그리고 고독을 내가 숨을 쉬는 의미로 만들었던것은, 그 이후로도 여전히 좋아했던 이들의 죽음을 만난다. 그들의 죽음을 맞으며 결국엔 나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너무 일찍 존재의 의미를 알고싶어서 방황했던 생의 여러 시간들이 갑자기 서러워지기도 했다. 결국 죽음뿐인데싶은.

이화열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것 또한 받아들이기로 한다. 자기의 죽음은 알 수 없고, 모든 죽음은 결국 타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와닿는다. ‘상실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누군가에겐 부모보다 반려동물의 죽음이 더 깊은 슬픔이 될 수도 있다. 관계의 결이 다르듯, 각자 다른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면에서 인간은 철저히 타인이다.‘(p176)의 글과 함께 내 곁에서 변함없이 나를 대해주는 이들을 생각한다.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살피는 시선에서 오는 관계의 평온함, 그래서 나도 삼십여년을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낸 나의 남자를 생각하게 한다. 그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또한 지금부터의 삶의 시작인듯하다. 조금은 사물로부터 놓여지고 서로의 기억을 나누고 다듬고 죽음을 향해 자연스레 걸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오늘인듯 싶다. 그렇게 오늘을 읽는다. 책을 읽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느슨했던 글쓰기의 시간을 다시 새롭게 펼쳐본다. 그러한 계절이 왔다. 이제 더위는 언제냐싶게 물러가고 찬 계절이 곁에 머물것이다. 어쩌면 올 겨울이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야만 되는 계절, 작가의 글에서럼 남겨진 세월은 성찰과 감당할 능력을 함께 줄것이다. 나에게 올 죽음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지키게 될까. 그래서 오늘부터의 삶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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