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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윤동주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수록한 국민 시인, 개정판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2월
평점 :
좋은 시는 눈을 반짝이게 하고 영혼을 맑게 한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그렇다.
처음엔 일본인 작가라 민족적 감정이 개입할까 염려스러웠다.
아무리 훌륭한 시라 하더라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한 온전한 감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몇 개의 작품을 읽으면서 차차 사라졌다.
시도 살아있는 생물이라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본성이 드러난다. 제국주의적 냄새가 조금이라도 났다면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인류애적인 심성이 느껴졌고 그것은 민족적 감정을 상쇄시켰다.
그녀의 시세계는 편협하거나 옹졸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시 <시의 마음을 읽다> 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신의 생각을 깊게,...
우물을 파내려가면 지하에 흐르는 공통의 수맥에 닿듯이
전체에 통하는 보편성에 도달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치관이 멋져보인다.
노리코의 시들은 해학적이고 위트가 있어 독자의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 눈
그건 렌즈
깜박임
그건 내 셔터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작고작은 암실도 있어서
그래서 난
카메라 따위 가지고 다니지 않지"
.....
<내 카메라> 중에서
때로 멋진 문장도 선사한다.
"인간의 매력이란
필시 그 호수에서
발생하는 안개다"
<호수> 중에서
시들이 난해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어떤 시들은 껍질이 너무 단단해 내용물을 맛보기가 너무 힘드는데 노리코의 시들은 독자들이 날로 먹을 수 있도록 잘 다듬어 놓았다.
시 속의 시어들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리잡고 담담히 독자의 시선을 즐긴다.
그녀의 시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윤동주 시인이 계기가 되어 한국 사랑으로 이어진 그녀는 12명의 한국 시인의 작품을 일본어로 변역한 책 <한국현대시선> 으로 요미우리 문학상까지 받았다.
부록편에서 작가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와의 만나는 장면은 마음을 찡하게 했다.
그녀가 윤동주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적국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 흠모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윤동주가 잘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윤동주의 시 세계에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가 백제의 문물을 토대로 건설되었듯이 노리코의 시들은 바로 윤동주의 시세계에서 태동했던 것이다.
그녀의 시속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윤동주의 시들이 녹아 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