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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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주어진다면 더 훌륭한 여성문학가가 탄생할 것이라고..."

그 당시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시공간적 자유가 절대 조건이었겠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조앤 롤링 같은 경우는 열악한 환경에서 글을 썼다.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는 여성차별이 존재하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남녀 평등은 말 그대로 괄목상대하게 변화 되었다.

이 말에 흥분해서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라고 화를 내는 여성도 있다.

이 책 저자 역시 " 여전히 유리 천장은 존재하며, 아직도 사회는 성별에 대한 높은 진입 장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라고 아쉬운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AI 시대가 도래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선사시대 유물처럼 변해 버릴 것이다.

아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개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으로만 세상을 본다면 여성은 남성에 대해 투쟁 모드로 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버지니아는 의외로 메타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 우리가 관계 맺는 현실이 남성과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언젠가 찾아올 것이며,..."

남성과 여성의 구분에서 인간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버지니아의 의지는 다음 문장에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 마음속의 남성과 여성의 협동이 일어나야만 예술 창작이 온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단지 외형적인 성 구분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겉은 여자지만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여성도 많고 보기에는 남자 같은데 하는 행동은 여성같은 경우도 많이 있다.

버지니아는 여성과 남성의 감정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버지니아는 문학의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 같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것이 그 한 예다.

그런데 글을 보면 의식이라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깝다.

문장이 앞 뒤가 맞지 않다. 마치 난해한 꿈을 꾸듯 글을 쓴다.

성을 해방하려는 노력이 기존 남성이 세워놓은 문학의 틀까지도 무너뜨린다.

" 모든 얼굴, 모든 상점, 침실 창문, 공공 주택, 어두운 광장은 열광적으로 변한 그림 입니다"

" 우리를 늙고 죽게 만드는 것은 재앙, 살인, 죽음, 질병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웃고, 버스에 올라타는 형식입니다"

떠오르는데로 따라서 쓰다보니 문장이

난해해 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그녀가 얼마나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컸는가를 알 수 있다.

고전적 소설의 관습에 도전한 또 하나의 작품이라면 <플러시>를 들 수 있다. 플러시는 인간과 개의 교감을 그린 작품인데 읽다보면 개가 마치 사람 처럼 느껴진다.

버지니아의 감성이 동물과 자연의 세계에서도 매우 밀도 있게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존 체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버지니아의 몸부림은 실험 문학에 머무르지 않고 삶으로 이어졌다.

" 우리는 정오의 푸른색과 자정의 검은색을 삼켜버릴 수 있으며, 이곳과 지금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버지니아는 결국 현실을 떠나 정오의 푸른색과 자정의 검은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버지니아의 글은 얼핏보면 우울한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그녀의 글 속에는 소망이 숨어 있다. 단, 자세히 봐야 하고 오래 봐야 한다. 그러면 옅은 행복과 희망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일기장에도 이런 글을 남겼다.

" 인간은 전체를 바라보고, 또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관해 쓸 때, 어떻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희망을 잃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 전집의 개론과 같다.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 전체적인 그림을 드려다 보는 용도로 딱 좋다.

이것만 읽어도 버지니아의 문학 세계에 대한 감을 어느정도 잡을 수도 있다.

이미 읽은 사람은 중요한 문장을 통해 기억을 소환시킬 수 있어 사실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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